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그랜드파더스는 힐 오브 그레이스를 생산하는 힐 오브 그레이스 포도밭의 여러 블록 중 가장 오래된 블록이다.
더 그랜드파더스는 힐 오브 그레이스를 생산하는 힐 오브 그레이스 포도밭의 여러 블록 중 가장 오래된 블록이다.
호주의 국민 품종이 된 쉬라즈(Shiraz)의 고향은 프랑스 코트 드 론이다. 그중 북부 론의 코트로티와 에르미타주는 최고의 시라(Syrah)를 내는 노른자 땅이다. 호주에서는 바로사 밸리와 맥라넨 베일이 쉬라즈의 최적지다.

유전학적으로 같은 품종을 놓고 시라와 쉬라즈로 달리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시라 묘목이 프랑스에서 호주로 건너간 것만은 분명하다. 1830년 초, 호주 포도 재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제임스 버스비가 유럽에서 얻어온 포도 묘목 중 하나가 시라였다.

시라 혹은 쉬라즈를 좋아한다면 론과 호주산만 고집했을 리 없다. 시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와인 생산국에서 재배하고 있는 인기 품종이다. 프랑스에서는 론 외에도 론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랑그독 루시옹, 프로방스에서도 시라 재배가 활발하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시라(쉬라즈)가 제일 많이 생산되는 곳은 랑그독 루시옹이다.

프랑스에서는 시라, 호주에서는 쉬라즈 그럼 미국에서는?

혹시 ‘시라는 구대륙에서 부르는 말이고, 쉬라즈는 신대륙에서 사용하는 말이다’라고 뭉뚱그려 놓은 기초적인 와인 정보만을 기억하고 있다면 정보 업데이트가 시급하다. 종종 프랑스산 와인 라벨에서도 ‘쉬라즈’란 단어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데이트되지 않은 정보가 주는 당황스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같은 캘리포니아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와인에는 쉬라즈, 어떤 와인에는 시라라고 적혀 있는 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시라라고 적힌 와인을 만든 와이너리의 주인장은 프랑스계 미국인이고, 쉬라즈라고 적힌 와인을 만든 곳은 호주 와인회사의 투자가 이루어진 곳이 아니냐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쉬라즈는 그야말로 지는 품종이었다. 호주 정부는 자국의 포도 재배업자들에게 쉬라즈를 뽑고 대신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샤르도네나 카베르네 쇼비뇽 재배를 권유했다. 프랑스에서도 에르미타주를 제외하고는 시라 수확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꺼져가던 호주의 쉬라즈가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주류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와인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다.

시라와 쉬라즈의 구분을 론과 호주로만 국한해 언급하기에는 이제 너무 많은 나라에서 재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이제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이름만큼 그들의 캐릭터 또한 구분 지으며 이미 제 갈 길을 나선 지 오래다.

스페인,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스위스 등에서는 시라, 쉬라즈 표기에 대해 와인 메이커가 프랑스의 에르미타주 모델을 따라 만들었다면 시라로 표기하고, 펜폴즈 그랜지(Penfolds Grange)를 꿈꾸며 만들었다면 쉬라즈로 표기하고 있다.

“너는 너, 나는 나!” 시라, 쉬라즈 제 갈 길을 나서다
이 기갈의 타 튀르크, 엠 샤푸티에의 르 파비옹은 최고의 시라 중 하나다. 전자는 코트로티, 후자는 에르미타주가 원산지다.
이 기갈의 타 튀르크, 엠 샤푸티에의 르 파비옹은 최고의 시라 중 하나다. 전자는 코트로티, 후자는 에르미타주가 원산지다.
그렇다면 대체 시라와 쉬라즈는 어떤 점이 다른 걸까.

영국의 와인 전문가 오즈 클라크가 쓴 <품종 백과사전>을 보면 구분이 명확하다. 확연한 차이로 내세우는 기준은 단맛이다. 쉬라즈 쪽이 초콜릿, 좀 더 단내 나는 붉은 과일류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초, 마침 론과 바로사 밸리의 시라, 쉬라즈뿐 아니라 이탈리아, 칠레,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된 상위급 시라, 쉬라즈를 비교, 시음해 볼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2006년 산 투 핸즈 에리즈(Two Hands Ares)는 쉬라즈의 적나라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한 모금에 ‘저는 쉬라즈입니다’라고 또박또박 대답하는 듯했다.

1893년에 심은 묘목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캐슬러의 올드 바스타드 쉬라즈 2006(Old Bastard Shiraz 2006)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어린 빈티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가 보여주는 차이가 이런 거구나’라고 느낄 즈음, 두 와인 모두 시라에 비해 산도가 적극적으로 표현되지 않음을 발견했다.

결국 두 와인을 위해 남겨두었던 안심과 며칠을 푹 삶아 낸 돼지 삼겹 수육을 부르는 와인은 남겨두었던 엠 사푸티에의 르 메알(Le Meal)과 1년에 1600병만이 생산된다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산 시라, 투아 리타 시라(Tua Rita Syrah)였다. 이들의 육중한 타닌감과 산도의 존재감은 음식 없이 와인만을 상대하기에 버거웠다.

기타 와인 생산국 동향

이탈리아의 시라 생산량은 아직 많지 않지만 어찌됐건 전 국토에서 조금씩 생산량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투아 리타처럼 100% 시라만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는 곳보다 아직은 산지오베제, 네로 다볼라와 같은 지역 품종과 함께 블랜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캘리포니아에서 쉬라즈보다 시라라고 명기한 라벨의 와인이 더 많이 보이는 이유는 이곳의 기후가 론의 거울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시라의 본향 론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처음 시라가 심어진 때는 1970년대지만 적극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때는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시음회에 나왔던 ‘블랙 바트 시라 스테이지코치(Black Bart Syrah Stagecoach)’의 블랜딩은 마치 코트로티의 미국 버전 같았다. 97%의 시라에 비오니에가 3% 블랜딩된 와인이다.

시간이 지나자 높은 품질의 코티로티 와인에서 감지되는 동물 향까지 미약하나마 올라왔다. 아르헨티나 역시 쉬라즈보다는 시라 스타일의 와인이 많은 나라다. 반면 시라의 복합미보다는 쉬라즈의 생생한 과일 향을 추구한 남아공은 대표적인 쉬라즈 스타일을 택한 나라다.

시음회가 어느 정도 끝나갈 즈음, 자연스레 어느 와인이 가장 입에 맞았느냐는 질문이 오갔다. 좌중의 압도적인 인기를 얻은 와인도 없었고, 많은 이들에게 외면받은 와인 또한 없었다. 시라 혹은 쉬라즈가 보여주는 팔색조 매력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글 김혜주 알덴테북스 대표·사진 나라식품, 신동와인, 아영F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