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중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높아진 경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달러화 중심의 기축통화에 대한 문제 제기, 금융허브 육성, 국제금융기구에서의 발언권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승자독식 효과를 누리면서 높아진 경제력과 위상을 바탕으로 인접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팍스 시니카’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중국이 높아진 위상으로 팍스 시니카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가장 공들이는 것이 해외자원 개발이다. 그중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석유시장에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러시아 등의 유전개발 및 투자 등에 우선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또 중국 정부는 진출 대상국의 자원관련 인프라 구축, 산업단지와 발전설비 건설 등도 지원 중이다. 중국의 대외지원 규모는 2003년 15억 달러, 2006년 275억 달러, 2007년 250억 달러로 급증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45% 정도가 자원개발과 연계돼 추진 중이다.해외자원 개발과 함께 중국은 1992년 14차 전인대(全人代)에서 상하이를 국제금융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1994년 외환거래센터, 1996년 은행 간 자금시장 등을 개장했다. 하지만 상하이는 현재 주요 국제 금융도시 중 30위권 정도로 정부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2009년 4월에 상하이를 국제금융허브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들을 발표했다. 외국 기업 위안화 채권 및 주식 발행 허용, 해외자금 유입 확대를 위한 관련 금융법률, 조세제도 등의 인프라 확충을 통해 2020년까지 상하이를 국제금융허브로 육성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특히 주목되는 것은 홍콩과의 역할분담과 상호보완을 통해 상하이 육성을 위한 시너지효과를 얻을 계획이다. 상하이와 홍콩의 연계발전 전략이 성공할 경우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니런(NyLon= New York + London)에서 상콩(Shangkong = Shanghai + Hongkong)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금융 분야의 국제위상을 높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종래 접경 국가와의 소규모 국경무역 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위안화 결제를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를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동아시아 국가 간 합의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에 따라 중국은 일본, 한국, ASEAN 국가들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한편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금융제도에 대한 신뢰가 하락함에 따라 중국은 주로 달러화로 되어 있는 현행 기축통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09년 3월 개별국가의 이해와 분리돼 있으면서도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기축통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중국이 새로운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금융위기 후 본격화될 국제금융질서 재편 과정에서 자국의 입지를 확보하고 위안화의 국제 위상 강화를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특별인출권(SDR)은 IMF에 설치된 각국 계정상의 금액에 불과해 본격적인 결제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앞으로 중국 경제가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예측기관들은 2035년을 전후해 중국의 GDP 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빠르면 이 시기가 2020년 전후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시각도 있다.대표적으로 골드만삭스는 GDP 규모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시기를 2002년 보고서에서는 2040년으로, 2005년 보고서에서는 2035년으로, 최근 보고서에서는 2027년으로 앞당겨졌다. 중국 사회과학원도 중국이 매년 8% 전후의 성장세를 유지고 미국이 2% 성장에 그친다면 오는 2018년에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중국의 부상에 따라 한국이 속한 동북아 지역의 경제협력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이 요구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모색될 것으로 보이나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이런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세계경제와 국제통화질서상의 변화를 우선적으로 감안한 관계설정이 바람직한 방향이다.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이 부상하면 할수록 한편으로는 동북아 지역에 있어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지역에 속한 국가 간의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어떻게 보면 우리는 미국과 일본, 중국 간의 샌드위치에 놓여 있다. 오히려 일본과 비슷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제3국 시장이 중국에 의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고 대부분 국내기업들이 중국진출을 서두르고 있어 1990년대 초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산업공동화 문제가 심각한 경제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보통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크게 달라진다. 만약 표면화되기 시작한 중국과 미국, 중국과 일본의 갈등구조 속에서 이들 3개국에 대한 수출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가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무엇보다 앞으로 전개될 팍스 시니카 시대에 미국의 아시아 정책변화로부터 대비해 놓은 것이 중요하다. 현재 미국과 우리와는 그 어느 때보다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현안이 적다 하더라도 미국이 아시아 정책을 추진할 때 국제무역상의 상호주의 원칙을 자주 활용해온 점을 감안하면 최종목표인 중국의 우회기조로 우리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중국의 정책변화에도 대비해 놓아야 한다. 갈수록 중국이 주변국에 대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시점에서 무역불균형이 심하고 제3국 시장에서 중국과 수출경합관계가 가장 높은 우리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는 것은 확실하다.또 위안화 가치의 절상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그 어느 때보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와 경쟁이 가장 심한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올리면 경쟁력면에서 반사적인 이익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가장 우려되는 것이 원화와 위안화 가치간의 동조화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이다.중국의 부상에 따른 팍스 시니카 시대에 있어서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일본과 우리가 종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의 경제협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한일 간에 놓여 있는 통상현안과 그동안 논의해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의 협력과제도 양국의 이해관계를 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겸 한국경제TV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