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화 유동성과 금융변수를 중시하는 시각들은, 이제는 출구전략까지 거론되고 금융변수가 리먼사태 이전으로 돌아간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났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실이 많고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점을 들어 위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논란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금융위기 극복 경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한 나라의 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이 순서대로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실물부문에 자금이 들어가 경기가 회복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이제 막 7부 능선을 넘고 있는 중
‘위기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유동성 위기는 극복됐으나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고 실물경기를 회복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 극복과제는 이제 출구전략을 놓고 논쟁이 거세지는 점을 감안하면 개별기업 혹은 금융사별로 차이는 있으나 국가에서 관장해야 할 단계는 지난 상황이다.
금융위기 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위기를 낳게 한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게 시스템을 마련하는 두 번째 단계인 금융시스템 위기극복 과제도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위기극복 정도로 본다면 7부 능선은 지나고 있는 셈이다.
한편에서 부실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 중개기능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병행해 나감에 따라 대내외 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대내외 경기는 전형적인 ‘불황형 경기회복 과정’으로 지난해 3월 이후 소비지표부터 개선되기 시작해 지금은 기업의 설비투자 관련 지표까지 개선되는 상황이다.
한국은 경기후행지표인 실업률 등도 개선이 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고용지표 개선은 여전히 불확실한 단계다. 이 때문에 향후 경기 모습을 놓고 2단계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첫 단계 경기 논쟁은 1년 전 과연 세계경기가 저점을 통과했느냐 여부를 두고 벌어졌던 논쟁으로 이제는 저점을 통과했다는 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가열되고 있는 2단계 경기 논쟁은 경기 회복의 모양을 놓고 벌이는 것으로 특히 더블 딥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위기 직후 극단적인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 글로벌 증시는 지금까지 비교적 견실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지난해 여름 휴가철이 끝난 이후 과잉 유동성과 출구전략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면서 글로벌 증시는 상승 속도가 완만해지는 가운데 기업 혹은 업종 간 변동 폭이 확대되는 장세가 약 11개월 이상 지속돼 왔다.
현 증시를 뉴욕 월가에서 주가예측기법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을 토대로 진단해 본다면, 금융위기 이후 ‘Ⅰ’ 국면과 ‘Ⅱ’ 국면을 거쳐 ‘Ⅲ’ 국면 후반부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변동성 장세는 지속되지만 갈수록 그 폭이 적어지는 것도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 소로스 이론대로라면 증시가 다시 한 번 상승하기 위해서는 유동성보다 경기와 기업실적과 같은 기초여건, 특히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와 한국경기 향방은 심리적 요인과 네트워크 효과에 주목
1990년대 이후 세계경기는 경기 사이클이 사라졌다든가, 사이클이 있더라도 그 폭이 작아졌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장기 호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겪은 2008~2009년의 세계경기와 한국경기는 그 어느 쪽도 옳은 결론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오히려 금융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한층 진전된 글로벌 경제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졌고 심리요인과 중국 경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또 과거의 경기 순환은 주로 인플레이션과 관련돼 발생했다. 종전 경기순환 이론대로 한 나라의 경기가 호황을 지속해 인플레가 문제가 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대신 경기는 하강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1990년대 이후 경기순환은 주로 자산버블과 그로 인한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이런 경기침체도 북유럽 위기(1990년대 초),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 일본의 장기침체(1990년대) 등 국지적으로 발생했을 뿐 이번처럼 전 세계적인 침체로 이어진 적은 없다.
이번 침체도 금융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는 종전과 같으나 세계적으로 동시 침체가 진행됐다는 점, 금융 불안에서 실물경제 침체로 전이속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는 점, 경기 하강 폭이 짧은 순간에 대공황 때와 버금갈 정도로 컸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 결과 종전의 경기순환 패턴을 기초로 한 전망이 경제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측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예측기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예측기관들이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확인된 네트워킹 효과에 심리적 요인, 그리고 중국 경제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검을 토대로 ‘네트워킹 효과’와 ‘심리적 요인’ 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려놓고, 중국 경제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다면 세계경기와 한국경기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금융 네트워킹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하느냐가 세계경기와 한국경기의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문제가 된 파생금융상품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기 위한 규제가 시행돼 효과를 거두더라도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한 시장의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세계경기와 한국경기가 ‘긍’과 ‘부’,‘부’와 ‘침’이 혼재하는 과도기 현상을 극복하고 위기 이전에 보였던‘뉴밀레니엄 트렌드’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규제가 강화되면 이 범위 밖에 존재하는 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네트워킹을 형성할 것이며 관련 기관이 그 실체를 적시에 파악해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세계경기와 한국경기는 과도기 혼재국면이 의외로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과 투자자 관점에서 향후 세계경기 네 가지 시나리오 주목
위기 이후 경기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단기적인 ‘더블 딥’및 중장기적인 ‘경기 사이클’과 관련해 가열되고 있는 두 가지 논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세계경기와 한국경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이른바 ‘더블 딥’ 논쟁이다.
현재 밴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국제통화기금(IMF), 국가별로는 신흥국들이 중심이 돼 앞으로도 회복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전미경제연구소(NBER) 등은 근본적인 문제가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이는 회복세는 조만간 침체국면에 빠질 것으로 주장했다.
또 다른 하나는 ‘중장기 경기 사이클’ 논쟁이다. 버블론의 저자인 해리 덴트는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는 2010년대에는 경기가 장기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오래전에 내다봤다.
반면 미국의 와튼스쿨 교수인 제라밀 시겔 등은 갈수록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중국, 인도 등에 의해 2010년대 세계경기를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글로벌 해법을 제시해 덴트의 비관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향후 경기 전망을 놓고 벌어지는 ‘더블 딥’과 ‘경기 사이클’ 논쟁을 조합하면 첫째, 지난해 2분기부터 회복한 경기가 앞으로 지속되거나 둔화된다 하더라도 경영와 증시 흐름에 적합하게 연·착륙되는 중장기 낙관 시나리오 둘째, 회복세가 앞으로 1년 정도 지속되다가 그 후 침체되는 단기 낙관 시나리오 셋째, 회복세가 위기대책 후유증으로 침체되다가 중장기적으로 성장 추세 선에 재진입하는 단기 침체 시나리오 넷째, 올 여름 휴가철 이후 침체국면에 진입한 경기가 오래 지속된다는 중장기 침체 시나리오 등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온다.
기업과 투자자들은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시계 확보 뒤 투자전략’ 필요
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본 모습을 찾기 이전까지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 간의 선순환이냐 악순환 관계냐에 따라 ‘긍’과 ‘부’,‘부’와 ‘침’이 혼재하는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경제주체들은 시장지배력 강화 등 성장기반을 마련하면서도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리스크(위험)관리에 힘을 쏟는 ‘투 트랙(양면)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도 차는 있지만 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본 모습을 찾은 이후에도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는 커질 것으로 보여 불확실성에 대비한 전략은 상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기업인들은 앞으로 경기와 주가는 ‘대침체기와 대호황기는 한순간에 언제든지 바뀔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영을 하면서도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시계 확보 뒤 경영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 향후 경기와 관련해 예상되는 ‘네 가지 경우의 수’로 본다면, 2010년대 재테크 시장은 첫 번째 경우대로 주식 관련 상품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식 관련 상품을 사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이 기대된다. 하지만 나머지 경우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최적의 조합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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