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년 동안 끌어온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됨에 따라 당분간 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의 관심은 출구전략이 과연 언제 추진될 것인가에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부터 전제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모든 경제주체들이 위기를 당할 때에는 세 가지 단계를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즉, 위기 초기에 돈이 부족한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이 단계를 조속한 시일 안에 해결하지 못할 경우 시스템 위기로 악화된다. 이 단계에 진입해 돈을 제 때에 공급하지 못하면 경기는 침체되는 마지막 단계에 진입한다.모든 위기는 이 같은 위기 극복 3단계 순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들은 위기극복 대책으로 ‘브라운식 모델’을 추진해 왔다. 그 중의 하나로 세계 각국들이 뉴딜 정책을 표방하면서 이번 위기극복 과정에서 추진된 뉴딜 성격의 재정지출 규모는 전 세계 국민소득(GDP)의 12%를 상회했다.브라운식 위기 처방으로 지난 2년 동안 끌어온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 3월 중순 이후부터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고 있다. 조지 소로스, 로버트 실러, 조셉 스티글리츠, 마크 파버 등 비관론자들의 시각이 최근 들어서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돌아섰다. 그동안 하향 수정만 하던 예측 기관들이 이제는 상향 수정하느라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금융위기 극복 3단계설로 볼 때 이제는 ‘5부 능선’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 극복 과제는 각국의 ‘빅 스텝’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기업 혹은 금융사 별로 편차는 있으나 절대 규모로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다.부실자산을 처리하는 시스템 복원 과제는 지난해 9월 이후 투자은행을 정리한 데 이어 올해는 은행의 부실자산을 정리하고 지금은 ‘빅 3’ 등 실물부문의 기업부실을 처리하고 있다. 이처럼 한편에서 부실자산 처리를 통해 금융 중개기능을 복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병행해 나감에 따라 일부 지표를 중심으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위기 극복의 가닥이 잡힌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해 금리인상 등의 긴축기조로 성급하게 변경할 경우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실물과 금융변수 간의 괴리가 심해짐에 따라 마치 경기가 회복한 것처럼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금용변수만 놓고 정책기조를 변경할 경우 실물경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이런 각도에서 최근 미국경제를 보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의 여파로 지난해 4/4분기와 올해 1/4분기에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나 오바마 정부와 연준의 적극적인 정책대응에 힘입어 최근에는 바닥을 통과하고 있다. 정도는 약하지만 소비와 생산, 위기 진원지인 주택시장 지표, 심지어는 고용지표까지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금융 면에서는 아직 다수의 가계와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신용흐름 원활화를 위한 연준의 다양한 조치 등으로 갈수록 안정을 찾는 모습이 뚜렷하다. 특히 신용 스프레드가 계속 축소되는 등 리스크 회피 경향이 완화되고 투자가들의 민간 신용시장 복귀로 회사채 발행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미국경제는 올 상반기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으나 하반기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돼 내년에는 경기회복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률은 올해 말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인 후 2010년부터 하락세로 전환되겠으나 2011년경까지는 장기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인플레는 2011년까지 낮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이처럼 완만한 경기회복과 낮은 인플레이션 전망 등을 고려할 때 현재 강도 높은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상당기간 유지해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치다. 이미 벤 버냉키 의장과 오바마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 출구전략을 추진하기보다 위기 극복과 실물경기 회복을 위해 기존의 정책을 계속 유지할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하지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대응해 취해진 비전통적 통화정책 조치들은 적절한 시기에 축소되거나 조정돼야 한다. 이런 조치들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일반 대중과 시장에 심어주는 것이 연준으로서는 중요한 과제다.앞으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급격한 유동성 회수보다는 경기와 증시흐름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의 점진적인 출구전략 수준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출구전략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적절한 시기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보유하고 있다.우리 경제는 당초 예상과 달리 2분기 성장률은 전기비 2.3% 증가해 1분기 0.1%에 이어 2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생산 측면에서는 제조업이 큰 폭의 증가로 전환된 가운데 서비스업의 성장세도 확대됐다.올 하반기에는 내외수요 관련 실물지표가 개선되면서 GDP성장률이 상반기 마이너스 3.4%에서 플러스 0.2%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는 주요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서면서 내외수요가 증가해 연간 성장률은 올해 마이너스 1.6%에서 플러스 3.6%로 높아질 것으로 한국은행은 보고 있다.이런 성장 경로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다. 대외적으로 유가상승 등이 하방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동유럽의 금융불안 재연, 주요국의 정책기조 전환을 둘러싼 불확실성 등도 우리 경기 회복을 언제든지 제약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재정정책 효과 약화, 대북한 관계 불안, 구조조정 지연, 노사분규 등 사회 전반의 갈등, 위기를 편승한 비관론자들의 위기론 등으로 경기가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따라서 지금은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추진하기보다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그린 슛(green shoots)’ 단계의 경기회복의 싹을 위기극복과 경기회복, 국민들의 경제고통 해소 등의 ‘골든 골(golden goals)’로 만들기 위해 경제주체들이 허리끈을 다시 동여매고 위기극복과 실물경기 회복에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할 때라고 판단된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겸 한국경제TV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