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9000여 개가 넘는 펀드 중 자신에게 맞는 펀드를 골라 포트폴리오를 짠다는 게 결코 만만치 않다. 이런 경우 관심을 가져볼 만한 서비스가 바로 ‘랩어카운트(wrap account)’다. 랩어카운트란 싼다는 뜻의 ‘wrap’과 계좌라는 의미의 ‘account’가 합쳐진 말로 여러 종류의 자산운용 서비스를 하나로 싼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말한다.
랩어카운트에 가입하면 주식 등을 사고팔 때마다 수수료를 내는 일반 계좌와 달리 맡긴 자산을 기준으로 일정률의 보수만 내고 자산운용, 자산배분, 지속적인 투자 평가 및 결과 보고, 주문 집행 및 결제 등의 업무를 일괄서비스 받을 수 있다.
전문가가 대신 자산을 운용해준다는 측면에서 펀드 상품과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많은 사람이 함께 타고 가는 ‘버스’가 펀드라면 한 고객의 요구에 맞춰 주는 ‘택시’가 랩어카운트라고 할 수 있다. 랩어카운트는 1975년 미국 후튼증권(E.F.Hutton)이 처음 개발했으나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를 계기로 증권사들이 장기 고객확보를 위해 약정수수료 위주 영업에서 자산관리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활성화됐다. 미국의 메릴린치와 스미스바니증권이 이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초 자문형 랩어카운트가, 2003년 10월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도입됐다. 간접투자가 활성화된 2005년 이후부터 다양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랩어카운트 초기에 최소 가입금액이 1억 원 이상이어서 고액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이후 최소 가입금액을 1000만 원 이하로 낮추고 매월 수십만 원씩 넣는 적립식 형태의 펀드랩 상품이 등장하면서 랩어카운트의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 게다가 증권사들이 앞 다퉈 여러 형태의 랩어카운트 상품을 내놓으면서 대중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에만 랩어카운트 시장규모가 1년 새 두 배로 성장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일임형 랩어카운트 계약자산 규모가 지난해 연말 19조9702억 원으로 2008년 말 11조8446억 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고객 수도 46만8000여 명에서 48만3000여 명으로 증가했다.
랩어카운트는 투자하는 대상에 따라 주식에 투자하는 주식형 랩,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형 랩이 있으며 간접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러 펀드에 나눠 투자하는 펀드 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펀드 랩이란 투자자에게 맞는 펀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이를 운용해주는 서비스다. 펀드 랩은 여러 펀드를 한 계좌에서 나눠 투자한다는 점에서 펀드투자펀드(펀드오브펀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펀드오브펀드는 일괄적으로 펀드매니저가 포트폴리오를 짜서 운용하는 반면 펀드 랩은 자산관리 전문가가 투자자와 상의해 펀드의 비중과 상품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랩어카운트는 서비스의 범위에 따라 자문형 랩어카운트와 일임형 랩어카운트로 나눌 수 있다. 자문형 랩어카운트는 자산관리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 반면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자산을 맡아 고객 대신 운용하고 보수를 받는 형태다.
자문형 랩어카운트는 단순히 투자자문에 그치는 형태여서 진정한 의미의 자산관리 서비스라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 또 실제 주문은 고객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했다. 이와 달리 일임형 랩어카운트야말로 증권사의 자산운용 능력이 충분히 발휘된다는 점에서 한발 앞선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운용 결과가 자산을 위탁한 고객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기존 일임매매와 같다.
다만 일임매매는 주식 등의 매매를 위탁받은 증권회사가 주문 내용의 일부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일종의 위탁매매 관련 부가서비스인 데 반해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고객의 투자판단의 일부 또는 전부를 위임받아 투자에 관한 사항을 대리하는 간접투자 상품이다.
또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일임매매와 달리 유가증권 외에도 부동산이나 실물자산 등에도 투자할 수 있으며, 계좌관리자의 자격요건이나 최저 가입금액 등에 있어 일임매매와 차이가 있다.
일임형 랩어카운트라는 이름 자체가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투자 절차는 전혀 어렵지 않다. 여윳돈을 일임형 랩어카운트에 투자하려는 사람은 해당 증권사의 자산관리 전문가와 상담을 거친 뒤 투자일임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의 투자 성향 및 목적, 재무상황 등을 감안한 투자 포트폴리오가 짜이고 주식, 채권, 선물, 옵션, 펀드 등에 대한 투자 비율이 결정된다. 이 같은 절차를 밟은 다음 투자자가 맡긴 자금은 증권사의 자산운용 전문가가 투자 결정이나 매매 등 전권을 갖고 운용하게 된다.
랩어카운트는 다른 투자수단과 달리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자산관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가 대신 운용하는 펀드라도 구체적인 펀드 상품을 투자자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랩어카운트의 경우 구체적인 상품 선정까지 도와준다는 점에서 투자자에게 매우 편리한 서비스다.
또 랩어카운트는 투자자의 여러 재무적·비재무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자에게 맞는 맞춤전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자산관리 전문가와 논의해 선호하는 투자 스타일이나 상품 유형, 투자 비중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랩어카운트는 자산의 매매내역과 보유자산 현황을 즉시 확인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자산운용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도 있다. 또 직접투자처럼 빈번한 매매거래를 하지 않아도 돼 빈번한 단기 매매에 따른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한 계좌에서 여러 자산에 투자 관리하므로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처럼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있다. 주식형 랩의 경우 일반 주식투자와 마찬가지로 투자 손실 위험이 당연히 뒤따르는 데다 자산관리 전문가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크다.
펀드 랩의 경우 랩어카운트 내에 속한 펀드 이외의 상품은 별도로 가입해야 하는 등 아직까지 투자 범위가 선진국에 비해 좁은 편이다. 또 개인의 적은 자산을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제한돼 있다.
랩어카운트는 어떤 자산관리 전문가에 의해 운용되느냐에 따라 성과 차이가 크므로 자산관리 전문가에 대한 선택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단기적인 시장예측에 따라 주식이나 펀드 상품을 빈번하게 교체하기보다는 장기적인 투자전략을 가지고 운용하는 자산관리 전문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랩어카운트에 가입하면 일정률의 보수만 내고 자산관리에 관한 일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민주영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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