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겸 연기자 변정수
그는 ‘에너지’와 ‘열정’이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모델로서, 연기자로서, 패션 사업가로서, 또 아내와 어머니로서, 어느 역할 할 것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사는 ‘억척’ 같은 여자다.그런데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그가 5년 전부터 조용히 나라 안팎을 오가며 가난으로 버려진 아이들의 ‘엄마’가 됐다고 한다.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모델 겸 연기자 변정수 씨의 이야기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나눔’의 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는 사람을 찾던 와중에 변정수 씨 이야기를 접했다. 마음도 외모만큼이나 아름답겠다 싶은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사견은 아닐 듯.
하지만, 그를 만나기까진 기다림이 필요했다. 때마침 9박 10일간의 일정으로 네팔 해외 봉사 활동을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두 딸을 동반한 네팔 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때론 울음바다를, 때론 웃음바다를 선사했던 네팔 빈민촌 꺼이랄리(Kailali)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출연료와 사비 합쳐 1억 원 쾌척한 ‘통 큰’ 여자 “이번에 네팔에 가서 니샤랑 멍걸라를 보고 왔어요. (사진을 보여주며) 이 아이들이에요. 너무 예쁘죠. 네팔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안 좋아요.
아이들이 구정물로 몸도 씻고, 밥도 하고 마시기까지 하죠. 집집마다 화장실도 없어서 화장실도 만들고 우물도 만들어 줬어요.
꺼이랄리는 인도 접경지역으로 아빠들은 대부분 인도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엄마랑 아이들만 남아있는 집이 많은데, 문제는 일 하러 떠난 아빠들이 돌아오지 않아 버려진 처자식들이 많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니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에 일터로 내몰리는 겁니다.”
정원, 채원 두 딸을 둔 변씨에게는 20명의 아이들이 더 있다. 2003년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의 아동 학대 방지 홍보대사로 연을 맺은 후, 2005년부터 해마다 가족과 함께 해외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슴으로 품은 아들과 딸들이다.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에 있는 17명에 이어 이번 네팔 방문 때 자꾸만 눈에 밟히는 아이 셋의 후원을 약속하면서 식구가 더 늘어났다.
다른 연예인 홍보대사와 달리 변씨는 온 가족이 ‘굿네이버스’의 홍보대사다. 2005년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해외 여행 대신 방글라데시로 해외 봉사 활동을 다녀 온 뒤 베트남, 케냐, 인도 등 매년 방문국을 바꿔가며 꾸준한 봉사 활동을 해오고 있다. 첫해엔 부부가, 다음해엔 큰딸과 다녀왔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고, 이제는 둘째딸까지 해외 봉사 활동 짐을 함께 꾸리게 됐다.
2003년 첫 CF를 찍고 받은 출연료 전부를 과자로 바꿔 북한 아이들에게 보내기도 했던 그는 최근 MBC TV 드라마 <파스타> 출연료에 사비를 보태 ‘굿네이버스’에 1억 원을 쾌척했다. 5000만 원은 칠레 지진 피해 복구 비용으로 써달라는 부탁도 함께 했다.
“물론 출연료보다 사비가 더 많았죠. 2003년에 첫 애를 낳았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움직이더군요. 봉사 활동을 나가 눈으로 보고 오면 올수록 잊을 수가 없었어요. 아이티 참사가 났을 때 현지로 함께 나가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미안해서 이번에 칠레에 도움을 조금 드렸어요.
나머지는 네팔 꺼이랄리 지역의 아동복지센터 건립을 위해 쓰여질 거예요. 이번 방문 때 일부 가정에 화장실도 만들어주고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위생 교육도 하고 왔는데 우기가 끝나는 10월쯤이면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 같아요.” “모델도, 연기자도 아닌 엄마(mom)의 마음으로”
세계의 지붕이자 천혜의 자연으로 알려진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은 장엄한 풍경과 달리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다. 굿네이버스와 두 아이의 엄마 변씨가 네팔 꺼이랄리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할 프로젝트는 일명 ‘맘(Mom) 프로젝트’. ‘맘’은 ‘엄마’의 영문 표기이면서 ‘마음’을 줄인 말이기도 하다. 꺼이랄리 지역은 구호단체들의 손이 전혀 닿지 않아 아동복지시설이 전무한 곳이다.
“아동복지센터를 시작으로 병원과 도서관, 학교 등 할 일이 너무 많은 곳이에요. ‘맘 프로젝트’의 핵심은 엄마들, 부모들의 마인드부터 바꾼다는 겁니다. 엄마들이 깨어 있으면 아이들을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버려둘 리가 없죠. 지역 내 부녀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그들을 개화시키고 그들이 또 다른 엄마들을 변하게 만들어 결국 우리가 빠지더라도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게 돕는 것이죠.
어린 여자 아이들이 속옷도 없이 축축한 진흙바닥 아무데나 그냥 앉아 있더라고요. 질염에 감염된 아이가 한둘이 아니에요. 어찌나 지저분하게 내버려 뒀던지 제가 아이 옷을 벗기고 마시던 생수로 씻겨주기도 했어요.”
듣는 이의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 무렵, 그가 사진 한 장을 꺼내 놓았다. 사진 속에는 변씨가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아이를 꼭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뿌자’라는 아인데 얘를 보고 온 뒤 후유증이 너무 심했어요. 올해 열 살인데 학교도 못 가고 동생 둘에 일할 생각조차 않는 엄마까지 세 식구를 돌보고 있어요. 동생이 아파도 돈이 없어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하더라고요. 어찌나 가여운지 제가 꼭 안고 ‘내가 엄마가 돼 줄게’ 그랬더니 뿌자도 하염없이 울기만 하더군요.”
누구나 그렇듯 그도 처음 해외 봉사 활동을 나갔을 땐 까마귀 친구 같은 아이들을 안아주고 만지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첫딸을 얻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자식 둔 ‘엄마’의 마음으로는 보듬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더란다.
“첫딸이 어렸을 땐 제가 그 아이들을 안아주고 씻겨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많이 성숙한 것 같아요. 둘째도 이제 말을 하니까 ‘엄마, 쟨 왜 팬티가 없어?’, ‘이 아이들 가난한 거야?’ 하며 물어보더라고요. 네 살배기가 자기도 먹고 싶을 텐데 과자를 아이들한테 나눠주는 거예요.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어디 있겠어요.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흐뭇한 건 큰딸이 꿈을 가지게 된 점이에요.
예전엔 미술 관련 공부를 하고 싶다더니 세계를 돌며 동물 보호를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지만 (웃음) 삶의 목표를 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게 참 흐뭇해요.”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하루 종일 자기 체중보다 무거운 벽돌을 10장씩 머리에 이고 나르는 꺼이랄리 아이들을 보며 변씨도 팔을 걷어 부치고 벽돌을 날라봤단다. 겨우 여덟 장에도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고. 그런데 열 장을 이고 날라 아이들이 받는 돈은 겨우 1루피. 1달러가 70루피니 하루 생활비 1달러를 벌기 위해선 그렇게 70번을 반복해야 하는 셈이다.
“제가 몇 번 해보고 너무 힘들어서 애들한테 이걸 왜 하느냐고 물어봤어요. 대부분이 연필도 사고 노트도 사고 싶어서라고 하더라고요. 아동복지센터 100개 건립이 목표예요. 제가 다 못하면 제 딸이라도 해야 할 일이죠.”
‘버림받은 아이들’, ‘배 고픈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위한 변정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아직도, 나눔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한다. 그저 ‘시작’이 중요할 뿐이라고. 굿네이버스 02-6717-4000.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