와인과 음식의 미학, 마리아주 - 첫 번째 이야기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고객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를 위해 접대를 할 때는 메뉴 선택에서 적당한 장소까지 고민이 많게 마련이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보양식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여름 보양식과 맞는 와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몸도 보하고 먹는 즐거움도 함께 할 수 있는 마리아주의 세계를 소개한다.여름 보양식하면 우선 떠오르는 요리가 보신탕(단고기 수육 또는 탕), 삼계탕, 초계탕, 장어구이, 오리고기 등이다. 예로 든 음식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유달리 국물요리를 좋아한다. 식사에 자연스럽게 국이 따라오거나 탕과 같은 국물요리가 주 메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와인을 음식의 일부로 생각하는 유럽인들은 주로 수분이 적은 요리와 궁합을 맞추었다. 오죽하면 붉은 핏기가 가시지 않은 레어(rare)나 피가 비치는 정도의 ‘미디엄 레어(medium rare)’ 상태의 스테이크를 즐기겠는가.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이들에게 물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고역이다.
‘웰던(well-done)’으로 고기를 먹을 경우 소요되는 침의 양을 생각해보시라. 얼마나 씹는 데 힘이 들고 소화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겠는가. 소위 육즙만으로도 부족해서 이들은 와인이라는 ‘국’을 함께 마셔왔던 것이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적당한 알코올 섭취로 분위기도 좋아지고 피로도 풀리고 소화까지 잘되는 효과까지 얻게 됐지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탕 요리에 과연 와인이 잘 맞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하고 실제로 잘 맞추기 어렵다는 분들도 있지만 그러기에 궁합이 맞는 와인을 발견해 접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권한다면 더더욱 빛이 나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외국인들을 접대해야 하는 경우 전통 한식 그것도 여름 보양식의 스토리를 들려주면서 와인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보신탕에는 코트 뒤 론, 삼계탕에는 화이트 와인이 맞춤 보신탕부터 시작해보자. 여성들이나 일부 남성들이 질색할지 모르나 단고기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름 보양식 중 하나다. 단고기는 쇠고기와 양고기처럼 묵직한 고기가 아니다. 고기의 무거움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의 정도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와 쇠고기 중 쇠고기가 입 안에서의 느낌이 더 강하다. 이것을 무겁다고 표현한다. 무거운 고기일수록 강건한 구조감의 와인을 매칭하는 것이 좋다. 단고기는 고기만을 놓고 보았을 땐 그다지 무거운 고기는 아니나 특유의 향이 강해 매칭 와인은 향에 주의해야 한다.
산도와 타닌이 강한 와인, 즉 시고 떫은맛이 강한, 구조감이 강건한 와인(예를 들면 보르도 와인)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느낌의 레드 와인이 잘 어울린다. 품종으로는 강인한 ‘카베르네 소비뇽’보다는 접근이 상대적으로 쉬운 ‘시라’나 ‘그르나슈’가 더 어울린다.
지역 역시 그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코트 뒤 론(Cotes du Rhone) 지역의 와인을 추천한다. 약하지 않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구조감을 가지고 있으며, 향이 복잡하면서도 어렵지 않아 적당하다.
다음은 우리가 흔히 평소에도 즐기는 삼계탕과 와인을 맞추어 보자. 닭고기는 맛이 뛰어나고 잡냄새가 적은 데다 육질까지 부드러워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받는다.
물론 와인과의 궁합도 좋다. 단 삼계탕은 역시 혀의 예민한 작업을 방해하는 뜨거운 국물과, ‘삼(蔘)’ 특유의 흙냄새가 주요 고려 조건이 된다. 닭고기는 육류지만 이 경우엔 레드 와인보단 화이트 와인을 권한다. 고기 중에서도 가볍고 담백하며, 푹 삶아 익혔기 때문에 씹히는 느낌도 강하지 않다. 때문에 굳이 무거운 레드 와인을 매칭하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요리가 밀린다. 상쾌하고 신맛이 강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추천할 수 있겠다.
뉴질랜드 스타일의 ‘소비뇽 블랑’처럼 청량감이 도드라지는 와인보다는 같은 소비뇽 블랑 와인이라도 보르도 스타일로 블렌딩을 해 맛의 부드러움과 풍부함을 더한 와인이나 부르고뉴의 샤르도네 품종의 화이트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차게 해서 먹는, 그리고 임금님께 바쳤다는 초계탕이 있다. 삼계탕 외에 새콤달콤한 초계탕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듯하다. 특히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은데, 초계탕 역시 어울리는 와인이 따로 있다.
닭육수에 식초, 겨자로 맛을 낸 초계탕은 신선한 산미와 과일의 단맛을 연상시키는 적당한 단맛이 함께 어우러진 매끄러운 화이트 와인이 어울린다.
신세계에서 생산된 과일 향이 풍부한 샤르도네 품종이라면 좋다. 독일의 리슬링 품종으로 생산한 화이트 와인 역시 과일 향이 풍부한 편이어서 잘 어울린다.
장어와 오리는 요리법에 따라 다른 와인으로 매칭 장어구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여름 보양식 중 하나다. 장어구이에 반주를 한다면 장어 간을 넣은 정종을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장어의 깊은 맛은 향이 복잡한 와인과 어울려 아주 근사한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
보통 장어구이는 취향에 따라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소금만을 이용한 소금구이, 그리고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양념구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스타일에는 각각 다른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소금구이로 먹을 때에는 진하고 풍부한 맛의 화이트 와인을, 양념구이로 즐길 때에는 너무 무겁거나 진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맛의 레드 와인이 좋다.
알기 쉽도록 품종으로 설명한다면 소금구이에는 ‘샤르도네’를 주요 품종으로 하는 화이트 와인을, 양념구이에는 ‘시라’나 ‘그르나슈’ 품종을 주축으로 한 와인이 어울린다. 산도가 좋은 이탈리아 토착 품종도 좋은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오리요리와 와인의 궁합을 맞추어보자. 불포화지방산으로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특히 애주가들 중에 오리고기를 찾는 이들이 많다.
몇 해 사이에 훈제 오리집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아 최근 오리요리의 트렌드는 아마도 기름기를 쫙 뺀 훈제구이인 듯하나, 로스구이로 즐기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은 것 같다. 당연히 요리 스타일에 따라 매칭 와인이 달라져야 한다. 훈제오리의 경우 훈연 특유의 연기 향은 향이 풍부한 와인을 선택해야 잘 어울린다. 오크 터치한 와인, 즉 오크통에 숙성시켜서 스모키한 향이 밴 와인이라면 오리고기의 매력적인 훈향을 더욱 잘 살려줄 것이다.
품종은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오리고기가 부드러운 점을 감안해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향이 풍부한 메를로 품종을 추천한다.
기름이 풍부해서 풍미가 부드럽고 유연한 오리고기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는 로스구이는 강하지 않고 섬세한 피노 누아와 잘 어울린다. 와인과 요리가 잘 어우러지면 궁합 잘 맞는 남녀의 결혼만큼이나 인생의 즐거움이 된다고 해서,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불어로는 ‘마리아주(mariage 결혼)’라고 한다.
최고의 마리아주란 ‘내 입에 맛있는 조합’이다. 따라서 애호가들이 경험으로 전하는 원칙을 참고로 나만의 마리아주 찾기에 도전해본다면 삶의 즐거움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철형
국내 최대 와인 전문 유통 기업 ㈜와인나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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