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자산운용 구원투수 온기선 대표
쉴 ‘休(휴)’, 그칠 ‘止(지)’, 통할 ‘通(통)’. 동양자산운용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온기선 동양자산운용 대표의 핵심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9월 동양 사태 이후, 동양자산운용은 2조 원을 넘어서는 금액의 펀드런(대량 펀드 환매)으로 이어지는 사상 유례 없는 위기를 겪었다. 이때 구원투수를 맡은 이가 온 대표다. 지난해 12월 취임 이후 그는 다양한 혁신을 통해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동양 사태 이후 시중은행에서 중단했던 동양자산운용의 펀드 판매를 얼마 전부터 다시 개시했습니다. 점차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겁니다.”가장 어려운 시기, 가장 어려운 책임을 떠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난 7월 11일 만난 온기선 동양자산운용 대표의 목소리는 희망이 넘쳤다. 그가 이처럼 자신만만한 데는 과거 그의 경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시중은행과 증권사를 거쳐 2003년 투자전략팀장으로 국민연금공단에 들어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0을 웃돌던 코스피 지수가 반 토막 나 1000선이 무너졌을 당시 주식운용실장으로 재직했다. 모두가 몸을 사리던 그때 증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고, 2년여 만에 코스피가 2000선을 회복하며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지난 2010년엔 펀드매니저의 횡령 사고로 400여억 원의 손실을 보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대신자산운용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겨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바 있다. 그가 금융 업계에서 위기관리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배경이다.
사장실의 짜릿한 변신, 혁신은 ‘휴지통’에서부터
실제로 동양자산운용은 지난 1년여간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격한 등락을 겪었다. 동양 사태 이후 불안감을 느낀 일반 투자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지난해 3월을 기준으로 15조 원을 조금 웃돌던 동양자산운용의 수탁고는 한때 13조 원 안팎까지 빠졌다. 올 들어 14조 원 가까이 회복한 상태다.
“기관투자가들보다는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서 동요가 컸던 게 사실입니다. 정작 당시 우리가 운용하던 고객 자산 중에 동양그룹의 회사채나 기업어음은 1원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동양’이란 이름에서 불거진 오해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동양자산운용은 ‘새로운 변화’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12월 동양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완료했으며, 고객 CI(Corporate Identity)도 ‘고객 자산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의미의 날개 모양으로 교체했다.
“우리의 최대 주주인 동양생명이 동양그룹과 완전히 분리하면서, 공식적으로도 동양그룹과는 별개의 회사가 됐습니다. 동양자산운용은 동양생명의 자회사입니다. CI도 동양생명의 날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고요. 사명을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는데, 이름은 유지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혹시 이름을 바꿀 경우 지금껏 동양자산운용이 쌓아온 좋은 이미지마저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거든요.”
변화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혁신은 조직 내부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그의 믿음에 따라 그는 먼저 조직 내부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게 바로 직원들의 휴식 공간 마련이다. 온 대표는 이를 위해 사장실까지 망설임 없이 내주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저뿐 아니라 직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열정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직원들이 쉴 곳 하나 없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루 종일 컴퓨터만 봅니까. 가끔은 머리를 쉬어 주기도 하고, 동료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래야 업무 효율도 더 오르잖아요. 처음에 이곳에 와서 보니 사장실이 너무 컸는데, 이참에 사장실을 비우고 직원들 카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발 놀면서 일하라’는 사장의 색다른 요구에 처음에는 직원들조차 반신반의했던 게 사실. 그러나 실제 휴식 공간인 ‘휴지통’이 만들어진 뒤 이곳은 그야말로 직원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한쪽엔 다양한 경제·경영 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이 놓여 있고, 창문가에는 마치 와인 바를 연상케 하는 긴 테이블이 자리를 잡았다. 이른 아침 업무를 시작하는 탓에 아침 식사를 거르는 직원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매일같이 식빵이며 과일과 같은 먹거리를 준비해 놓고 있다. 휴게실 뒤쪽으로는 쪽방을 만들어 놓고, 여직원들이 편하게 발 뻗고 누워 쉴 수 있는 여직원 휴게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처음에 직원들이 휴게실에 컴퓨터를 갖다 놓으면 어떻겠냐는 걸 겨우 뜯어말렸습니다. 잠시 컴퓨터 앞을 벗어나 여유를 찾으라고 만든 공간이니까요. 철저하게 그 의도에 충실한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사실 저는 휴지통에 자주 들르지는 못합니다. 제가 있으면 직원들이 불편해할 테니까 말입니다.(웃음) 그래도 가끔 지나가다 휴지통 내부에서 직원들이 창가에 앉아 커피를 즐기거나 동료들끼리 수다를 떠는 걸 보게 되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온 대표 역시 남모르게 들인 공이 적지 않다.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에 직원 휴게 공간이 잘 꾸며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판교로 직접 찾아가 벤처업체들을 찾아 다녔다. 내부 인테리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수시로 ‘카페베네’와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을 들락거리며 관찰하기도 했다. 휴지통이란 이름 역시 온 대표의 고민이 담긴 작명이다.
“휴게실을 오픈하고 직원들에게 이름을 공모했는데 ‘休(휴)’라는 이름이 가장 많더라고요.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는데 이 이름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쉴 휴, 그칠 지, 통할 통’. 단순하게 휴게실의 이름이 아니라, 지금 동양자산운용과 직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핵심 철학이 담긴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사무실에 와서 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다행스럽게도 다들 ‘휴지통’이라는 이름을 쓰는 걸 허락해 줬습니다.(웃음)”
직원들에게 ‘허락’ 받는 사장님…‘동반자 리더십’
온 대표의 설명 중 유독 ‘직원들이 허락을 해 줘서’라는 표현이 귀에 박힌다. 사실 그는 휴게실과 관련된 사항뿐 아니라 회사의 거의 모든 사안을 직원들과 함께 논의하고 동의를 얻은 뒤에야 추진하곤 한다. 동양자산운용 입구에 쓰인 ‘사명선언문’ 또한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 중 하나다.
“이곳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게 회사의 기본 철학을 다시금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직원들이 먼저 ‘어떤 회사’를 만들어 갈지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서 수시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최종 결정 단계에서는 이틀간 합숙을 통해 ‘케어(CARE)’라는 핵심 전략이 정해졌습니다. 선언문에 쓰인 문구 하나하나 직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다함께 다듬어 가며 탄생했다는 데 의미가 큽니다.”
‘CARE’. 고객들의 자산을 내 자산처럼 소중하게 ‘돌보는’ 전문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이 말은 ▲C-Care. 심층 리서치를 기반으로 주의 깊고 신중하게 고객 자산을 운용 ▲A-Ahead. 투자 판단, 운용 기법, 리스크관리 면에서 한 발 앞서 갈 것 ▲R-Respect. 경청, 격려, 겸손으로 화합 ▲E-Ethics. 법률과 규정을 준수할 것이라는 동양자산운용의 네 가지 약속이다.
“중요한 건 직원들의 주인의식입니다. 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저는 사장만 조직의 리더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장도 리더고 대리도 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입니다. 실제로 CARE라는 핵심 전략도 제가 아니라 직원들에게서 먼저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만약 저 혼자 이 모든 걸 다하려고 했다면 ‘ahead’와 같은 좋은 문구를 떠올리지도 못했을 겁니다.(웃음)”
온 대표의 말 속에 최고경영자(CEO)로서 그가 추구하는 리더십이 드러난다. 직원들을 앞에서 끌고 가기보다 옆에서 함께 고생을 감수하는 ‘동반자 리더십’인 셈이다. 그는 특히 이를 위해 직원들과 수시로 토론하는 자리를 만드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사장 혼자 말하고 직원은 듣기만 하는 토론은 기피한다. 누구도 격의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그러나 온 대표가 ‘토론’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동양자산운용이 기관투자가들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는 자산운용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직원들을 ‘컴퓨터 앞에서 떠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컴퓨터 앞을 떠나는 것’과 ‘토론’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내부 토론에선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가 다뤄집니다. 평소 제가 좋다고 생각했던 글을 공유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요즘엔 직원들에게 현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많이 물어보곤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아파트를 건축할 때 건설가설재와 거푸집으로 알루미늄이 엄청나게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리포트에만 의존해서는 얻을 수 없는 정보입니다. 현장 탐방에 나서야만 들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정보입니다. 이런 정보들이야말로 우리가 고객에게 약속한 ‘심층적이고 한 발 앞서는’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탁고 서서히 회복 중…‘제2도약’ 준비 마쳤다
이 같은 노력 덕분일까. 한동안 썰물 빠지듯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이 빠져나가기만 하던 동양자산운용은 현재 서서히 회복세를 타고 있다. 특히 채권형과 채권혼합형 상품을 중심으로 다시 자금 유입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동양에이스공모주사모증권(채권혼합)’은 지난 2013년 말 수탁고 170억 원에서 현재 392억 원으로 222억 원이 증가했으며, 동양매직국공채증권1호(채권)도 지난 2013년 286억 원의 수탁고에서 현재 429억 원으로 143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 대표는 “올해 상반기에만 수탁고가 3000억 원가량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직은 회복을 위한 준비를 마친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인 신호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제2의 탄생’을 맞은 것과 마찬가지인 지금의 동양자산운용에서 온 대표의 목표는 어디까지일까.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하고 싶은 게 솔직한 욕심입니다.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웰스케어 전문가’로서 보다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는 채권이나 주식 일반형 등 모든 분야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 줄 만큼 경쟁력을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자산운용은 오래전부터 채권에서는 우수한 운용 실적을 기록하며 인정받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한국펀드평가(KFR)에서 국내 채권형 운용사를 비교 평가한 결과 우리가 2.62%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다른 운용사와 비교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 상대적으로 주식 일반형은 노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특히 대형주 쪽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방침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부동산 쪽에서도 점차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도 있습니다.”
이제 막 회복기에 접어든 단계인 만큼 아직은 구체적인 전략을 말하기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향후의 포부를 밝히는 온 대표의 목소리는 거침이 없다. 그가 동양자산운용을 통해 다시 한 번 ‘위기관리 전문가’로서 명성을 지켜 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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