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들수록 고향집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어머니의 맛을 그리워하며 손맛으로 유명한 음식점을 찾는 즐거움은 가뭄의 단비처럼 언제나 달콤하게 느껴진다. 내가 최근에 빠져들고 있는 그 달콤한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위스키의 ‘손맛’을 찾는 것이다.‘위스키’와 ‘손맛’은 어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조합이라 여겨지지만 사실 위스키야말로 만드는 사람(블렌딩하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 그 향취와 맛이 확연히 달라지는 대표적인 예다. 브랜드마다, 연산마다, 제조국마다 위스키의 맛이 각기 달라지는 것이 바로 블렌딩을 담당하는 마스터 블렌더의 ‘손맛’에 있기 때문이다.마스터 블렌더는 여러 가지 맛과 향을 가진 원액들을 섞어 최고의 풍미를 가진 위스키로 만들어내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이 위스키의 깊은 맛을 즐기는 소비자의 입맛을 만족시켜 주기도 하고 또한 새로운 향취와 맛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이끌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위스키의 ‘손맛’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스키 제조법이야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마스터 블렌더의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차이가 명품 위스키와 그렇지 않은 위스키를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각 위스키 제조사마다 톱 마스터 블렌더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톱 마스터 블렌더 약 30명 정도가 활동 중에 있다.특히 스카치 위스키의 고장 스코틀랜드에서 최고의 위스키를 선별하는 스코틀랜드 위스키 심사위원장이기도 하며 ‘킹 오브 위스키’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후학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존 람지(John Ramsay)는 하루에 600개의 샘플을 감식하는 절대적으로 예민한 후각을 유지하기 위해 담배는 물론 마늘 등의 자극적인 음식을 항상 멀리하고 면도용 애프터셰이브 로션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마스터 블렌더로서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도 그냥 넘기지 않는 존 람지. 그는 훌륭한 마스터 블렌더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을 비워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마술 같은 블렌딩 기술을 거쳐 탄생한 브랜드로는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랜슬럿, 킹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카치위스키로 꼽히는 맥칼란, 젊은이들의 술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커티삭, 하일랜드파크, 글렌로더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가 그의 블렌딩을 통해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탄생시킨 하이스코트의 킹덤은 존 람지에게 자식 같은 존재. 40년 위스키 인생을 접고 은퇴를 앞둔 지난 2006년. 자녀도 없이 위스키에만 바치던 열정을 모두 모아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작품이기 때문이다.한번에 4000가지의 향과 맛을 알아낸다는 마스터 블렌더의 또 다른 거장 로버트 힉스(Robert Hicks). 발렌타인의 모든 제품은 최고의 마스터 블렌더인 로버트 힉스에 의해 테스트되며, 그의 손을 거친 발렌타인 제품은 이미 품질이 보증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2006년에 로버트 힉스의 뒤를 이어 5번째 마스터 블렌더로 샌디 히솝(Sandy Hyssop)이 임명되었다. 180년 동안 5명만이 마스터 블렌더의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고 하니 마스터 블렌더의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다시금 이해하게 된다.깊은 곳에서 수년 많게는 수십 년간의 세월 동안 최고의 마스터 블렌더의 섬세한 ‘손맛’을 거쳐 탄생된 위스키. 위대한 탐험 끝에는 위대한 발견이 있듯 위스키의 손맛을 향해 항해하는 마스터 블렌더의 탐험의 끝에는 그 섬세한 손끝에서 발견한 위스키의 위대한 맛이 있는 것이다. 그런 위스키를 찾는 재미는 나의 소소한 일상에 한 방울의 깊은 정취를 안겨주는 선물과도 같다.12년산은 미네랄 워터나 소다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 20% 정도를 만들어 마셔보자.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도 좋다. 스트레이트 잔보다는 투명한 온더록스 잔을 사용해 맛과 빛깔을 함께 즐기길 권한다.다른 술과 섞어 마시기 보다는 물이나 소다수를 섞어 마셔보길. 그 비율은 알코올 도수 25%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적합하다.21년산은 미량의 물을 섞어서 마시거나, 입안에서 혀를 굴려 향을 음미하도록 한다.30년산은 단숨에 삼키기 보다는 입 속에서 그 맛과 향을 음미해보자. 위스키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가능하면 햇수가 오래된 위스키를 권하는 이유다.장병선 하이트-진로그룹 하이스코트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