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듯하다. 비유하자면, 남자의 일생에는 메인 뉴스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여자의 일생에는 온갖 지역뉴스들이 존재한다.
여자의 일생에는 누군가 사소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들려줄 수도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자들이 ‘베스트 프렌드’에게 목숨을 거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 평생의 베스트 프렌드 역할에 자매만큼 완벽하게 세팅된 관계가 또 있을까. 하지만 친밀한 유대관계 속에는 묘한 경쟁 심리 또한 작용한다.
같은 성(性)으로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성장하고, 학교에 들어가고, 일과 가정을 가지고, 아기를 낳아 키우기까지 여자의 일생이라는 큰 틀에서 알게 모르게 서로 경쟁 심리를 가지게 되는 것 역시 자매들이다.
이런 유대감을 넘어서서 자매라는 관계의 연결고리를 흥미롭게 읽어낸 그림들이 있다. 같은 모습으로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들. 실존 인물들이지만 더욱 관심이 갔던 이유는 키워드가 ‘자매’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특별하고도 비밀스러운 속성 때문일까. 이러한 소재의 그림들은 ‘형제’나 ‘남매’의 버전으로는 아직 보지 못했다.
퐁텐블로 화파(school of Fontainebleau),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Gabrielle d’Estrees and one of her sisters), 1590년경,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붉은색 커튼이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걷히고 두 명의 여자가 드러난다. 그림 속에 알몸으로 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여자들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모습이다. 한 명이 손을 들어 다른 한 명의 젖가슴을 만지고 있는데, 둘은 과연 어떤 사이일까.
그림 속 여자들은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정부였던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녀의 여동생이다. 오른쪽에 앉아있는 여자가 가브리엘이고 그녀의 가슴을 만지는 쪽은 그녀의 동생이다. 가슴을 만지는 것은 당시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동생은 앙리 4세와의 결혼을 앞둔 가브리엘을 축하하고 또 이미 뱃속에 왕의 아이를 가진 언니에게 순산을 기원하고 있다. 가브리엘이 한 손에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결혼반지는 왕에게서 청혼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혹자는 가브리엘과 동생이 왕을 사이에 두고 경쟁했으나 언니인 가브리엘이 이겼음을 나타내는 그림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이 그림 역시 자매간의 묘한 경쟁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동생은 언니에게 곧 닥치게 될 슬픈 결말을 아직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가브리엘은 스무 살 때 앙리 4세를 만났다. 앙리 4세는 이미 결혼해서 왕비를 두고 있었지만 그들은 곧 사랑에 빠졌다. 심지어 앙리 4세는 가브리엘과 결혼하기 위해 왕비와의 이혼도 감행했을 정도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기 사흘 전, 뱃속에 5개월 된 아이를 가지고 있던 가브리엘은 진통을 느껴 아이를 조산하고 의사들이 몸속에서 죽은 아이를 절단해 꺼낸 후 결국 자신도 죽게 되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그림 속 자매의 뒤편 벽난로 옆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여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집안의 하녀이거나 가브리엘의 주변 인물일 것이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곧 태어날 아기의 옷을 만들고 있었던 것일까.
프랑스 왕비가 되기 사흘 전 숨을 거둔 여인 가브리엘. 그림을 보며 그녀의 슬픈 인생의 종결과 한을 이해하고 나누어 가진 사람이 저 여동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몸에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아 더욱 닮아 보이는 그녀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머리나 눈썹 색깔 등 이목구비의 윤곽이 조금씩 다르다. 익명의 화가에 의해 그려진 이 작품의 제작자는 퐁텐블로 화파로 추정된다.
퐁텐블로 화파는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부흥시킨 프랑수아 1세에 의해 형성된 화파다. 프랑수아 1세는 낡은 요새에 불과했던 퐁텐블로 성을 화려하게 재건했는데, 이때 주로 이탈리아에서 유입된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퐁텐블로 화파가 탄생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성을 장식할만한 미술품을 제작하는 일이었고, 장식용 목적에 맞도록 화려하고 관능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영국 화파(British School), <콜몬들리 자매> (The Cholmonde-ley Ladies), 1600~1610년, 영국 런던 테이트브리튼 갤러리 소장
이번엔 쌍둥이처럼 똑같은 두 명의 여자가 각각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도 등장해 유명해진 ‘콜몬들리 자매’. 이 자매들만큼 드라마틱하게 운명적으로 이어진 여자들이 또 있을까.
‘콜몬들리 집안의 두 자매, 같은 날 세상에 태어나서, 같은 날 결혼했고, 같은 날 아이를 낳았다’는 문구가 붙은 그림. 볼수록 놀랍고 신기한 그림이다. 이런 기념비적인 사건을 그냥 넘길 수는 없고, 그림으로 남기기 위해 화가를 불러 주문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속 여인들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세로 아기를 안고 있다. 나란히 놓인 베개와 나란히 안겨 있는 아기들. 그녀들의 인생이 얼마나 닮아있는가를 한눈에 느끼게 해 준다.
같은 날 태어나고 결혼했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날 아이까지 낳다니 요즘으로 말하면 해외 토픽감이다. 문득 그녀들의 이후 인생까지도 궁금해지는 건 지나친 호기심일까.
왕족 콜몬들리 가문에서 함께 태어나 같은 인생을 살았던 자매.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의 섬세한 레이스나 장신구들, 고급스러운 붉은색 천과 아기들이 입은 화려한 옷을 보니 왕가의 여자들 초상화답다.
특히 이러한 장식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던 것은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가 매우 좋아하는 화풍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작은 선 하나하나까지 모두 강조해 화려하게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 영국 화파에서 추구하던 고급스러운 초상화 기법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그림 역시 익명의 화가에 의해 제작됐고 영국 화파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림 속 자매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다른 윤곽도 드러난다. 왼쪽 여인의 미간은 조금 더 넓고, 얼굴의 윤곽이 보다 고집스럽게 느껴진다.
오른쪽 여인의 콧날은 보다 오똑하며, 입 꼬리는 약간 더 올라가 좀 더 친절한 인상이다. 계속 보면 볼수록 조금씩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두 아기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듯 다른 자매들은 얼마나 끈끈한 유대감을 갖고 살아갔을까. 또 이 그림을 함께 그리는 동안 같은 자세로 아이를 안고 그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 같은 날, 같은 가문으로 시집가 같은 인생을 살며 경쟁하진 않았을까.
아니면 서로의 인생을 누구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을까.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며 전통적인 가족 관계도 해체된다고 하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온 자매 관계의 속성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연년생인 필자의 여동생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강지연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네이버 블로그 ‘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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