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선호상사 회장

선호상사는 서울·경기도권 대형 주류 도매상 중 하나다. 1968년 선호상사를 창업해 지금까지 경영하고 있는 조영철 회장은 주류 업계에서 ‘골프의 전설’로 통한다.

73세 고령에도 젊은이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장타를 자랑하는 조 회장의 골프 이야기를 들었다.
[MAD ABOUT GOLF] 아내와 골프 즐기는 주류 업계 ‘골프의 전설’
조영철 회장과 라운딩을 해 본 사람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우선 골프 교본과는 거리가 있는 폼에 놀라고, 그럼에도 남부럽지 않게 날아가는 비거리에 놀란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드라이버 거리 230m를 자랑한다. 쇼트 게임도 능해서 웬만한 골퍼들은 그를 당해내지 못한다.

“지금도 일주일에 적어도 이틀은 골프장에 갑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소비성 운동이라고 골프를 싫어했어요. 그러다 골프를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됩니다.”

골프를 시작한 직접적인 배경은 인간관계였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탓에 사람을 만나는 데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주류 제조사들이 각종 골프대회를 주관하면서 어느 날부터 주류 업계 사람들이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술을 못 마시는 데다 골프까지 안 하면 ‘왕따’를 당하겠다는 생각에 골프채를 잡았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세 살이었다.


2개월 레슨 후 실전에서 다진 골프 실력
머리는 제주컨트리클럽(CC)에서 올렸다. 제조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는데, 레슨을 시작하고 열흘도 안 돼 티샷을 했다. 이미 골프를 시작한 친구들은 보기 플레이를 할 때였다. 실력으로는 한참 뒤처져 있었으니 망신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는 제가 주류 업계에서 영향력이 꽤 있을 때였어요. 위스키, 맥주 등을 가장 많이 거래했으니까요. 10팀이 갔는데 나더러 제일 먼저 티오프를 하라는 겁니다. 그때까지 드라이버를 한 번도 안 쳐 봤어요. 드라이버를 휘두르긴 했는데 공이 안 보여요. 결국 그나마 많이 써 본 7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했죠. 같이 간 분들이 격려해 준 덕에 어찌어찌 마지막 홀까지는 왔는데, 스코어카드를 보니까 128이 적혀 있더군요. 내 기억으로는 200개 이상은 친 것 같아요.”

골프의 어려움을 제대로 배운 첫 라운딩이었다. 그렇다고 열 일 젖혀두고 골프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주류 도매업이라는 게 동네 구멍가게부터 슈퍼마켓, 할인점, 식당, 유흥주점 등 거래처가 한두 곳이 아니다. 그 많은 거래처를 관리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연습장에 등록은 했지만 빠지기 일쑤였다. 초보 골퍼 시절 딱 두 달 연습장에 다닌 게 전부다. 그 대신 실전에서 감각을 익혔다. 예나 지금이나 주류 업계에서 영향력이 큰 편이다. 그 덕에 이래저래 골프를 칠 기회가 잦았다.

대형 제조사만 해도 OB맥주, 진로, 디아지오코리아, 페르노리카코리아 등 네 군데가 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식 골프 모임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골프장을 찾아야 했다. 여기에 친구 모임, 가족 모임 등을 합치면 일주일에 두 번 라운딩은 기본이었다. 그러다 보니 거의 실전에서 샷을 다듬었다.

해외 원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로 필리핀을 중심으로 동남아 골프장을 다녔다. 한 번 원정을 가면 하루 36홀도 돌았지만, 지금은 18홀만 돌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를 즐긴다. 동행한 젊은 친구들이 9홀 추가를 원하더라도 말리는 편이다.

글로벌 위스키업체들 초청으로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중동 등지의 골프장도 섭렵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열리는 명문 골프장은 바람도 세고, 잔디도 한국과 달라서 아마추어 골퍼가 라운딩을 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바람이 심할 때는 조 회장 같은 롱기스트도 드라이버 샷이 130m밖에 안 가기도 했다. 이래저래 ‘즐기는 골프’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조 회장의 평가다.
지난 6월 있은 발렌타인 로드 투 브리티시 오픈 토너먼트에서 티샷을 하는 조영철 회장.
지난 6월 있은 발렌타인 로드 투 브리티시 오픈 토너먼트에서 티샷을 하는 조영철 회장.
라운딩을 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조 회장은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결과 골프 시작 4년 만에 싱글 대열에 합류했다. 50대까지 싱글을 고수한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77타. 지인들과 함께 한 라운딩에서 서너 번 베스트 스코어의 짜릿함을 맛봤다. 가장 자신 있는 것은 비거리. 한참 때는 드라이버 250m, 3번 우드 230~240m는 너끈했다. 그 덕에 파5 홀에서 미스 샷만 나지 않으면 2온이 가능했다.

“당시는 힘이 있을 때니까 거리가 많이 났죠. 제가 헬스, 등산 등 운동을 많이 했는데 스포츠는 원리가 거의 비슷합니다. 힘이 받쳐 줘 헤드 정중앙만 공이 맞으면 거리는 많이 나기 마련입니다. 제 스윙을 보고 다들 ‘8자 폼’이라고 하는데, 독학으로 배웠으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롱기스트는 거의 제가 독식을 했습니다.”

그 사이 몇 번인가 레슨 프로를 찾은 적도 있다. 드라이버가 제대로 안 맞아 연습장 프로에게 레슨을 청했던 것. 그런데 그의 스윙을 지켜본 레슨 프로는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말과 함께 “바꾸려면 다 바꿔야 하는데 그 연세에는 그게 훨씬 힘들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렇게 독학으로 주류 업계 ‘골프의 전설’이 된 그는 6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자신만의 골프에 눈을 떴다.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의 조언이 필요 없어졌다. 스스로 문제점을 깨달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추어 골퍼라면 기본기를 확실히 배우고, 그다음에는 자기만의 느낌을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미스 샷을 하면 왜 미스 샷을 했는지 스스로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거 같지만 잘 생각하면 스스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야 빨리 고친다는 걸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가끔 그도 유달리 공이 안 맞는 날이 있다. 그때는 컨디션이 문제기 때문에 억지로 잘 치려고 해도 안 맞는다. 조 회장은 그런 날은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편안하게 라운딩에 임한다. 적당히 잘 맞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이런 날도 있구나’ 하고 마음 편히 받아들인다.


욕심을 버리자 찾아온 두 번의 홀인원
신기한 건 그 경지에 이르러서야 홀인원을 맛봤다는 사실이다. 70대, 싱글을 칠 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홀인원을 최근 두 번이나 맛봤다. 두 번 모두 문막 센추리CC였다. 첫 홀인원은 지난해 구코스 5번 홀에서 기록했다. 아내와 딸, 처남댁과 팀을 이뤄 나간 라운딩, 140m 파3홀에서 6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기록했다. 가족들과 한 라운딩이라 홀인원 턱을 내지 않았지만, 근사한 홀인원 패를 선물로 받았다.

두 번째 홀인원은 올해 6월 가족과 함께 한 라운딩에서 맛봤다. 신코스 5번 홀 135m 파3에서였다. 그날따라 비거리가 안 나 6번 아이언을 잡고 쳤는데 그게 홀컵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 홀은 라이가 어려워 티샷을 홀컵에 붙이고도 3퍼딩하기 쉬운 곳이다. 그런 홀에서 홀인원을 했으니 기분이 남달랐다.

홀인원도 중요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라운딩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즐거움이다. 요즘은 거의 매주 아내와 함께 센추리CC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캐디며 모든 직원들이 그들 부부를 알아본다. 골프장 내장객 중에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 같은 골퍼가 그들 부부라고 한다. 라운딩을 해도 다투거나 성질을 부리지 않고,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골프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헬스도 하고 등산도 가 볼 만큼 가 봤어요.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등산도 관절에 무리가 가서 못 해요. 그런데 골프는 잔디 위를 걸으니까 무릎에 무리도 안 가고, 주변의 좋은 공기 마시면서 즐길 수 있으니까 더없이 좋은 운동이죠. 정신적으로 즐거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제 나이에 5일 연속으로 쳐도 피곤한 줄을 몰라요. 또 20대부터 70대까지 모든 연령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고요. 골프를 시작한 게 참 잘한 일 같습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