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사람들은 ‘판화는 너무나 구태의연하고 투자 가치도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선입견은 판화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오해이다. 최근 들어 기술의 발달로 매우 다양한 판화 형식들이 선보이고 있다. 더욱이 요즘의 판화는 어디까지가 판화 영역에 속하는지 모를 정도로 매우 각양각색이다. 기법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만큼, 애호가들 역시 꼼꼼히 살피고 기초적인 정보와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아무리 판화 형식이 같은 이미지를 다수 제작하는 특성이 있다지만, 엄연히 판화 중에서도 오리지널과 복제품은 있다. 자칫 기법으로만 판화작품을 판단한다면 헛갈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옵셋 인쇄 혹은 디지털 프린트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작가들은 이미 회화로 제작된 작품의 이미지를 스캔 받아 동일한 그 이미지를 다시 재출력하여 넘버링만 기재한 후 판화처럼 판매하기도 한다. 또한 제법 ‘귀티’나게 인쇄한 아트포스터마저 ‘유명한 작가의 판화’라고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이런 경우 대개 ‘옵셋 인쇄물’이 판화로 둔갑한 사례가 많다. 물론 판화가가 작품을 제작하면서 옵셋 인쇄술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페인팅 원화로 유통되는 평면 회화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의 이미지(슬라이드 혹은 인화지 상태)만을 사용해 ‘복제’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판화와는 확연히 다르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꼭 물론 이것이 불법이란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을 고객이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공지되어야 하고, 작품가격 역시 새롭게 창작된 일반 판화와는 차이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수요자 처지에서도 이런 점을 간과하지 말고 미연에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그렇다면 판화를 감상하고 수집하는 데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 참고로 살펴보자.첫 번째, 오리지널 판화와 복제 판화의 차이를 바로 알자. 보통 오리지널 판화는 ‘모든 제작공정에 작가가 참여하거나 주도적인 감독 하에 이루어져야 함’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제작 공정과 작가 서명까지 구비한 모호한 사례들이 발생하고, 사후 판화에 대한 모호한 해석으로 혼돈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판화는 한정된 분량의 복수로 제작하는 특성상 모두 찍고 나면 원판은 파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같은 작품이 또 다시 나와서 혼돈을 줄 것에 대한 방지책이다. 또한 최근에 발달된 디지털 기술의 컴퓨터 프린팅 방법으로 판화를 제작했다면, 그 이후에 똑같은 이미지와 크기로 다시 출력해 작가가 서명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원칙이 있음에도 간혹 작가들은 원판을 파기하지 않고 보관하는 예가 종종 있다. 이럴 경우 유족이 작고한 작가를 대신해 판화를 찍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 사후에 보관됐던 원판으로 찍었다고 모두 오리지널 판화로 취급해선 안 된다.두 번째, 상업 판화와 창작 판화의 경계를 구분하자. 최근 인쇄술의 발달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문제이다. 일반인들은 고급스럽게 프린트 혹은 인쇄된 것에 작가의 서명이나 에디션 번호가 적혀 있으면 무조건 판화 작품으로 알기 쉽다. 하지만 판화 형식을 빌어 기념품으로 만든 사례가 많다. 바로 전시 기념 아트포스터를 판화로 알고 구매하는 경우이다.이럴 경우 판매하는 입장에선 고객을 위해 명확하게 ‘오리지널 판화 여부’를 구분해주는 것이 상도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모호한 입장에서 매매행위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 번 구분해보면, 창작 판화(오리지널 판화)의 경우는 작가가 생전에 직접 관여해 판화로 제작하고 정식 서명과 에디션 넘버를 기입한 경우이다. 단, 이미 회화 작품으로 완성됐거나 유통된 작품의 이미지를 활용해 크기만 달리해서 똑같이 프린트한 것은 오리지널 판화의 값어치와 같게 취급할 수는 없다.반면, 상업 판화는 이미 작고한 작가의 회화 작품 이미지를 판화 용지 등에 고급스럽게 인쇄한 경우이다. 이는 연말에 대기업 등에서 고급 캘린더를 제작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하지만 일부에선 그런 상품이 아니라 버젓이 작품인양 작가를 대신해 낙관 등을 표기해 판화처럼 판매되는 예가 있다.세 번째, 구입 전에 일반 소장용과 투자 가치용을 정하자. 아무리 대중성을 중시하는 저렴한 판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고, 판화 작가의 인지도가 제법 높아지지만 작품의 경제적 가치도 상승하기 마련이다. 만약 이런 기대치가 있다면 판화를 구입할 때 오리지널 판화라도 다시 한 번 점검할 사항이 있다. 바로 에디션을 살펴봐야 한다. 시장에선 일반 에디션 넘버가 적힌 판화 이외에 시험판이나 작가 보관용, 비매품 혹은 선물용 등도 함께 유통되는 사례가 있다. 에디션이 적혀야 할 곳에 AP(Artist Proof), PP(Present Proof), BAT(Bon Tirer), HC(Hors Commerce) 등이 표기된 경우이다. 예를 들어 HC는 ‘비매품’이라는 불어로 새로운 작품의 견본으로 사용되는데, 설령 구매했다 치더라도 투자 가치는 본 작품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네 번째, 판화라고 무조건 저렴하다거나, 너무 비싸서도 안 된다. 보통 판화니깐 무조건 쌀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예가 많다. 하지만 해외의 유명 작가의 경우 판화 한 장에 수억 원이 넘는 예도 많다. 판화는 ‘한정된 복제 작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얼마나 한정된 것’인가에 따라 작품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역시 ‘이 작품은 에디션이 얼마나 되기 때문에 다른 것에 비해 얼마입니다’가 아니라, ‘이것은 누구 거니까 얼마’라는 식의 억지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후자는 대개 페인팅 작가일 경우다. 어차피 작품은 원화 한 점 밖에 없으니까 그 작가의 인지도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상대적으로 판화 가격의 높낮이는 기본적으로 전체 에디션 수량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다만 수작업(작가의 직접 참여도)과 기술(기계)동원의 여부, 기법의 희귀성이나 난이도 등에 따라 어느 정도 격차는 발생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거의 아트상품에 가깝게 대량으로 찍어낸 판화 형식의 경우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해야 할 것이다. 초보 수집자 역시 이런 점을 특히 유의해야 지나친 경제적 지출을 방지할 수 있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