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to Fly Again? SPAC

올해 상반기 냉탕과 온탕을 오간 투자 상품으로 단연 스팩을 꼽을 수 있다. 유망한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일부 스팩은 증시 상장과 동시에 상한가를 질주했지만 대주주 지분매각 제한이 돌발 변수로 떠오르자 급락세로 돌아섰다. 과열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지분매각 제한 논란은 지난 7월부터 적용된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스팩을 예외로 인정한 덕분에 일단락됐다. 하지만 증시가 박스권에서 맴도는 사이 스팩 주가도 지지부진한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부 스팩은 공모가 수준을 겨우 지킬 정도로 저평가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원금을 보장하는 스팩의 특징을 감안하면 중장기 투자 수단으로 여전히 매력이 크다고 조언한다.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스팩에 투자하는 공모펀드도 내놓고 있어 개인투자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은 공모로 자금을 마련, 증시에 상장한 후 최대 3년 이내에 비상장 우량기업을 합병하는 ‘페이퍼 컴퍼니’다.
일러스트·이경국
일러스트·이경국
지난해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후 처음으로 나온 새로운 개념의 투자 상품이다. 다른 기업과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미국에서 처음 개발돼 캐나다와 유럽 주요 국가에서 대체투자 수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팩은 비상장 기업과 합병 후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다만 공모자금을 모집하기 전에는 합병대상 법인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모 전에 합병 법인이 정해지면 스팩 발기인이나 임원 등 관계자들이 주가를 조작하거나 부당한 이득을 챙길 우려가 있어서다.

올해 3월 3일 ‘대우증권스팩1호’가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이후 7월까지 9개의 스팩이 증시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녹색성장이나 신성장 동력을 갖춘 기업을 합병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M&A는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사업 영역이지만 대규모 자금이 필요해 그동안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스팩이 큰 관심을 모은 것은 개인투자자들도 소액으로 M&A에 참여해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우량기업과의 합병을 재료로 스팩 가격이 오르면 상당한 이익을 낼 수 있다.

이런 기대를 반영해 ‘우리투자스팩1호’는 청약 경쟁률이 193 대 1에 달했다. ‘미래에셋스팩1호(163 대 1)’, ‘동양밸류오션스팩(101 대 1)’ 등도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미래에셋스팩1호’는 상장 이후 8일 중 7일간 상한가로 치솟아 과열 논란까지 불러왔다. 현대증권, 대우증권 등의 스팩들도 가격 제한 폭까지 오르며 열기를 뿜었다.

잘나가던 스팩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법인세법 시행령 조항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정부가 추진했던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기업 간 합병 때 피합병 법인의 최대주주가 합병 후 세제혜택(과세이연)을 받기 위해선 3년간 주식을 단 1주도 팔아선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런 사실이 증시에 퍼지자 우량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목표로 설립된 스팩에는 치명적이란 지적이 나오면서 스팩이 일시에 힘을 잃었다.

기업이 증시에 상장할 때도 최대주주의 지분매각을 제한하는 보호예수기간이 1년에 그치는데 합병 후 3년간 못 팔게 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란 불만이 이어졌다. 결국 정부가 증권업계의 의견을 수용해 스팩에 대해서는 대주주의 지분매각을 제한하는 규제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논란은 가라앉았다.

세제 문제가 해결되자 그동안 지나치게 저평가됐던 스팩을 다시 눈여겨보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스팩은 일반 주식과 달리 원금이 보장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팩 자금의 95% 이상은 한국증권금융에 예치된다.

증권금융에 맡긴 자금은 연 3% 이상의 확정 금리가 보장되는 안전자산에 투자된다. 목표로 삼았던 합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은 신탁했던 예치금을 지분율에 비례해 돌려받는다. 따라서 M&A에 실패하더라도 원금은 거의 되찾을 수 있게 된다.

결국 공모가를 밑돌거나 공모가 수준에서 횡보 중인 스팩은 M&A 이슈를 감안하면 투자 매력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화증권은 스팩별로 주당예치금과 현재 주가를 비교해 추가 상승 여력이 큰 종목을 골라내는 방식을 소개했다.

주가와 주당예치금의 차이를 예치금 대비 프리미엄으로 보고 이 수치가 낮은 종목이 가격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7월 7일 종가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미래에셋스팩1호’의 프리미엄이 34%로 가장 높은 것으로 계산됐다.

‘현대증권스팩1호’도 16%로 비교적 프리미엄이 높았다. 반면 ‘신한스팩1호’는 2%로 가장 낮았고 ‘우리스팩1호’, ‘동양스팩1호’, ‘히든챔피언스팩1호’ 등도 5%대 이하에 그쳐 밸류에이션 매력이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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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이후 희석 주식률을 감안한 가중평균 발행가격이 주가에 비해 낮은 스팩을 가려내는 방법도 유용하다. 7월 7일 종가로 보면 ‘우리스팩1호’의 가중평균가격 프리미엄이 12%로 제일 낮았다. ‘동양스팩1호’와 ‘히든챔피언스팩1호’도 나란히 14%대로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한 것으로 계산됐다.

오주식 한화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사례를 보면 스팩은 합병대상 기업발표를 앞두고 주가가 상승하는 이른바 ‘이벤트성’ 주가 상승 흐름이 흔히 나타난다”며 “스팩이 합병에 실패하더라도 사실상 원금이 보장되고 합병이 성사되면 기대심리에 따른 주가 상승이 가능하므로 공모가 근처에 있는 스팩은 투자 매력이 상당히 크다”고 평가했다.

공모가나 가중평균가격과의 차이뿐 아니라 스팩 경영진의 면면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스팩 스폰서로 나선 증권사의 명성은 물론이고 스팩 경영진의 능력과 M&A 경험에 따라 어떤 기업과 합병이 성사되는지가 결판나기 때문이다. 이는 스팩의 주가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스팩을 고르기 전에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최근에는 공모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스팩에 투자하는 상품도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부자산운용이 7월부터 동부증권을 통해 판매에 들어간 ‘동부스팩증권투자신탁1호’는 스팩에 특화한 첫 공모펀드다. 이 상품의 장점은 스팩 공모 때 개인이 아니라 기관투자자 자격으로 참여해 물량배정 경쟁에서 유리하다는 점이다.

홍현기 동부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스팩 초기 7건의 공모 때 청약 경쟁률을 보면 개인은 평균 84.8 대 1에 달한 반면 기관은 6.6 대 1에 그쳐 큰 차이를 보였다”며 “스팩펀드에 가입하면 기관투자자 자격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기 때문에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 본부장은 “스팩은 상품 특성상 합병 성사여부에 따라 수익률에서 큰 격차가 나므로 개별 스팩에 투자하면 손실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스팩펀드로 투자하면 위험을 분산하는 장점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펀드는 증시에 입성하는 스팩을 우선적으로 자산에 편입하되 상장 이후 스팩별로 주가흐름을 봐 가며 저가에 추가 매수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합병이 성사되고 재상장되면 순차적으로 매도하고 단기 급등할 경우 차익을 실현한다. 회사 측은 추가수익을 노리기 위해 공모주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도 투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동부 외에도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공모 형태로 스팩에 투자하는 펀드를 준비 중이어서 연말까지 종류가 더 다양해질 전망이다.

박해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