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George Soros

[창간 5주년 특별인터뷰] 대형 유통업 투자 ‘대박’… 유로화 불안 조장 비판도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의 모험심이 또 발동한 모양이다. 소로스는 왜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들고 나섰을까.

최근 출간한 저서 <소로스 강연>(Soros Lecture)을 통해 “기존 경제학으로는 또 다른 위기(금융 위기)를 막을 수 없다”며 새로운 경제철학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책은 작년 10월 닷새에 걸쳐 헝가리 부다페스트 중부유럽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것으로 국내에서는 <이기는 패러다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사실 국제 금융계에서 조지 소로스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도 드물다. 한편에서는 소로스를 ‘투자의 천재’이자 ‘국제적인 자선사업가’로 극찬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환 투기꾼’이라고 맹비난한다.

최근에도 그는 “유로화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라고 언급해 유로화 가치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가 헤지펀드를 이용해 유로화 약세에 베팅해 놓고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의심한다.

투자 천재 vs. 자본주의의 악마

실제 그는 헤지펀드인 ‘퀀텀펀드’를 운용하면서 공격적인 환 투기로 세계 경제를 뒤흔든 전력이 있다. 1992년에는 영국의 파운드화를 집중 투매하는 방법으로 단숨에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1998년에는 달러 강세에 베팅해 동남아시아를 외환위기에 몰아넣은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그를 가리켜 ‘자본주의의 악마’, ‘국제적 환 투기꾼’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한 일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소로스는 그러나 이렇게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공산국가의 자유화와 개발도상국의 민주화에 쏟아 부었다. 때로는 그런 나라의 지도자들과 경제개혁 방안을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가 자선사업가의 영역을 넘어 ‘실천가’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의 생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끌려갈 뻔한 위기를 겪었다.

17세부터 26세까지 젊은 시절은 영국에서 보냈지만 생활은 비참했다. 웨이터, 마네킹 공장 직원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영국 런던정경대(LSE)에 입학한 그는 세계적인 석학 칼 포퍼(Karl Popper)를 만나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창간 5주년 특별인터뷰] 대형 유통업 투자 ‘대박’… 유로화 불안 조장 비판도
소로스는 칼 포퍼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지칭한 나치즘과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열린사회인 개인주의 사회를 지향했다. 195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투자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1969년에 상품투자 전문가인 짐 로저스(Jim Rogers)와 ‘퀀텀펀드’를 설립해 명성을 떨쳤다. 이 펀드의 수익률은 설립 후 20년간 연평균 34%나 됐다.

소로스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99년 1월 대림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을 인수했다가 2005년 말에 매각해 수백억 원의 차익을 냈다.

소로스만의 투자 패턴과 철학

소로스가 어디에 투자하는지는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다. 그는 최근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의 주식을 사들였다. 14일 데이비드 웨이 알리바바닷컴 최고경영자(CEO)는 주주총회에서 소로스가 작년 3분기 알리바바닷컴의 주식을 사들여 지금은 최대 투자자 중 한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이 소식에 이날 알리바바 주식은 홍콩거래소에서 4% 이상 반등했다.

그의 투자 스펙트럼은 폭넓은 편이다. 지난해는 유통주와 금 상장지수 펀드 등에 관심을 가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금융시장 최고 자문가 중 주요 인사들의 투자 특징과 패턴을 분석했다.

소로스가 운영하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지난해 초 월마트 지분을 135만 주 매입하고 홈디포(The Home Depot)와 로우스(Lowe’s Home Improvement Warehouse) 지분을 매입하는 등 유통주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암울한 출발을 했던 2009년 초, 다른 업계보다 눈에 띄는 선전을 보였던 산업이 대형 유통 업계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가계 재정난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많은 소매업체들은 타격이 컸던 반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사람들이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은 셈이다.

또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지난해 4분기엔 세계 최대 금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 골드 트러스트에 대한 투자를 152%나 늘렸다. 소로스는 언론에서 “올해도 금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언급해 전문가들은 소로스를 따라 금 강세에 베팅하는 모습이다.

소로스는 굵직한 이슈에 대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최근 남유럽발 재정 위기에 대해 그리스가 계속해서 높은 차입 비용을 부담할 경우 경기 침체와 재정 수입 감소라는 ‘죽음의 사이클’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가에 대한 조언도 거침없다. 지난 4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주최 회동에 참석해 “영국의 새로운 정부가 경제 회복을 위해 파운드화 추가 절하를 허용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이 유로존 16개 국가들보다는 경제 살리기에서 환율 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며 “옵션 가운데 하나로 파운드 추가 절하를 택할지 여부를 차기 정부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과의 특별 인터뷰에선 “금융위기 뒤 월가가 많이 변했으나 아직 충분치 않다”고 역설했다. 금융 시스템이 붕괴될 상황에 처하면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나 구제금융이 잘못된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구제금융은 부실화한 자본을 대체할 새 자본을 시장에 투입하는 방식이 돼야 하는데 오바마 정부는 자본 대체를 통해 은행 주인을 바꾸는 게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면 월가 주요 은행들이 국유화되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은 금융사 주주와 채권 보유자는 물론 기존 경영진을 보호하는 쪽으로 이뤄졌다며 신랄한 비평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금리와 국채, 외환 등 거시경제 전망에 따라 투자하는 매크로 헤지펀드가 올 들어 마이너스 성적의 부진한 출발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헤지펀드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매크로 헤지펀드들은 올해 글로벌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 균형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지표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적잖은 손해를 봤다.

반면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등 일부 펀드는 유로화 약세에 베팅해 투자에는 성공했으나 대신 그리스 위기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

유로화 가치 하락에 베팅한다는 월스트리트 저널(WSJ) 보도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투자 방향과 관련한 발언은 결코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으며 투자에 대한 언급은 아꼈다.

다만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대마불사(大馬不死)’ 문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조치, 토빈세 도입 등 다양한 안건을 모두 협의해야 하며 세계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들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심스러운 입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움직임은 최근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사비를 털어 옥스퍼드대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경제연구소를 세울 계획이다.

소로스와 옥스퍼드대가 각각 500만 달러씩 갹출해 설립하게 되는 이 연구소는 시장만능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소로스의 주장을 반영하는 연구기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