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 와인 매너

와인과 인사하기, 와인 테이스팅과 표현
와인과 인사하기, 와인 테이스팅과 표현


테이스팅은 와인과의 첫 인사다. 테이스팅을 하게 되는 와인은 어떤 것이든 1년 동안 토양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힘껏 자란 후, 오랜 숙성을 거쳐 당신 앞에 놓였음을 기억하자.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는 짧다. 개화기 이후 한국에 본격적으로 와인이 들어오고, 1987년 와인 수입이 민영업자들에게 허가가 났지만, 와인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06년 전후의 와인빅뱅 이후다.

유명 와인의 이름 정도야 상식 축에 들고, 누구나 특별한 날에는 당연한 듯 와인을 한두 잔 기울이는 오늘날 아직도 많은 이가 와인에 대해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바로 그 짧은 역사에 기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흔히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에겐 즐겨보라 권한다. 그러나 이런 말에 몇은 ‘즐기기까지의 스트레스’에 대해 토로할 것이다. 맞다. 단순히 와인을 즐기는 이들 혹은 즐기는 경지에 있는 이들에겐 스트레스가 없을지라도, 와인을 도구로 다루어야 하는 이들에게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다.

사업상 잦은 미팅을 갖는 이들에게 와인은 단순히 술이 아닌 비즈니스의 주요 방편이자, 자신의 성향과 교양 수준을 나타내는 표현 도구 중 하나다. 중요한 자리가 많은 CEO에겐 그래서 와인이 스트레스인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을 만큼 요령을 익혀두는 것이다. 학창시절 시험 기간에 요점 정리 노트를 떠올려 보면 될 터다. 일단은 필요한 핵심만 외우고 혹은 이해하고 넘어가자.

와인과의 첫인사, 시음(wine tasting)

와인은 알아야 마시고 마셔봐야 마시는 술이기에 일단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마셔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술과는 달리 마시고 맛보는 방법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한다. 물론 술이라는 것은 잔을 받을 땐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음미하며 마시는 것이 최고다. 그러나 와인처럼 가진 컬러가 다양하고 상황에 따라 변덕이 심한 술은 첫 번째 만남에서 덥석 깨물어선 안 된다. 어떤 녀석인지, 어떤 상태인지 한번 보아주는 것이 와인과, 그 와인을 준비한 이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와인 테이스팅 하면 소믈리에가 흰 천이 깔린 바닥에 와인글라스를 기울이거나, 엄격하게 생긴 서양인들이 큰 코를 와인글라스에 박고 있는 위압적인 모습들을 떠올리지만 기본적으로는 색깔과 와인에 이물질이 있는지,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어떤 향과 맛인지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보통 테이스팅은 눈과 코와 입으로 와인을 점검해 보는 것인데, 처음 잔을 받았을 때에만 훌륭하게 해내도 그 자리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물론 테이스팅 후에는 감상과 함께 와인을 고른 이에 대한 감사와 칭찬의 말도 해 두도록 하자. 여기까지가 와인 자리에서의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매너다.

테이스팅은 가장 먼저 눈으로 색을 확인하는 것이다. 와인을 잔에 따르고 먼저 색깔을 감상한다. 색깔로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보는 와인이 얼마나 숙성됐는가다. 화이트 와인은 젊은 와인일수록 연두색에 가깝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황금색, 갈색으로 바뀐다. 반면 레드 와인은, 젊은 와인은 보라색을 띠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오렌지색이 가미되면서 나중에는 갈색에 가깝게 된다. 따라서 와인 색을 보면 어느 정도는 와인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즉 화이트 와인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색이 짙어지고, 레드와인은 시간이 갈수록 색이 옅어진다. 물론 와인 색은 숙성에 의해서뿐 아니라 포도 품종, 토양, 기후,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더운 지역에서 자란 와인 색이 더욱 짙다든지,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든 와인 색이 섬세하고 엷다든지 하는 차이가 있다.

다음에 따른 그 상태대로 가만히 잔을 들어 향을 맡아보자. 과일 향이나 꽃 향 또는 어릴 적 풀내음 또는 초콜릿이나 바닐라 향이 느껴지는가. 아니면 별로 향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럼 이젠, 잔을 슬쩍 돌려보자.

많이 돌리지 말고 기울여서 천천히 와인을 잔 표면에 묻히는 기분으로 돌려야 한다. 그리고 와인 잔을 바로 세워 와인이 벽을 타고 내려오는 모양새를 보도록 하자. 잔 안의 표면을 타고 내려오는 와인을 ‘와인의 눈물’ 혹은 그 모양이 브리지(bridge) 같다고 해서 ‘와인의 다리’라고도 한다.

와인 색처럼 이 또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나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정보는 와인의 점도다. 일반적으로 알코올 함량이 높은 와인은 끈적이고 단맛을 내는 ‘글리세린(glycerin)’성분도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와인의 눈물이 천천히 흐르는 와인은 이런 알코올과 글리세린 성분이 많은 와인으로 마실 때 강한 알코올감과 살짝 감미가 느껴지는 끝 맛을 기대할 수 있다.

색깔, 향, 맛으로 확인하는 방법
눈으로 하는 테이스팅은색깔을 보고 와인의 숙성도를 평가한다.
눈으로 하는 테이스팅은색깔을 보고 와인의 숙성도를 평가한다.
중요한 향 맡기는 그 다음이다. 다시 잔을 살짝 바닥에 두고 잔의 표면을 스치도록 두어 바퀴 휘휘 돌려 공기와 접촉을 시킨 후 깊이 향을 들이마신다. 이때 어떤 향(과일 향, 버섯 향, 흙냄새, 풀냄새 등)이 나는지를 느껴본다.

그리고는 이어서 입에 한 모금을 머금고 입안 골고루 돌려가면서 맛을 본다. 맛(단맛, 신맛, 짠맛, 쓴맛, 타닌 등)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혔는지를 느껴본다.

포도는 처음에는 풋풋한 풀 향기가 나고 농익으면서 과일 향이 나고 나중에 땅에 떨어져 썩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와인의 향도 이것과 비슷하다.

젊은 와인일 때는 과일 향, 허브 향이 많이 나고, 오래될수록 낙엽 쌓인 부엽토, 버섯 향, 흙냄새가 난다. 물론 향기 역시 포도 품종, 기후, 토양과 지역 그리고 숙성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앞서 말한 포도의 일생을 생각해보면 쉽게 와인의 향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의 향은 포도 자체의 향인 제1 아로마(aroma)와 발효 및 양조 과정에서 형성되는 제2 아로마, 그리고 오크통, 병에서 숙성되면서 형성되는 제3 아로마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제2, 제3 아로마를 부케(bouquet)라고도 한다.

즉 발효, 숙성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 부케인 셈이고 포도로부터 와인 양조 과정에서 생기는 포도 본연의 향이 아로마라고 생각하면 쉽다. 보통 제1 아로마는 포도 품종 아로마라고 하는데 품종에 따른 향의 구별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과일 향, 꽃 향, 허브 향 등이 주를 이룬다.

제2와 제3 아로마는 이스트 향과 베럴, 병 숙성 등으로 생성되는 복합적인 향으로 보다 섬세하고 깊은 편이다. 그리고 아로마가 지나간 후에 풍부하게 퍼지는 부케는 양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복합적인 향으로 꽃 향과 과일 향 등이 지난 다음 나무 향, 토스트 향, 숲 향 등 보다 넓고 깊은 느낌을 준다. 보통 부케가 깊고 화려하며 오래 남을수록 고급 와인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입에 충분히 한 모금을 넣고 입안에서 골고루 굴려보면서 맛을 느껴본다. 이때 필요하다면 와인을 머금은 채 공기도 후루룩 빨아들여서 향을 더 풍부하게 해보도록 하자. 술을 마실 때 ‘후룩’ 소리는 예의가 아닐 것이나, 와인 시음 때는 이런 행동이 허용된다. 물론 식사 시에도 이런 시음 행동은 실례가 된다.

목으로 넘긴 후 그 여운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도 음미해야 한다. 이것을 뒷맛(finishing, after taste)이라고 하는데, 뒷맛이 지속되는 시간을 속으로 재보는 것도 와인을 음미하는 한 방법이다. 통상 5초 정도면 괜찮은 와인이고 10초 이상이면 좋은 와인에 속한다.

프랑스에서는 코달리(1caudalie=약 1초)라 해 3초 이하면 짧고, 3~7초면 보통, 7~10초면 길고 11초 이상이면 아주 길다고 표현한다. 어떤 것은 3분 이상 10분을 넘어가는 것도 있다. 그 후 와인이 자신에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면 된다.

이철형
국내 최대 와인 전문 유통 기업 ㈜와인나라 대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