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펀드에 가입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환헤지형펀드를 선택한 게 원인이었다. 환노출형 펀드는 여전히 1%대 수익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환노출형 펀드로 바로 갈아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고민이 많다.
해외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남유럽에 이어 헝가리의 재정 문제까지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환율 급등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달러나 투자국 통화로 헤지를 하는 환헤지형 펀드들의 환차손 규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지난달 초 만해도 1100원 선이던 원·달러 환율은 한 달 만에 1250원 선까지 치솟은 뒤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최근 환헤지를 하지 않은 환노출형이 환헤지를 한 펀드를 수익률에서 크게 앞서고 있다. 펀드 평가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환헤지형 펀드는 연초 이후(6월 9일 기준) 9.46%의 손실을 냈다. 전체 해외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 마이너스 8.58%보다도 부진한 성과다.
반면 환노출형 펀드는 같은 기간 2.16%의 손실만 냈다. 환헤지를 한 펀드보다 손실 폭이 4배 가까이 작은 것이다. 최근 한 달간을 놓고 보더라도 수익률 차이는 확연히 나타난다. 환헤지형은 1.99%의 손실을 낸 반면 환노출형은 1.37%의 수익을 냈다. 이는 최근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환노출형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 덕이다. 환노출형 펀드들은 투자 대상국의 통화로 투자를 한 뒤 수익을 거둘 때에는 원화로 환전하는 펀드다. 이에 해당국 통화가 강세(원화 약세)면 직접적인 투자 성과 이외에 환차익까지 누릴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상황에서는 환율 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헤지를 한 펀드들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주가 상승에 따른 이익을 환차손으로 까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후정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환노출형은 투자국 통화로 직접 투자를 하기 때문에 투자국 통화가 강세가 되면 환차익이 생기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환노출에 따른 수익률 차이는 지역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원화 약세가 강하게 나타나는 지역일수록 환노출형 펀드의 수익률이 환헤지형보다 높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안전자산인 달러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달러로 헤지를 하는 미국 펀드들에서 환노출형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지난 한 달간 ‘삼성미국대표주식 A’의 환노출형은 4.12%의 수익을 냈다. 그러나 환헤지형은 마이너스 6.36%의 부진한 성과를 냈다. 브릭스 펀드나 동남아 펀드 등도 달러의 덕을 톡톡히 봤다.
대부분 운용사들이 이머징마켓 펀드의 헤지를 달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지난 한 달간‘블랙록월드광업주 A’의 환헤지형의 손실 규모(-7.64%)는 환노출형(-1.02%)의 7배에 달했다.
환율이 연초 대비 7.4%나 오른 일본 펀드들도 원화 약세의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일본 펀드들은 해외주식형 펀드 가운데서도 가장 부진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환노출형 펀드들은 환차익으로 손실 폭을 크게 줄였다.
원·엔화 환율은 연초 대비 7.4% 이상 오른 상태다. 지난 한 달간 ‘삼성당신을위한N재팬’의 환노출형(-2.65%)의 손실 폭이 환헤지형(-9.07%)보다 3배 이상 작았다.
중국 위안화로 헤지하는 중국 본토 펀드 역시 노출형들의 성과가 좋았다. 원·위안화가 연초 대비 5.6% 상승한 덕분이다. ‘한국투자네비게이터중국본토 A’의 환노출형은 지난 한 달간 3.23%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환헤지형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마이너스 1.9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유럽 펀드의 경우에도 환노출형이 환헤지형보다 성과가 양호했다. ‘푸르덴셜유로 A’의 환노출형(5.41%)의 지난 한 달간 수익률이 환헤지형(2.17%)을 2배 이상 앞섰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수익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하더라도 환노출형이 해외 펀드 투자의 정답은 아니다. 환율은 대외 경제 변수나 외환 보유고 등에 따라 움직이는 살아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원화 강세로 기조가 바뀌면 환헤지형의 수익률이 언제든 환노출형을 앞지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3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1550원 선까지 급등했다 3개월 만에 1240선까지 떨어지자 환헤지형이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원화 강세 현상이 강하게 지속됐던 3개월간 수익률(2009년 6월 9일 기준)은 43.35%로 환노출형 수익률(31.18%)을 크게 웃돌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달러 강세 현상이 둔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원화 약세 효과가 사라지면 상승곡선을 그리는 환노출형의 수익률도 조정을 받게 된다.
이성권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유럽 재정위기와 북한 리스크 등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환율의 변동성이 높게 나타날 것”이라면서도 “외환보유고 확충이나 주요 수출기업들은 경상수지 흑자기조 등의 호재가 맞물리면서 이번 달 말 1200원대로 떨어진 뒤 연말에는 1100선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펀드에 가입하면서 환헤지형을 선호한다. 현재 환헤지형은 612개로, 환노출형(161개)에 비해 4배 가까이 많다. 그만큼 원화 강세에 베팅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환노출형과 환헤지형의 수익률이 환율 변동에 따라 수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만큼 향후 환율의 방향성을 예단해 투자하려는 전략은 무의미하다고 조언한다.
개인투자자들은 정확한 환율 예측이 어려운 데다 맞히더라도 환율의 방향성이 금세 바뀔 수 있어서다. 이에 ‘투자 목적’에 맞는 환헤지 전략을 추천한다.
투자국의 자산 가치는 물론 통화에도 투자를 하고 싶다면 환노출형을, 순수하게 자산 가치에만 투자를 하고 싶다면 환헤지형을 택하라는 것이다.
갈재홍 신한BNPP자산운용 투자커뮤니케이션 팀장은 “투자국의 기업 실적이 좋아지고 경기가 살아나면 통화도 강세가 되게 마련”이라면서도 “해외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때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투자국의 산업 전망에만 투자할 것인지, 산업 전망과 통화 전망에 함께 투자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투자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다만 특정한 테마형 펀드에 가입할 때는 전략적으로 환헤지형 또는 환노출형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수익을 얻는 원자재 펀드에 가입할 때는 환헤지형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원자재 가격과 달러의 가치는 반비례하는 만큼, 이 펀드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원화 강세)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현철 메리츠종금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펀드에 가입한다고 하는 것은 반대로 달러 약세를 예상하는 것과 같다”며 “달러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환노출형을 선택하게 되면 환차손이 발생해 투자수익이 낮아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환헤지를 하는 경우 헤지 비용이 드는 점은 투자 전 고려 대상이다. 선물환 매도로 환헤지를 할 때 드는 비용은 투자자 부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운용사들이 투자자들의 헤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환헤지 비용이 큰 이머징마켓의 경우 아예 환노출을 시키거나 개별 통화 대신 달러로 헤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장순모 KB자산운용 상품팀장은 “아세안이나 신흥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펀드는 환헤지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달러로 헤지를 하고 있다”며 “같은 지역의 펀드라고 하더라도 운용사에 따라 헤지 비율도 50∼100% 선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보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bm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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