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주택 시장 불황에다 건설업계 구조조정을 앞두고 투자 심리가 바짝 얼어붙은 탓이다. 유로화 약세로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수주 시장에서 유럽계 건설사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주가 약세를 부추겼다.
하지만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정부와 채권 은행단을 중심으로 건설사 구조조정의 밑그림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불확실성이 걷히는 분위기다. 업계 재편 방향이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진전되는 모습을 보이자 “최악의 상황은 지나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확산되고 있다.
상반기 동안 주가가 워낙 약세를 보인 탓에 저평가 매력도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다. 일부 분석가들은 ‘주가가 충분히 빠졌다는 것 이상의 호재는 없다’는 증시 격언을 내세우며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건설주와 함께 올해 상반기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던 은행주도 5월 말을 기점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은행주는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더블 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 가능성이 대두되자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익 성장률이 작년만 못하다는 회의적인 전망도 주가 부진의 요인이었다. 하지만 은행주 역시 중장기로 보면 투자가치가 높아졌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가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까지 떨어진 상황에서는 분명 가격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투자 전략가들은 건설주, 은행주 등 하반기 턴어라운드가 기대되는 업종의 대표주를 눈여겨볼 시점이 다가왔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주의 경우 업계 구조조정이 주가 반전에 힘을 보태고 있는 데다 업황도 서서히 바닥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면 우량한 회사들은 오히려 안정성이 부각돼 주가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왕상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구조조정 본격화는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주가에 긍정적”이라며 “특히 대형 건설사에 대한 시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대형 건설주에 대해 상반기 주가 급락으로 매력적인 밸류에이션 구간에 진입했고, 구조조정은 대형 건설사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으며, 해외 건설 시장에서의 수주 모멘텀은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하반기부터 건설주는 기술적 반등 이상의 주가 턴어라운드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일부 종목은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저점까지 하락해 업황과 실적 회복이 가시화할 경우 비교적 큰 폭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지난해 하반기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인정비율(LTV) 등 정부 규제 영향으로 하락한 주택 가격은 하반기 들어 안정세를 보일 전망이다. 강승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과 가계소득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8%와 7.3%로 내수경기 회복세가 뚜렷하다”며 “거시지표 개선으로 주택 시장도 하락 일변도에서 벗어나 안정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강 연구원은 “단기 수급 측면에서도 미분양을 포함한 주택 공급은 2009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공급 감소 영향은 소득 증가 효과와 함께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준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4분기 입주 물량은 3분기에 비해 0.3% 감소에 그치겠지만 작년과 2008년 4분기를 비교하면 각각 16%와 24% 급감할 전망”이라며 “통상 4분기 입주 물량이 다른 분기에 비해 20∼30%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량 부담은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줄어든다고 봐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내년은 올해에 비해 연간 입주 물량이 56%나 감소할 것으로 보여 실질적인 공급 부족을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시장은 경쟁 격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업체들의 선전이 기대된다. HMC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은 올해 600억 달러에서 내년에는 650억 달러로 소폭 증가할 전망이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올해 22%에 달하지만 내년에는 8%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다. 유로화 약세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건설사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김 연구원은 “공기 단축 능력과 품질관리 등 한국 업체들의 강점은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며 “중동의 화공플랜트에 치우쳤던 해외 사업 포트폴리오도 개선될 전망이어서 해외 수주 증가 추세는 여전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상위 5개 건설사의 경우 건설부문 매출 중 해외 비중은 올해 32%에서 내년에는 37%, 2012년에는 41%까지 뛰어오를 것으로 기대돼 국내 주택경기 부진을 해외 사업으로 메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장기 투자자 입장에서 은행주의 매력도 커진 상황이다. 가격도 싸고 실적 개선 움직임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어서다. 건설업계 구조조정은 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호재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LIG투자증권은 최근 은행업종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높였다. 유상호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은행권의 추정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2%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주가 수준은 절대 저평가 상태”라며 “하반기 기업 구조조정이 은행의 자산을 키울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어 주가 상승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건설사 등의 구조조정이 단기적으로 은행의 대손비용을 높여 악재가 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산 건전성에 도움이 돼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다.
은행권의 이익 규모와 직결되는 순이자마진(NIM) 전망도 나쁘지 않다. 이고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예금 중 연 4% 이상의 고금리 예금 비중이 높기 때문에 NIM 추가 상승 여력이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완만한 경기 회복으로 하반기에는 대출 성장이 기대돼 순이자이익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외국계 증권사들도 은행주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크레디리요네증권(CLSA)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100여 명의 투자자들과 미팅을 가진 결과 한국의 은행주들이 유럽 재정위기 이후 주가 급락으로 매력적인 밸류에이션 구간에 진입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소개했다.
CLSA는 “한국의 은행주들은 과거에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락한 이후 강하게 반등하는 성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익 증가의 기울기는 둔해졌지만 2011년까지 NIM의 지속적인 상승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심규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전체 PBR과 비교하면 은행주는 약 30%가량 할인된 상태”라며 “해외 변수가 안정되고 증시가 정상 궤도로 접어들면 은행주는 시장 평균 대비 15∼20%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반등 과정에서 외국인이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신중한 의견도 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유럽 재정위기 이전까지 국내에서 외국인은 은행주를 1조8000억 원 순매수했지만 유럽 이슈 이후 매물은 6000억 원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에 민감한 외국인의 특성상 달러 가치가 재차 급등하는 등 금융 시장이 출렁일 경우 외국인이 대량으로 은행주 매물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해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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