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부문 최강자…삼성SDI
해 여름 한국 증시는 화끈한 ‘서머 랠리’를 자랑했다. 글로벌 구조조정의 승자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정보기술(IT)과 자동차 관련주들이 코스피지수 1600 회복의 일등공신이었다.특히 IT 업종에선 삼성SDI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7월 말 10만 원대였던 이 회사의 주가는 8월 한 달 동안 45%나 급등해 단숨에 15만 원 선에 근접했다. 삼성그룹 내 IT 3인방인 삼성전자와 삼성전기가 8월 각각 6. 5%와 29. 8% 상승에 그친 것에 비하면 압도적인 성적이다.삼성SDI의 주가 강세는 회사의 성공적인 사업구조 개편 덕분이다. 사실 올해 1분기만 해도 상당수의 증권사들은 삼성SDI에 대한 투자 의견을 ‘보유’ 또는 ‘중립’으로 제시했다. 통상 개별 종목에 대한 증권사의 투자 의견이 ‘매수’ 아래인 경우 사실상 ‘매도’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연초까지 삼성SDI를 괴롭힌 것은 ‘브라운관’으로 불리는 CRT(음극선관) 부문의 구조조정과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사업의 부진 등이었다. 2005년부터 3년 연속 영업적자에 허덕이자 투자자들의 반응도 냉담해졌다.하지만 올해 2분기가 지나면서 삼성SDI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 변혁을 몰고 오고 있는 ‘아몰레드’(AM-OLED,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와 자동차용 대형 2차전지라는 강력한 신성장 동력을 장착하면서 증권가에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삼성SDI는 디스플레이 부문은 삼성전자와 합작으로 설립한 SMD(삼성모바이일디스플레이), 2차전지는 독일 보쉬사와 조인트벤처(JV)로 세운 SB리모티브를 각각 내세워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 결과 ‘향후 10년간 성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신영증권), ‘변화의 마무리 단계’(토러스투자증권), ‘성장주로서의 재평가’(미래에셋증권) 등 긍정적인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브라운관으로 시작한 삼성SDI는 PDP를 거쳐 아몰레드로 디스플레이 부문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특히 수익성이 떨어지는 브라운관 부문은 축소하고 신사업으로 발 빠르게 이동 중이다. CRT 매출은 2008년 1조2710억 원에서 올해 6030억 원으로 줄고 내년에는 3410억 원까지 급감할 것으로 대우증권은 전망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2조 원을 갓 넘긴 PDP 매출은 내년 2조2200억 원대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삼성SDI의 경쟁력은 삼성전자와의 시너지 효과다. SMD의 아몰레드 사업이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휴대폰 전략과 맞물리면서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서다. 김유진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휴대폰용 아몰레드 시장에서 주요 경쟁사의 양산 능력이 SMD에 비해 1∼2년 뒤처져 있어 당분간 SMD의 독주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SMD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대형 아몰레드 부문의 연구·개발(R&D) 기술력과 LCD 패널 노하우, 삼성SDI의 아몰레드 양산기술과 LCD 모듈 개발력이 결합해 특히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황준호 대우증권 연구원은 “AM-OLED 전 세계 시장 규모는 올해 약 6억 달러에서 2016년에는 71억 달러까지 연평균 42% 성장할 것”이라며 “AM-OLED는 가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면에서 LCD에 비해 우수해 향후 5년 내에 휴대폰의 50%, 휴대용 게임기의 30%, 디지털 카메라의 20%에 채택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삼성SDI는 디스플레이 사업에 머무르지 않고 2차전지 시장까지 진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독일의 자동차부품업체인 보쉬사와 합작으로 SB리모티브를 설립하고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당시 일각에서는 삼성SDI가 완성차 업체가 아닌 부품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한 것을 두고 사업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SB리모티브는 최근 BMW가 2013년 내놓을 예정인 전기자동차 ‘메가시티 비히클(Megacity Vehicle)’에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는 계약을 맺는 등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다.김유진 애널리스트는 “BMW와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부품사와의 합작법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말끔하게 사라졌다”며 “특히 보쉬는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어 향후 전망도 밝다”고 평가했다. 유럽의 완성자 업체들은 대개 부품 공급회사를 자회사로 두지 않기 때문에 보쉬와의 합작사를 통해 유럽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이학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부품과 마찬가지로 전기차용 배터리도 지역별로 밀집하는 ‘클러스터’ 현상이 예상된다”며 “유럽 시장에서 보쉬의 입지를 감안하면 SB리모티브의 지배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또 미국 시장은 하이브리드 부문에서 일본계에 주도권을 내준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비 일본계 부품사를 선호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삼성SDI 측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SB리모티브가 상대적으로 전기차 부문에서 뒤처진 폭스바겐과 푸조 등을 새 거래처로 확보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망하고 있다.회사 측은 자동차용 2차 전지 사업을 위한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9월 울산사업장 부지에서 리튬 2차 전지 생산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총 4000억 원이 투입되는 이 공장은 2012년부터 하이브리드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양산을 시작한다. 이학무 애널리스트는 “SB리모티브는 2011년부터 매출 기여가 가능하며 2014년이면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라며 “양산이 시작되면 10%대 초반 수준의 영업이익률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삼성SDI는 2차전지 사업에 이어 전력저장 분야도 준비 중이다. 전기배터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저장장치 등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며 2011년 이후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삼성SDI의 주가 급등에 대한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미래의 기업가치가 주가에 선반영되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8월 이후 수직상승은 과열 양상이라는 지적이다. 2차전지의 기대감이 지나치게 빨리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추가상승 여력은 충분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해외 경쟁사와 비교해도 아직 밸류에이션(주가수준)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삼성SDI와 비슷한 사업구조를 가진 일본의 전지업체 GS유아사(湯淺)의 주가와 비교해 삼성SDI의 적정주가를 20만 원대로 추정했다. 이는 삼성SDI의 향후 1년 ESP(주당순이익)에 GS유아사의 최근 1년간 평균 PER(주가수익비율) 40배의 60%인 24배 수준을 적용한 목표가다. 미래에셋증권은 삼성SDI의 시장지배력과 시가총액을 감안하면 보수적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박해영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bono@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