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기 뉴스타그룹 회장
교황의 한국 방문이 연일 화제다. 특히 교황의 낮은 자세와 소박하고 진솔한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으며, 뭇사람들의 칭송을 들었다. 나는 교황의 모습을 보면서 겸손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것을 마음에 새기는 ‘겸손’이야말로 이 시대의 덕목이 아닐까. 어찌 보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겸손을 강조하는 게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겸손의 효용가치는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도 없을뿐더러, 대다수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의 진솔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게 된다.간혹 겸손한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도 없지 않겠지만 이 또한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을 경계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일의 차질을 빚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들에게 최상의 성공 방정식은 ‘겸손’이라고 늘 강조한다.
사람을 보고 짖는 개는 실상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 자신이 없는 사람은 억지로 자신을 꾸미려 하고, 위상을 높이려 하며 겸손을 멀리한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 이는 당연하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 자신 있는 사람은 자기의 모습과 삶의 방식에 대해 남들이 어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사상가요 과학자이자, 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등 다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긴 ‘벤저민 프랭클린’의 일화다. 그가 젊었을 때 하루는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주인이 일러준 대로 지름길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 길 중간에 키보다 낮은 들보가 가로놓여 있었다고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길을 가던 프랭클린은 그만 그 들보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게 됐다. 급히 달려 온 주인이 상처 난 그의 머리를 만져 주며 자상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젊은이, 앞으로 세상 살아갈 때 머리를 자주 숙이게! 머리를 많이 숙일수록 부딪히는 일은 줄어들 걸세.” 이때부터 프랭클린은 이 말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한평생을 겸허한 자세로 살았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는 프랭클린의 수많은 업적들도 그의 그런 마음가짐이 없었다면 아마 이뤄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옛날 어느 왕이 신하들과 백성들의 민심을 살피러 밖으로 나왔다가 길가에 비바람에 깎이고 깎여 볼품없는 초라한 돌부처를 보게 됐다. 그러자 왕은 이내 가마에서 내려와 그 돌부처를 향해 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신하는 “어찌하여 전하께서 이런 하찮은 돌부처에 머리를 숙이시옵니까?” 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궁궐로 돌아온 왕은 그 신하를 부르더니 “아흔아홉 개의 짐승 목과 한 개의 사람 목을 가지고 오게” 하더니 그에게 그것들을 저자거리에 내다 팔아 오라고 했다. 저녁때가 다 돼 그 신하는 “짐승 목은 다 팔았는데 사람 목은 팔리지 않았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왕이 그 신하에게 말하기를 “죽어서도 잘 팔리는 짐승의 목보다 한 번 죽으면 어느 사람도 찾지 않는 쓸모없는 그 목, 살아 있을 때 그 목으로 머리를 많이 숙이게”라며 “그러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15년 전 어느 스님이 나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마침 오늘 아침에 직원 한 사람이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라면서 주고 갔다. 한 번 들어 보았다. 성경에서도 잔칫집에 갔을 때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지 말고 가장 낮은 자리에 가서 앉으라.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스스로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의 말을 진솔하게 들어주는 일, 바로 이 세상에서 또 하나의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요, 성공의 실크로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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