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활용해 기업경쟁력을 갖추려는 ‘문화마케팅’의 사례는 점차 진화하여 이제는 ‘컬쳐노믹스(Culturenomics)’라는 신조어까지 등장시켰다. 컬쳐노믹스는 영어의 문화를 뜻하는 컬처(Culture)와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믹스(Economics)를 합성한 단어로,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교수인 피터듀런드(Peter Duelund)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문화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으로서, ‘문화 그 자체의 부가가치를 경제와 접목시킨다’는 관점이다. 세계적 빅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문화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문화가 돈 되는 컬처노믹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최근 컬쳐노믹스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사례는 작품전시가 가능한 전문 갤러리를 기업의 사옥 내에 직접 운영하는 것이다. 이 공간에선 기업이 추구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작품은 물론, 기존의 전문적인 미술형식까지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선 일반적인 갤러리보다 더 전문성을 띠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갤러리의 장점은 모체 기업에서 작가발굴과 전시진행의 후원에 적극적이란 점이다. 때문에 최근엔 많은 작가들이 먼저 기업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전시를 의뢰하는 예가 늘고 있을 정도다.‘물과 사람의 행복한 만남’을 모토로 삼고 있는 욕실문화 기업 로얄&컴퍼니(대표 박종욱)는 서울 논현동 사옥에 복합문화공간인 ‘갤러리 로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업이 표방하는 컬쳐노믹스의 특징은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세분화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로얄갤러리’를 통해선 순수 미술장르의 전시형식을 통해 작가발굴과 후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의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전시공간인 ‘갤러리 목간’을 운영 중이며,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의 강좌로 구성된 아카데미 교육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생산 중인 제품의 홍보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문화마케팅 기법이지만, 이는 결국 문화예술 프로그램 후원으로 ‘대중 친화적인 기업’이란 긍정적인 기업이미지 제고에 크게 한 몫 하고 있는 것이다.문화 경영을 미래의 핵심 키워드로 삼은 ㈜코리아나 화장품(대표이사 사장 유학수)은 2005년 서울 서초동 사옥 내부 리뉴얼 공사를 하면서 1층 로비에 갤러리를 마련한 경우다. 이 ‘스페이스 C ’의 핵심 공간은 화장문화사 박물관인데, 수십 년 동안 유상옥 회장이 컬렉션 한 1000여 점의 화장구와 의상 및 소가구 등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시대별 도자 유물이나 조선시대 여인들이 간직했던 바늘집이나 수노리개, 칠보 등이 흥미롭다. 이곳은 코리아나 화장품의 오랜 철학이 함축된 공간인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박물관’이다. 이 외에도 전통과 현대, 화장과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기획전시를 소화할 수 있는 테마별 전시공간을 구비하고 있다.서울 잠원동 한국야쿠르트(대표 양기락) 빌딩에 위치한 갤러리 우덕은 사옥에 입주한 갤러리의 가장 오래된 예 중에 하나이다. 윤덕병 회장의 호인 ‘우덕’에서 갤러리 이름을 따서 1997년 개관했다. 지난 10년 동안 100여점 이상의 그림을 소장하는 한편, 강남권 지역에 비영리 갤러리의 선도 역할을 해왔다. 갤러리 설립 정관에는 아예 개관 목적을 ‘일반 대중들에게 문화 예술에 대한 향유와 폭넓은 시각적 자각에 기여한다’고 적었을 정도이다.더 나아가 대기업들의 사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미 문화예술 활동 지원의 일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포스코(회장 정준양)는 1995년 강남 테헤란로의 포스코센터 서관2층에 전시실 522㎡(158평) 규모로 포스코갤러리를 개관했다. 갤러리에선 연간 8~12회 정도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소개하는 기획전시를 선보이며, 소장 작품 수는 총 650여점에 이른다.이 외에도 문화예술 기업을 표방하면서 예술을 적극적으로 브랜드화 시키거나, 문화를 기업경영의 모토로 삼고 있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문화마케팅 붐이 기업만이 아니라 지자체에서까지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시는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되면서 단연 독보적인 예술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디자인 정책을 총괄하는 담당자를 부시장급에 특별 배정했을 정도다. ‘하이! 서울페스티벌’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주최한다거나, 도시 전체를 디자인하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미술 사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서울의 발 빠른 행보에 힘입어 지역의 지자체 역시 독창적이면서 차별성을 갖춘 각종 문화행사로 경쟁력을 추구하고 있다.저명한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자신의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 ciety)』에서 “정보화 사회는 지났으며, 이제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해주는 것이 차별화의 핵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 시대가 온다”고 강조했다. 그가 분석한 ‘세계 각국의 경제 여건과 소비 패턴’에 따르면, 소위 먹고 살만한 나라(1인당 국민총생산 1만100달러 이상)는 대부분 ‘꿈과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행태’를 지녔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역시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즐기고 누릴’ 대상을 찾는 형국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문화소비 증가를 뜻한다. 점차 사회 전반에 ‘문화의 힘’이 부각되면서 예술가나 그의 생산품인 작품에 대한 역할과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로써 ‘문화를 파는 기업’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문화는 21세기의 산업사회와 경제발전을 꽃피우는 자양분이다. 이러한 문화는 바로 꿈과 감성으로부터 태어난다. 따라서 문화예술이 지닌 무한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어떻게 재활용 하는가는 한 기업은 물론 한 나라의 경제적 발전을 담보해줄 것이다. 과연 누가 먼저 문화의 판도라상자를 열 수 있을 것인가.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