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다섯 번째

TV 역사 사극 ‘정도전’ 이후 수많은 남성들이 열광하는 새로운 남자 캐릭터가 등장했으니, 거친 회오리가 치는 명량 바다에 기꺼이 뛰어들어 한판 승부수를 띄운 이순신 장군이 그다. 시공을 초월해 스크린에 부활한 이순신 장군이 오늘을 사는 남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MEN`S CONTENTS] 역사를 바꾼 전쟁, 남자도 바꾸다 영화 ‘명량’
올여름 극장가는 이순신 장군이 점령했다. 아니, 왜군의 침탈에 맞서 싸운 성웅이시니 점령이라는 다소 침략적인 느낌의 단어 대신 독보적이란 표현이 어울리겠다. 좌우지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머물던 영웅의 서사가 스크린으로 부활해 온 국민을 열광케 하며 흥행 스코어를 다시 쓰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 23전 23승 무패에 빛나는 충무공의 전적에 버금가는 일이라 평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영화 ‘명량’이 이토록 열성적인 지지를 받으며 꼭 한 번 봐야 할 작품으로 등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 영화가 남자들 가슴에 뿌리박힌 세 가지를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충무공이 일깨워 준 ‘남자의 자격’
첫째는 바로 울분이다. 다들 알다시피 충무공은 정치적 모함에 모든 것을 잃고 버려졌던 인물이다. 영화 역시도 초반부에 그것을 상기시킨다.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파직돼 충정마저 의심받으며 고문까지 당했지만 국운이 기울자 다시금 적임자로 임용되는 기구한 운명을 따른다. 그런데 그것은 흡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출세 경쟁의 비열함과 닮아 있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 울분이 감정이입의 촉매로 작용했고 관객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년층의 남성들에게도 그것이 크게 와 닿았으리라. 그러니 그의 승리가 더욱 값지고 눈물겹다. 게다가 모두가 승산이 없다고 말한 전투에서 이루어 낸 승리가 아니던가.

둘째는 의리다. 비록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할지언정 그는 무관으로서 충성을 다했다. 임금이 아닌 백성을 위해 충(忠)을 따라야 한다며 대의에 대한 명분까지도 지켜 냈다. 그것은 의리로써 빚어 낼 수 있는 가장 숭고하면서도 멋진 모습이다. 비록 세상 모두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따르려는 고집, 남자라면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기질이자 여자들은 다소 무모하게 느끼는 의리의 최고 등급을 이순신 장군께서는 보여 주었다.

마지막은 바로 소통이다. 충무공은 스스로 몸을 던지며 병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에게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한 살신성인의 메시지는 리더십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에 앞서 소통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덕분에 할리우드의 마블 히어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웅상을 보여 주었고 웬만한 초능력에도 심드렁했던 중장년의 남성들을 극장으로 끌어 모았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 관객을 매료시킨 그 세 가지 지점들이 필자 같은 평범한 남자들에겐 대부분 부재하다는 것이다. 충무공처럼 ‘사즉시생 생즉시사(死卽是生 生卽是死)’의 결기로 자신의 값어치를 입증한 적이 있느냐고 자문한다면 글쎄, 즉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하기보다는 그저 경쟁 세태의 비열함만을 탓했던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의리보다는 약삭빠른 계산으로 갈 길을 정하고, 소통하는 자세로 마음을 열기보다는 알량한 지위를 내세우며 대접을 바라는 게 보통이다. 조금 더 통렬히 반성하자면 이 세 가지 것들을 모르지 않는다.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행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알면서도 외면해 온 ‘남자의 자격’을 이순신의 일갈에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지닌 순기능이 아닐까.

어젯밤 간만에 만난 지인과의 자리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거론됐다. 캠핑장에서 우연히 동석하게 된 초면의 이웃과도 영화 ‘명량’에 관한 이야기로 어색함을 털었다. 물론 수다가 계속되다 보니 영화 이야기가 정치 이야기로 번지긴 했지만 나이깨나 먹었다는 남자들이 누군가를 그토록 동경하고 칭찬해 보긴 참으로 오랜만인 듯싶다. 영화의 여운이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치던 광화문 앞 동상도 새삼 달라진 눈길로 바라보겠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한산’과 ‘노량’도 연작으로 선보인다니 말이다.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