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전도사’ 김은해 박사
![“내 삶의 일부가 돼버린 몽환의 도시 프라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9487.1.jpg)
국내 체코 전문가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그가 내놓는 너무나 ‘체코적인’ 식기와 영롱한 크리스털 잔에 마음은 벌써 프라하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내 삶의 일부가 돼버린 몽환의 도시 프라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9488.1.jpg)
빠듯한 유학시절, 용돈 아껴 모은 도자기
![“내 삶의 일부가 돼버린 몽환의 도시 프라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9490.1.jpg)
“한국외대 4학년 때 운 좋게도 한국 주재 체코 무역대표부 상무부 창립 멤버로 들어가게 됐어요. 당시 체코어 회화도 배울 겸 상무부 외교관 부인과 가깝게 지냈는데 저를 눈여겨봤는지 추천을 해주셨죠. 대사관 근무가 익숙해지니까 공부가 더 하고 싶더라고요. 1년간 국비유학생 시험 준비를 했죠.”
4학년 때 대사관에 취직을 했으니 ‘고속도로’를 탄 셈이지만 김 박사는 오히려 속도를 더 냈다. 체코 수교를 맞아 당시 문교부가 지원하는 장학금의 첫 수혜자가 된 그는 가방을 싸서 1993년 프라하로 떠났다. 체코의 ‘서울대’라 불리는 명문 국립대인 카렐대에서 보헤미아학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를 취득한 뒤 박사 학위는 일반 언어학으로 땄다.
“보헤미아학과에서는 체코 문학과 보헤미아 문화 전반에 관한 것을 공부해요. 당시만 해도 체코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모를 때였어요.
제가 입학하기 직전에 북한 학생 몇 명이 있었지만, 그즈음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본국으로 소환됐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졸업할 때까지 제가 유일한 한국 사람이었죠.”
![1. 프라하의 헌책방을 뒤져서 찾은 100년 된 고서](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9491.1.jpg)
“유학생이 다 그렇지만 가난하잖아요. 학교와 기숙사만 열심히 오갔는데 그래도 학교 바로 앞에 있던 맥줏집은 꽤 자주 갔어요. 체코가 세계 맥주 소비량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아세요? 맥주를 ‘흐르는 빵’이라고 할 만큼 물처럼 마시는 나라예요.
덕분에 저도 주량이 500cc 두 잔까지 늘었죠. 프라하 거리에서 제 발목을 자주 잡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전통 도자기를 파는 가게들이었어요. 너무 예뻐서 갖고 싶다고 쳐다만 보다가 간간히 번역해서 돈을 벌면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죠.”
김 박사가 MONEY를 위해 특별히 소개하는 아이템은 체코 여느 가정집의 필수품이라는 전통 도자기 식기와 크리스털 잔, 그리고 헌책방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까스로 구한 100년 이상 된 고서(古書)들이다.
우리나라 백자처럼 하얀 바탕에 푸른색 도료로 식물 문양을 새긴 체코 전통 도자기는 실제 김 박사 자신도 요리할 때 애용하는 아이템. 동글동글한 식물 문양 때문에 체코에서는 ‘치불락(양파그릇)’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살짝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유난히 영롱한 크리스털 잔 역시 체코 가정집에서는 손님접대용으로 마련하는 필수품이라고. 300년이 넘은 유리세공 역사를 자랑하는 크리스털 제품은 세계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체코의 대표 특산품이다.
보헤미아의 자유와 낭만에 매료
![프라하의 헌책방을 뒤져서 찾은 100년 된 고서](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9492.1.jpg)
매주, 매일 열리는 콘서트, 오페라 공연이 너무 많아 무엇을 볼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야 했던 시간이었다. 드보르작을 탄생시킨 나라 체코는 음악뿐 아니라 문학과 미술·건축 분야에서도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작가 알퐁스 무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예술가들. 오스트리아의 미술가 에곤 실레 역시 모계로부터 ‘체코의 피’를 받은 사람이다.
체코의 예술에 대한 얘기로 대화에 한창 열기가 오를 무렵, 목도 축일 겸 김 박사가 애초에 꺼내고 싶었던 화두인 체코 맥주 얘기를 꺼냈다. 과연 기다렸다는 듯 장황한 설명이 시작됐다.
![동글동글한 문양으로 ‘양파 그릇’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체코 전통 도자기](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9494.1.jpg)
맥주를 체코어로 ‘피보(pivo)’라고 하는데 일반 가정집 어딜 가도 피보를 담는 항아리인 ‘주반’을 볼 수 있어요. 어릴 적 주전자 들고 어른들 심부름으로 막걸리 받으러 가곤 했잖아요. 체코에서는 아이들이 근처 맥줏집에 주반을 들고 술을 받으러 가죠.”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감브리누스’, ‘라데가스트’, ‘부드바르’ 등이 체코의 베스트셀러 맥주들로, ‘부드바르’는 버드와이저의 체코식 표기다. 체코인들이 가장 즐기는 것은 단연 생맥주, 다음이 병맥주다. 캔맥주는 여행길이 아니고선 선택하지 않는 비인기 아이템이란다. 우리가 소주와 다른 술을 섞어 새로운 형태의 술을 만들어 먹듯, 체코 사람들은 흑맥주와 보통 생맥주를 섞어 ‘반반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내 삶의 일부가 돼버린 몽환의 도시 프라하”](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AD.25109495.1.jpg)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프라하는 세계 음악축제인 ‘프라하의 봄’으로 도시가 온통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체코의 ‘양파 그릇’을 감상하다 보니 그곳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서울에 체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본토만큼은 못하지만 노력한 흔적이 보이더라고요. (웃음) 제가 즐겨먹는 음식은 돼지고기를 매콤하게 버무린 ‘굴라수’인데, 우리나라의 두루치기보다는 덜 매워요. 굴라수에 흑맥주 한 잔 곁들이면 정말 환상이죠.”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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