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크 레이노 & 앙리 보노

기 ‘론(Rhone)의 앙리 자이에(Henri Jayer)’라고 불리는 두 천재가 있다. 그들의 와인 ‘샤토 라야스(Chateau Rayas)’와 ‘레제르브 데 셀레스탱(Reserve des Celestins. 약칭 RC)’을 두고 사람들은 종종 ‘론의 로마네 콩티’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돈을 손에 쥐고 있어도 좀처럼 구할 수 없다는 이 와인들의 희귀성과 놀랄 만한 맛 때문이리라.남북으로 220km에 달하는 론 지방에서 이 두 천재를 탄생시킨 곳은 남부 론의 심장, 샤토네프-뒤-파프(Chateauneuf-du-pape)다. 마을 이름이자 고급 와인의 대명사인 샤토네프-뒤-파프는 ‘교황(Pape)의 새로운(neuf) 성(chateau)’이란 뜻으로 중요한 기독교 역사와 관련이 있다.14세기 초, 당시 권력자 필리프 4세는 주변국들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재정난에 처하자 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부여한다. 교황청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으나 이를 잠재우고는 당시 보르도 대주교를 맡고 있던 프랑스인 베르트랑 드 고트(Bertrand de Goth)를 교황 클레망 5세(Pape Clement V)로 즉위시킨다. 동시에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옮길 것을 명령하는데, 이렇게 교황이 로마에서 쫓겨나 프랑스 남부의 시골, 아비뇽에 머무르게 된다. 68년간 이어진 아비뇽 교황청 시대를 거쳐간 교황은 7명에 이른다 (이 사건을 두고 우리는 ‘아비뇽의 유수’라 한다).아비뇽으로부터 북쪽으로 20km 떨어진 지금의 이곳에 별장을 짓고, 그 주위에 포도밭을 일궈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이는 아비뇽 교황청의 첫 주인, 교황 클레망 5세다. 와인 애호가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보르도의 샤토 파프 클레망(Chateau Pape Clement)의 주인공과 동일 인물이다. 성직자가 되기 전부터 교황의 ‘드 고트’ 가문은 와인을 만들었고, 그런 가문의 막내아들이었던 베르트랑이 교황이 되면서 그가 와인을 만들고 즐긴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리라.이미 그 곳은 강렬한 태양, 계란만한 크기의 조약돌(사진 참조)을 품고 있는 지형적 이점으로 풍성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 와인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러한 테르와르적 특성에는 그르나슈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남부 론의 포도 생산량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 품종은 당도가 높아 와인을 만들면 알코올 도수가 상당하다. 이곳의 허용된 알코올 도수 12.5%는 프랑스 원산지 통제 시스템에서도 가장 높지만 대부분의 이곳 와인들은 쉬이 13~15%의 알코올 도수를 낸다. 좋은 해 RC의 경우 종종 16%까지 올라간다. 원래 그르나슈는 시라나 무드베르드와 블랜딩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되지만 샤토 라야스와 보노씨의 RC는 거의 그르나슈 하나만을 가지고 승부를 본다.처음 이들의 명성을 들었을 때, ‘천재’라는 단어보다 ‘괴짜’라는 단어가 앞서 떠올랐다. 와인을 알아갈 때 처음 접했던 곳이 보르도 쪽이다 보니 그곳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성공적인 와인 양조법의 몇 가지 조건이 머리에 이미 박혀 있어서 그렇지 않았나 싶다.개인적으로 흥미 있게 지켜본 것은 상업주의와는 거리가 먼,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장인정신에 입각한 와인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앙리 보노가 내놓은 첫 RC는 1956년산이다. 5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양조 방법에는 변함이 없다. 더 정확히는 1927년 첫 빈티지부터다.셀러의 청결과 와인 맛을 위해 오래된 오크통은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한 와인 컨설턴트 에밀 뻬노의 가르침도 그들에게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두 곳 양조장을 모두 방문했던 로버트 파커는 청결이라고는 전혀 안중에 없는 지저분한 셀러 환경에 경악했다. 매년 새로운 오크통으로 와인을 만드는 보르도 특급 샤토들과 부르고뉴의 로마네 콩티 양조 방법을 모를 리 없으련만 조금의 실험적인 시도라도 해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보노씨의 셀러 안에서는 10년 이하 오크통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이 두 인물 덕에 젊은 양조자들은 과거 전통적인 양조 방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르나슈 품종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다 보니 이제는 옛날 방식으로 만든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곳으로 유명해져 버렸다.자신의 와인을 알리기 위한 작업은 아예 안중에 없는 점도 둘의 공통점이다. 이토록 놀랄만한 와인을 만드는 비법을 묻는 질문에도 시큰둥하다. 오랜 시간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면밀히 관찰한 사람들이 찾아낸 것이라고는 포도의 당분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수확 시기를 매우 늦춘다는 점과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다.샤토 라야스의 경우 8헥타르 밭에서 나온 포도로 고작 1만2000병 정도만을 생산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보노씨는 6헥타르가 채 되지 않는 밭에서 일반적인 샤토네프-뒤-파프, 퀴베 마리 뵈리에(Cuvee Marie Beurrier)를 포함 6000병의 RC를 생산한다. 빈티지가 안 좋은 해에는 6000병의 황금 액체도 과감히 포기하지만, 1998년과 같은 최상의 해에는 퀴베 스페시알(Cuvee Speciale)이라는 특별한 와인을 선보이기도 한다. 페트뤼스가 11.3헥타르의 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2만7000병 정도를 생산하는 걸 생각하면 이들이 응축된 포도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다.쟈크 레이노가 죽고 난 뒤, 지금은 그의 조카 엠마누엘이 포도 재배 및 양조를 책임지고 있다. 서서히 현대적인 양조법도 가동시켰다. 홈페이지도 구축해 놓았으니 팩스, 전화번호 공개를 아직도 꺼려하는 도멘 앙리 보노 쪽보다는 훨씬 유연해진 느낌이다.도멘 앙리 보노의 양조장은 여전히 방문을 예약한 에이전트 관련 사람들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앙리 보노 씨를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듯싶다. 마을의 식당 어딘가에서 큰 소리로 쉴 새 없이 떠들며 와인을 마시고 있는 배불뚝이 70대 노인, 그가 바로 ‘샤토네프-뒤-파프의 살아있는 전설’, 앙리 보노다.1.‘부르고뉴의 신’으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와인 메이커 앙리 보노2.뀌베 스페샬3.뒤 빠쁘 4.마리 뵈리에 5.셀레스땡글 김혜주 알덴테북스 대표·사진 알덴테북스, 와인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