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롤로의 또 다른 장인들
롤로라는 이름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지방 곳곳에서 다양한 와인을 배출하는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도 바롤로는 순도 높은 고품질 와인을 의미한다. 바롤로는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 포도밭에 따라, 또는 생산자에 따라 특유의 개성이 느껴진다. 네비올로의 두꺼운 껍질에서 비롯되는 강한 타닌은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숙성력을 지닌다. 그래서 바롤로는 투자 등급 와인으로 손색이 없다. 피노 누아의 섬세함과 카베르네 소비뇽의 파워를 동시에 지닌 바롤로는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 반열에 올라와 있다.일부 와인전문가들은 바롤로 양조가들을 전통주의자와 현대주의자로 구분한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그대로를 오늘날 계속해서 답습하며 유지하는 양조 행태를 전통적이라고 정의하고, 최근의 양조 유행과 추세를 따르면 현대적이라고 한다. 사실 이렇게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양조가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와인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생산자가 열이면, 와인의 맛도 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맛의 세계를 단순히 이분화한 와인 저널리즘의 행태는 양조가들에게 비아냥거리가 된다. 하지만 현상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항상 단순화하길 좋아하기에 와인 세계에서 이러한 구분은 비일비재하다.‘네비올로의 거친 타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그 방법에 따라 어떤 와인은 전통적인 바롤로가 되고, 또 어떤 와인은 현대적인 바롤로가 된다. 전통적인 바롤로주의자를 ‘바롤리스타’라고 호칭하는데, 또 한 사람의 바롤리스타는 바르톨로 마스카렐로(Bartolo Mascarello, 1927~2005)다. 몇 년 전에 작고하여 지금은 그의 딸 마리아-테레지아(Maria-Theresia)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만드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고 자라 자연스럽게 바롤리스타가 되었다. 거친 타닌을 잠잠케 하기 위해 프렌치산 바리끄(225리터들이)를 사용하지 않고, 아주 큰 용량의 오크통을 물려받아 사용한다. ‘바리끄는 와인의 개성을 망친다’고 주장했던 아버지의 소신을 유산으로 받았다. 아버지 사후에도 여전히 아버지 이름으로 양조장을 운영한다.바르톨로 마스카렐로 양조장은 바롤로를 만드는 열 한 개의 마을 중에서 와인의 이름으로 선택된 마을 즉 바롤로 마을에 위치한다. 사람들은 바롤로 마을에서 나온 바롤로를 가리켜 ‘바롤로 디 바롤로’라고 부른다. 요즘은 단일 포도밭 와인이 대세다. 특정 포도밭의 포도로만 와인을 양조하여 그 밭의 특성이 묻어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의 성공을 벤치 마크한 것인데, 1960년대 말부터 피에몬테 일부 양조장들이 따르기 시작해서 오늘날은 거의 모든 양조장이 단일 포도밭 와인을 구분 생산하고 있다.바르톨로 마스카렐로의 바롤로는 단일 포도밭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스타일을 여전히 고수한다. 그 스타일은 여러 밭의 포도를 혼합하여 하나의 바롤로만 만드는 것이다. 바롤로의 유서 깊은 우수한 포도밭 카누비, 산 로렌조, 루에, 그리고 라 모라 마을의 로케, 이렇게 네 군데의 포도를 섞어 만든다. 마리아-테레지아는 “단일 포도밭 와인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설사 단일 포도밭 와인을 만든다고 해도 각각의 밭이 너무 작다. 각각의 밭의 특성이 서로 조화롭게 섞여 진정한 바롤로가 탄생하며, 그저 아버지가 하던 대로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가 소유한 네 군데 밭을 모두 합치면 3헥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서 매년 1500~2000병만 생산한다. 그 전날 밤 친구들과 생일 파티하며 한 병을 개봉해 이제 1967년 빈티지는 겨우 10병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아버지 방식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조력자의 힘도 크다. 알레산드로 보비오(Alessandro Bovio)는 10년째 양조장에서 일한다. 포도밭 뿐 아니라 셀러에서도 뒷감당을 한다.1999년 빈티지는 단단한 심지를 여전히 지니고 있으며 장미꽃잎 내음과 진한 타르 향을 뿜는다. 십 년이란 세월을 느끼기에는 와인의 탄력이 생생하다. 2004년 빈티지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시음한다. 또래의 다른 바롤로와는 다른 생기가 느껴진다. 거칠고 단단한 구조에 싸인 맛이다. 산뜻하고 활기찬 느낌과 투명하고 순수한 산딸기 아로마가 난다. 이런 바롤로를 국내에서 맛볼 수 없음이 좀 아쉽다.또 하나의 바롤리스타는 아직 건재한 브루노 지아코자(Bruno Giacosa, 1929~)이다.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정열적으로 양조장을 돌보다 최근 은퇴하였고, 양조장은 현재 장녀 브루나(Bruna)가 지휘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옛날을 추억한다. 양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대로 할아버지가 하던 대로 그대로 따라 했다. 그는 옛날의 바롤로, 옛날의 바르바레스코가 더 맛있다고 믿는다.바롤로와 바롤리스타 모두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전통을 고수하려는 의지가 증여되고 상속되어 오늘날 애호가들에게 바롤리스타들의 바롤로는 언제나 반갑고 뜻 깊은 와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조정용 와인 평론가 ilikewine@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