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미국 LPGA(여자프로골프협회)투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제난으로 인해 스폰서들이 줄지어 LPGA를 떠나고 있는데다 급기야 투어 커미셔너까지 선수들의 반발로 임기 18개월을 남겨두고 불명예 퇴진하면서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LPGA투어는 몇 년 전만 해도 연간 대회 수가 35개 안팎으로 PGA투어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올해 29개로 대회 수가 줄어들었고 내년에는 더욱 감소해 40년 전 수준으로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LPGA는 1971년에 21개 대회를 열었다.지난해 열렸던 대회 가운데 긴오픈과 긴트리뷰트, 필즈오픈, 셈그룹챔피언십, 숍라이트클래식 등과 우승 상금 100만 달러를 내걸었던 시즌 최종전 ADT챔피언십 등 6개 대회가 이미 사라졌다. 해마다 뉴욕에서 열리던 코닝클래식은 올해 31번째 대회를 끝으로 대회 중단을 선언했고 국내 방송사 SBS가 주최하던 SBS오픈은 방송중계권 협상에서 J골프에 패함으로써 대회를 중단했다. 10월 하와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카팔루아토너먼트도 결국 스폰서를 찾지 못하고 취소됐다.미켈롭울트라오픈과 싱가포르에서 열리던 HSBC우먼스챔피언십은 계약 연장을 보류하고 있고 나비스타클래식과 제이미파오웬스코닝클래식, 웨그먼스LPGA 대회도 연장 여부가 불투명하다.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의 후원사인 맥도널드도 매년 600∼700만 달러가 소요되는 대회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16년간 지속해온 후원 관계를 올해를 끝으로 종료했다. 내년도 대회가 확정된 대회는 현재 14개이고 아직 9개 대회는 개최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있다. 미정인 대회가 모두 열린다고 해도 23개 대회에 불과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LPGA의 방송중계권 협상마저 순조롭지 못하다. 내년에 전국 방송망을 가진 CBS, NBC 등 ‘메이저 방송사’에 LPGA 대회가 거의 중계되지 못할 지경이다. 그동안 평균 8개 안팎의 LPGA 대회가 ‘메이저 방송사’의 전파를 탔다. 올해는 지난해 8개보다 줄어든 5개 대회만 ‘메이저 방송사’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나마 USGA(미국골프협회)가 주관하는 US여자오픈과 R&A(영국왕립골프협회)가 주최하는 브리티시여자오픈을 빼면 나비스코챔피언십과 스테이트팜클래식, 투어챔피언십 3개 대회만이 LPGA의 관할이다. 이마저 내년에는 US여자오픈과 나비스코챔피언십, 투어챔피언십 등 3개 대회로 축소될 전망이다.위기감을 느낀 LPGA는 스폰서들을 붙잡기 위해 경비 절감 등의 대책을 내놨다. LPGA는 당초 내년부터 스코어링 시스템 운영비를 5만 달러가량 올린다고 발표했다가 최근에 취소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대회 장소 곳곳에 설치하던 11개의 대형 스코어링 스크린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티박스와 그린 주변에 TV 크기의 자그마한 스크린만 설치할 방침이다.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폰서들의 이탈이 멈추지 않자 화살이 캐롤린 비벤스 커미셔너에게로 향했다. 폴라 크리머 등 유명선수들이 커미셔너의 사퇴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린 것.비벤스는 그동안 투어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지난 5월에는 100여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여한 ‘플레이어 서밋(mandatory player summit)’을 개최했다. 이틀간 열린 서밋에서 LPGA의 마케팅 전략을 선수들에게 숙지시키고 위기감을 공유하며 일종의 연대의식을 고취했다. 이런 서밋은 지난 2002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이었다.그러나 의도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서밋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오히려 곤경에 처했다. 서밋에서는 현재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상호 의사교류가 가능한 대중매체)’를 통해 팬들과의 밀착감을 높이기 위해 라운드 도중 ‘트위터(twitter)’를 사용토록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그러나 라운드 도중 트위터 사용에 대해서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폴라 크리머는 “라운드하는 동안 트위팅은 안할 것이다. 어떤 스포츠에도 그런 일은 없다. 선수들은 이미 투어 측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선수출신으로 골프채널 해설가인 도티 페퍼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팬을 늘리기 위한 방법은 이것 말고도 많다”고 반박했다.비벤스는 지난해 ‘영어교육 의무화’를 주장했다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취소한 전력이 있다. 비벤스가 내놓는 정책은 투어 인기 추락을 만회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주변의 반발만 사기 일쑤였다.여기에 그녀가 추진했던 ‘비벤스 비젼 2010’은 스폰서들의 발길마저 돌리게 하는 결정타가 됐다. 비벤스는 올해 초 골프채널과 10년간 독점 중계 계약을 맺었다. 골프대회가 안정적으로 중계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골프채널과 계약 당시 중계권료는 포함이 되지 않았다. 비벤스는 이를 스폰서들에게 떠넘겼다. 부담이 늘어난 스폰서들이 비용 절감을 하소연했으나 비벤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대회 주최 측은 일반적으로 총상금의 2∼3배에 해당하는 운영 경비를 써야 한다. 여기에 중계권료가 별도로 들어간다. ‘메이저 방송사’ 중계권을 따내려면 대회당 평균 15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대회 인증료(sanctioning fee) 10만 달러, 스코어링 시스템 운영비 5만 달러, 프로암 비용 1만 달러 등 LPGA측에 내는 돈도 만만찮다.비벤스의 완고함은 오랜 기간 투어를 지켜온 스폰서들을 실망시켰다. 비벤스는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에서 더 이상 스폰서를 찾기 어려우면 대만, 인도,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아시아 지역에서 스폰서를 구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부쳤다.투어 선수의 3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한국선수들은 현재의 LPGA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현지에서 LPGA투어 TV 중계를 보고 있자면 한국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화면에 잡히는 것은 별로 없다. 스타성을 갖춘 선수가 없다보니 선두를 달려야만 그나마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그동안 한국선수들이 투어를 통해 받기만 했다면 앞으로는 투어의 운명을 짊어진다는 각오로 적극적으로 위기 해결에 동참해야 할 시기다.마이애미(미국 플로리다주)=한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