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i Private Bank 정복기 한국대표

“PB는 상품이 아닌 시장을 파는 사람”

정복기 대표는 PB업계의 산증인이다. 1990년 금융계에 발을 디딘 후 씨티은행에서 12년, 삼성증권에서 7년6개월을 PB로 일했다.

20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PB 정복기 대표와 만찬을 하며 PB사업 얘기를 들어봤다.

씨 티프라이빗뱅크 정복기 대표는 MBC ‘경제야 놀자’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일약 국민PB로 떠올랐다. 은행과 증권사를 오가며 20년간 PB업무를 담당해온 그가 최근 씨티은행 PB사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7년6개월 만의 친정행, 이사로 떠나 대표로 복귀했으니 금의환향인 셈이다.

씨티은행 복귀의 뒤에는 오랫동안 정을 나눠온 선배들의 애정 어린 설득이 있었다. 정 대표는 나이가 들수록 인정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고 했다. 물론 단지 정에 끌려 이직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씨티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국내를 넘어 글로벌한 자산관리서비스가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정보가 아닌 시장의 흐름을 읽어라

취임 후 그는 그야말로 글로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제 해외 출장이 잦아 인터뷰 일정을 잡기가 꽤나 어려웠다. 인터뷰 전날도 새벽에 싱가포르에서 돌아왔다고 했다.
“PB는 상품이 아닌 시장을 파는 사람”
명함을 건네고 씨티은행으로 이직한 이야기를 듣는 사이 전채 요리와 샴페인이 나왔다. 음미하듯 샴페인을 마시는 그에게 “와인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상류층 고객들을 만나다 보니 와인을 마실 기회가 잦다”고 했다.

“와인은 금융상품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와인은 해마다, 또 지역마다 다양한 상품이 나오잖아요. 금융상품도 그렇거든요. 정말 다양한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옵니다. 좋은 것은 오래둘수록 진가를 발휘한다는 점도 와인과 금융상품의 닮은 점이죠. 와인시장과 PB의 닮은 점도 있습니다. 국내에 와인시장이 형성된 시기와 PB 업무가 뿌리를 내린 시기가 비슷하거든요. 둘 다 10년 안팎입니다.”

PB가 금융권의 중심에 선지 10년, 그러나 정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국내에서 PB들의 업무는 VIP 뱅킹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금융환경은 날로 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우대금리와 감성적 접근으로 고객들을 대하고 있다. 게다가 PB사업을 이끌 수 있는 전문가의 부재로 지속적인 사업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유행처럼 PB사업에 뛰어들어 단기간의 수익을 추구하다 보면 본질을 호도할 수 있고 제대로 된 PB를 육성하기 어렵다. 결국 그 결과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간다.

본질적으로 ‘PB는 상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을 파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단순하게 자기가 속한 조직의 상품을 판매해 실적과 수익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장을 꿰뚫고 그에 따른 포트폴리오를 제안하고 조정하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PB는 단순하게 하나만 잘 알아서 되는 게 아니라 자산시장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여기에 정이 깊은 한국인의 정서 또한 이해해야 된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고 고객을 위한다는 마음의 바탕 위에 세상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되돌아봅시다. 전체 시장이 깨지는 상황에서 나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은 없습니다. 시장을 정확히 바라보지 않으면 결국 깨질 수밖에 없는 거죠. 상품이 아니라 시장을 팔아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는 ‘시장을 이기는 투자자는 없다’는 격언에 100% 동의한다. 그만큼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흐름을 읽고 따라 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이 아닌 정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정보는 초콜릿과 같이 순간적인 달콤함을 안겨줄 뿐, 장기적인 자산증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는 지난 20여 년 PB생활을 하며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외환위기는 그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연초 700선에서 시작한 코스피지수가 2/4분기에는 1000선을 찍더니, 연말에는 300선에서 마감했다. 당시는 누구도 시장을 예측하지 못했다. 환율이 달러당 2000원을 뚫고 하루가 다르게 금리가 뛰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 달 반 이상 새벽 3시 이전에 집에 간 적이 없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 같은 상황에서도 고수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너도나도 팔지 못해 안달이 난 국공채를 조금씩 거둬들이는 세력이 있더란다. 결국 그런 투자자들은 1년이 안 돼 100% 이상의 수익을 남겼다.
“PB는 상품이 아닌 시장을 파는 사람”

과욕은 금물, 분산투자는 철저히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현명한 투자자들은 적잖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만난 고객 중 가장 현명한 투자자로 변호사 한 사람을 소개했다. 그의 장점은 예금이나 채권 등 안정적인 상품과 주식, 펀드 등의 투자 상품에 정확히 50%씩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킨다는 데 있다.

주식과 펀드 등은 폭락하는 시점에 저점 매수하여 장기투자로 전환하면서 기다리는 전략을 세운다. 시장은 1년을 놓고 보거나 10년을 기준으로 하거나 반드시 폭락 시점이 있는데 그 순간을 기회로 삼는 것이다. 단, 10~20% 정도의 일정수익을 거두면 다시 안정적인 자산으로 운용하며 때를 기다린다.

“2009년에도 연초에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더니 코스피지수가 1300선을 넘어서자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팔더군요. 그리고는 채권을 사더라고요. 그 한 번의 거래로 2008년 폭락장에서 입은 손실을 전부 만회한 거죠. 그 분은 이런 식으로 지난 10년간 자산을 두 배 이상 불렸습니다.”

반면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투자자도 있었다. 은퇴를 앞두고 펀드에 몰빵했다 손해를 본 전형적인 사례다. 그는 2007년 모든 현금을 펀드에 투자했다가 2008년 폭락장에서 큰 타격을 보고 아직 회복을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의 투자 패인은 금융기관에서 추천하는 상품에 무분별하게 가입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의 캠페인성 상품에 계속 가입하다보니 나중에는 30개가 넘는 펀드에 가입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두 사례는 투자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시장을 읽는 눈을 키우고, 시장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울러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합리적인 목표수익률을 정하고 이익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도 정 대표는 분산투자에 상당히 신경을 쓴다. 지난 20년간 IMF와 카드사태, 9·11사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몰빵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평균 수익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스스로 설득이 안 되고, 확신이 서지 않으면 어떤 분에게도 투자를 권하지 않습니다. 투자에 대한 제 소신 중 하나는 일단 정부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혜택, 예를 들어 비과세나 세금우대 상품은 무조건 가입합니다.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르면 중장기적으로 해답이 나옵니다. 정부 정책에 따라 개별 주식도 오르내립니다. 따라서 투자자라면 시장을 이끌고 주도하는 주체인 정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010년 투자는 수익과 안정 함께 추구
“PB는 상품이 아닌 시장을 파는 사람”
2010년 투자전략도 이 같은 원칙 하에 수립되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2010년은 2009년만큼 강한 상승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하락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많은 경제연구소에서 2010년 경제성장률을 5% 내외로 점치고 있듯이 국내시장은 상승곡선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기부양책의 후유증으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고, 빠른 회복에 따른 일시 조정국면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 대표는 주식 투자를 1순위로 꼽았다. 경제성장에 따라 기업들의 수익도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랜드마크와 테마 중심의 상승세가 지속될 전망이나 상업용 부동산과 규제지역의 부동산은 상승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채권은 더 높은 금리나 세제혜택 있는 물건을 추천하며, 막연하게 안정적인 목적의 투자는 금리 상승 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주문했다.

“2010년은 수익과 안정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50억 원을 가진 자산가라면 일단 10억은 정기예금이나 MMDA, 10억은 채권, 20억은 주식형 펀드 또는 주식자산, 10억은 ELF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구체적으로 정기예금은 은행권에서 특판의 기회가 있을 때 선별해 가입하고 나머지는 유동성확보를 위한 MMDA나 CMA에 두고 시장을 지켜보기를 권한다. 채권은 국내물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해외물 중에서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적인 성격을 가진 ELF는 기초자산을 지수로 구성한 것에 우선 관심을 갖고 우량주로 구성되었다면 좀더 적극적인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펀드는 더욱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펀드는 비과세 혜택이 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다. 더 나은 수익을 원한다면 해외펀드도 고려의 대상이다. 국내에서는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형 펀드와 대표기업을 중심으로 한 펀드를 추천했다. 해외시장에서는 중국에 다시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2010년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분산투자의 차원에서 원자재펀드와 농산물펀드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새로 판매되는 헤지 펀드도 관심의 대상이다. 최근 나오는 헤지펀드는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재구성되어 괜찮은 투자대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PB는 상품이 아닌 시장을 파는 사람”

“사실 2008년과 2009년은 상식이 통하는 투자시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시장은 상식선에서 움직일 것입니다. 모든 지표와 시장의 흐름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예리한 눈과 먹이를 낚아채는 결정력, 한번 사냥을 하고 나선 욕심을 내지 않는 호랑이처럼 현명하게 투자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글 신규섭 · 사진 이승재 기자 wawoo@money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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