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고대 이집트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
카이로를 방문한 여행자라면 으레 찾아가는 곳이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기자의 피라미드와 이집트 고고학박물관이다.카이로 신시가지의 중심지인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있는 이집트 고고학박물관은 1902년 개관된 세계적인 박물관이다.
내부에는 흥미로운 소장품들이 가득 차 있는데 1층은 이집트 왕조의 연대에 따라 전시돼 있고, 2층은 투탕카멘 왕묘에서 출토된 귀중한 문화유산이 많이 전시돼 있다.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관통해 장장 6690km의 기나긴 나일강이 흐른다. 강은 혼탁한 황토 빛이나 푸른빛을 띠며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나일강이 농사짓기에 적합한 기름진 흙을 강 하류에 날라 만든 델타지역에 형성된 도시가 카이로다. 이집트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한 곳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일강 덕택이다. 고고학박물관에는 선사 시대부터 그레코로만 시대 초기에 이르는 유물 13만 점이 전시되고 있다. 대부분 파라오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건축물의 일부, 부조, 벽화, 공예품들이다. 당시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과거 고고학박물관에선 영국의 대영박물관처럼 삼각대와 스트로보를 사용하지 않고 카메라만으로는 촬영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아예 사진촬영 자체가 금지돼 있다. 따라서 과거 생생한 사진촬영을 한 것이 행운이라 느껴진다.
1층에서 엄격한 소지품 보안 검열을 거쳐 내부로 들어서면 먼저 람세스 2세 등 고대 이집트를 빛냈던 파라오들의 동상이 보인다. 찬찬히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려면 적어도 6시간은 걸리지만 일정이 바쁜 한국 관광객들은 눈도장만 찍고 떠나는데 그 모습이 안쓰럽다.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유물을 보면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금, 은, 동 및 보석의 가공에 아주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반지, 목걸이 등 장신구를 만드는 예술은 제 4·7·18·20 왕조에서 전성기를 맞아 훌륭한 걸작을 많이 남겼다.
아주 단순한 재료로 훌륭한 모직을 짜내는 기술도 터득했으며 도자기, 유리, 에나멜 등을 만들어내는 솜씨 또한 훌륭했다. 당시는 화폐가 없었기 때문에 물물교환이 상거래의 주요 수단이었다. 13만 점에 이르는 박물관 소장품 중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부하는 애굽의 한 학자’ 상이다. 앉아서 독서하는 모습인데 파피루스 두루마리 책을 오래 들여다보고 공부해 두 눈이 충혈돼 있다.
손전등으로 비춰보면 눈에 붉은 핏줄까지 서 있다. 앉은 높이 51cm, 폭 41cm인 이 석상을 보고 있으면 기원전 2475년에 어떻게 이처럼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페르티티 왕비의 얼굴상도 흥미롭다. 그녀는 아크나톤 왕의 부인으로 이집트 역사에서 뛰어난 미인으로 칭송된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빛이 부드러워 온화한 인상을 주며 머리에는 원통형 왕관을 쓰고 있다. 그녀는 남편인 아크나톤 왕이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종교개혁을 할 때 많은 조언을 했다고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이집트 최초의 여왕인 하트셰프수트의 모습은 심하게 훼손돼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녀는 투트메스 1세의 딸이며 이복오빠인 투트메스 2세의 왕비였다.
남편이었던 투트메스 2세가 요절하자 첩의 어린 아들인 투트메스 3세를 대신해 섭정을 하다가 나중에는 강제로 왕권을 빼앗아 파라오가 됐다. 22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며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교역도 활발히 하는 등 유능한 통치자였다.
고대 이집트에는 탁월한 몇 명의 여걸이 있었지만 그들은 거의 파라오인 남편과 함께 영광을 누렸다.
왕권과 함께 신권마저 차지하고 상·하 이집트의 주권을 의미하는 이중의 관을 쓴 여왕은 하트셰프수트가 처음이라고 한다.
하트셰프수트가 죽은 후 파라오가 된 투트메스 3세는 자신이 파라오가 일찍 못되고 오히려 억압받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하트셰프수트의 초상과 벽화, 비문 등에서 여왕의 모습을 모두 지워버리도록 했다. 그래서 박물관에 보관된 여왕의 조각상도 파손된 채로 전시되고 있다.
기원전 2700년 이전부터 이집트에서 종이로 사용했던 파피루스에는 파라오들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파라오의 모습이나 궁중에서 왕비와 같이 있는 장면을 가만히 보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는 신성한 식물로 여겼는데 햇살 모양의 꽃이 태양신 아몬 레 (Amon Re)를 상징했다. 박물관 2층에서는 투탕카멘 왕의 소장품이 단연 인기를 끈다. 9세에 왕위에 올랐다가 18세에 죽은 투탕카멘은 이집트의 전설적인 여왕 네페르티티의 의붓아들로 기원전 1361년경 왕이 됐다.
투탕카멘의 묘는 왕묘로서는 가장 작은 규모였으나 다른 왕묘들이 철저하게 도굴된 것과는 달리 거의 원형 그대로 발굴돼 고고학상 불후의 가치를 지니게 됐다.
2000여 점에 달하는 유물 대부분은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유물 중에는 투탕카멘 왕의 황금 마스크, 옥좌, 침대, 목걸이 등이 특히 볼만하다.
초라한 왕의 무덤 하나에서 나온 출토품이 이집트 고고학박물관 2층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람세스 2세 같은 위대했던 파라오 무덤의 출토품이 그대로 나왔다면 아마도 이집트 고고학박물관 몇 개는 세웠을 것이다. 2층 오른쪽 끝에는 위대했던 파라오들의 미라 11구를 안치한 특별 전시실이 있다. 이곳에 입장하려면 별도의 요금을 더 내야 하며 내부에선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Pharaoh)는 나라를 통치하는 왕을 지칭한다. 파라오는 살아있는 신으로 죽은 후에는 다시 태어나 영원한 세상으로 환속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죽음 뒤의 영원한 세상을 믿고 현재보다는 사후의 세계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묻힐 무덤을 정성들여 아름답게 만들었다. 부장품도 엄청나게 많도록 했고 당시의 생활상이나 자신의 치적 등을 담은 벽화를 제작하도록 했다.
미라 특별 전시실 내부로 들어서면 이름난 파라오들의 미라가 보이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람세스 2세의 것이다.
박물관에는 람세스 2세와 관련된 정교하게 조각된 벽화도 많다.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군대와 싸워 어렵게 승리를 거둔 카데슈전쟁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인 카이로에는 동서 문명이 생명의 맥박처럼 교차한다.
이집트 고고학박물관을 비롯해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나일강, 이슬람 사원 등 찬란했던 5000년 역사를 대변하는 흥미로운 곳이 많아 한여름의 방문이었지만 무더위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글 · 사진 허용선(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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