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 자산운용 김정우 이사

장의 문제는 시장의 룰(규칙)로 풀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소액 주주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동시에 기업 가치도 높일 수 있는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는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됐습니다.”김정우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 이사(사진)는 국내에서 유일한 공모형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인 ‘알리안츠기업가치향상장기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다. 2006년 8월에 설정된 이 펀드는 1300억 원가량의 개인투자자 자금을 모았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이 들어간 다른 사모분까지 합하면 약 8000억 원 규모로 커진다.현재 이 펀드와 비슷한 종류로 꼽히는 SRI(사회책임투자)펀드는 신한BNP파리바 NH-CA 우리 한화 대신 마이다스 동양 투신운용 등 여러 운용사가 선보이면서 국내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다만 SRI펀드의 ‘선의의 투자 전략’에도 불구하고 월등히 높지 않은 수익률이 투자의 제한 요소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많은 자금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반면 알리안츠기업가치향상장기펀드는 오로지 입소문으로만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이들 펀드 중 가장 많은 투자금을 모으면서 선전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인 이 펀드가 이처럼 인기를 끈 것은 펀드가 적극적으로 경영 참여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김 이사는 설명한다. 실제 이 펀드의 수익률은 설정 후 70%가 넘는다.예컨대 SRI펀드는 담배 술 도박 등 기본적으로 사회에 해악이 되는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을 제외하고 지배 구조가 좋고 존속 가능한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따라서 SRI펀드는 원래 사회적이나 경영 면에서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반면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는 투자를 통해 해당 기업 경영에 참여하면서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이면서 주가 상승폭을 높인다는 것이란 설명이다. “원래 1등 하는 학생에 관심을 보이는 선생(SRI펀드)과 10등 하는 학생을 발굴해 과외 시켜 2~3등으로 만드는 선생(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의 차이”라고 김 이사는 빗댔다.일각에선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가 투자를 통해 기업의 고유한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또 단기 성과만을 좇아 투자금을 줄이고 배당 성향만 높이면서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김 이사는 펀드의 기업 경영에 대한 참여의 선을 분명히 그었다.“투자한 뒤 기업을 찾아가서 한 번도 어느 사업이 유망하고 어느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자산이 지나치게 많은데도 배당 성향을 일부러 낮추거나 상속 등의 문제로 경영진이 일부러 주가를 낮추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시장을 왜곡시켜 소액 주주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또 빚을 내지 않는 무차입 경영도 재무적으론 안정될 수 있지만,사업 성장성 측면에선 무리한 행위일 수 있습니다. 저희는 기업의 경영진에게 이런 점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기업 가치를 높이려고 하고 있습니다.”김 이사는 실제 수시로 투자한 기업을 방문한다.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갖고 경영진을 만나기 위해서다. 대한제분 리바트 진성티이씨 동아제약 동양고속 등이 해당 기업이다. 모두 배당을 높이거나 경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 소액 주주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감사나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안건을 주주 총회에 상정했다. 하지만 이 안건들이 실제로 통과된 적은 없다.“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실패로 보진 않습니다. 실제로 주식수를 갖고 표결에 들어가면 펀드 쪽이 지게 됩니다. 대주주는 대주주고, 펀드의 지분율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다만 이러한 일을 겪으면 대주주나 경영진들도 소액주주의 입장을 더 생각하게 되고 대변하게 됩니다. 배당을 100원으로 결정할 것을 150원으로 높이는 식이죠. 우리는 안건을 모두 상정시켜 통과시킨다는 생각보다는 이러한 문제에서 타협점을 만들면서 기업 가치가 주식 시장에서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또 이는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김 이사는 국내에서 아직 펀드가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문화는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공무원 연금인 캘퍼스가 2000년 초반에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이 20% 정도였다면 최근엔 60% 가까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투자자가 펀드가 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펀드가 잘못하고 있다면 바로 투자자들은 환매하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의 룰에서 보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이러한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김 이사의 이력은 의외로 특이하다. 고교 때 이과를 지망해 대학에선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석사(MBA)를 땄다. 졸업 후엔 한국으로 돌아와 씨티은행에서 일하다 미국 뉴욕 KPMG에서 회계사로 5년간 활동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김 이사는 차이나닷컴이란 회사의 회사 재무 총괄로 일반 회사의 경영에도 참여한다. 후엔 자회사의 지사장까지 올라갔다. 벤처 열풍이 불었던 2000년쯤이었다.이후 4년 뒤인 2004년 회계사 경험이 있는 매니저를 찾는 이원일 알리안츠자산운용 당시 CIO(최고투자책임자)에 의해 펀드 매니저로 본격적으로 운용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이 CIO는 현재 알리안츠운용의 대표다. “미국에서 회계사 일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증권사 애널리스트 제의도 받았으나 실제 투자를 하고 시장을 움직인다는 매력에 펀드매니저를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어렸을 땐 수의사 건축가 사업 등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이처럼 여러 경험을 했다는 김 이사는 펀드매니저가 가장 적성에 맞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른 일보다 선택을 한 뒤 결과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의 일에 모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헛되지 않는다고 그는 강조했다. “회계사는 기업의 숫자만 놓고 봐도 회사가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그건 모두 과거의 숫자입니다. 이 점이 회계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합니다. 이를 사업을 해보면서 배운 현실로 보완하면 투자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그는 앞으로도 ‘사회의 선(善)’과 ‘자본의 선(善)’ 사이에서 어느 쪽의 편을 들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를 계속 운용하는 한 말이다. 그는 이 같은 말로 앞으로의 고민을 갈음했다.“일반 주식형 펀드매니저라도 펀드매니저는 자신이 투자 행위를 함으로써 가격을 결정되고 사회 자본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글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사진 이승재 기자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