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의 경계

증시를 지탱하는 힘을 말할 때 펀더멘털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성적인 펀더멘털보다 감성적인 센티멘털이 더 큰 위력을 과시할 때가 있다.
일러스트 추덕영
일러스트 추덕영
펀더멘털의 의미는 국가적으로는 경상수지, 성장률, 실업률, 물가상승률 등 주요 거시경제 지표가 얼마나 건강하고 튼튼한지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한다. 스포츠에서는 펀더멘털이 운동을 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체격 조건을 말한다.

반면 센티멘털은 사물이나 사람 또는 환경적인 변화에 대해 감정적으로 얼마나 민감하게 느끼고 행동하는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정서적 혹은 낭만적 의미라기보다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도를 말한다. 게임이나 수능시험같이 혼자 하는 경우와 달리 상대가 있는 경기나 여러 명이 한 팀이 돼서 하는 경기 또는 관중들이 열광하는 경기에서는 동일한 상황의 변화가 가져오는 플레이어의 반응이 너무 다르다. 특히, 주식시장은 참여자들이 너무 많고 시시각각으로 재산상의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흥분하게 된다.


공포감은 센티멘털에 군중심리가 더해져 발생
한 나라의 펀더멘털에 문제가 생기면 주가가 가장 먼저 반응한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주가는 반 토막이 나 있을 정도로 주가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 미국의 금융위기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150년 된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은 2008년 9월이었다. 그런데 미국도 아닌 우리나라 주가는 1년 전인 2007년 여름부터 하루에 100포인트씩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필자는 당시 건대역 지점장으로 있었는데 마침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황급히 사무실로 복귀했기 때문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정보의 정점에 있는 사람도 아니기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 금융기관에서 먼저 돈을 빼라는 지시가 있었고 그 소식이 퍼지면서 전문가들도 이유를 모른 채 외국에서 돈을 빼기 시작했다. 국가정보원이나 대기업의 해외정보팀, 증권사 외국인 담당 영업부서 등 다양한 채널의 상단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래도 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고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해결되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도 불안할 때는 양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그러나 주가는 귀신처럼 문제도 알고 답도 알고 있는 것이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중 누가 더 흥분할까. 주가가 오를 때는 천천히 다져가면서 올라가는데, 문제가 생겨서 빠질 때는 급하고 무섭게 빠지는 걸 보면 확실히 파는 사람들이 훨씬 더 흥분하는 거 같다. 오죽하면 천장 3초라는 말이 있겠는가.

공포감은 센티멘털에 군중심리가 더해져서 온다. 전문가들도 그럴 때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고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심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런 시장의 심리를 잘 이용한다면 돈 벌기는 참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존 템플턴경은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하다가 행복감 속에 사라져간다”고 말했다. 시세는 연어처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담쟁이덩굴처럼 의심과 회의의 벽을 타고 오른다고 했다.

주식시장만큼 인간의 심리나 나약함이 잘 드러나는 공간은 없다. 한 달 사이에 주가가 50% 올랐다가 도로 내려오는 경우에도 해당 기업에 물어보면 깜깜이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하고 되묻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의 펀더멘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시장의 필요에 의해 이벤트나 테마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기름을 붓듯이 군중심리가 작용하고 가속도 원리까지 가세해 오버슈팅을 하다가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주식투자는 펀더멘털이 좋은 우량주 또는 거래는 적지만 자산 가치 대비 싼 주식만을 잘 골라서 농사짓는 것처럼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관리해서 가을에 수확하듯이 투자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주식, 나쁜 주식 가리지 않고 시장의 변동성만을 활용해 기술적으로 사고파는 사람들이 훨씬 많고 관련 이론과 서적과 강연회도 봇물을 이룬다. 스톡케스틱이나 파라볼릭 같은 전문적인 지표를 몰라도 거래량 하나만 봐도 시장의 심리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들은 공포감이나 작용 반작용, 가속도 원리 등을 본능적으로 체득해 매매에 임하고 하루 1~3%를 목표로 방망이를 짧게 잡되 타율을 높이는 전략으로 삼는다. 순전히 센티멘털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자신만의 기법을 가지고 원칙에 따라 투자해서 성공했다면 그것도 하나의 답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접근 방법이 다를 뿐이다.


센티멘털이 지배하는 프로 골퍼들의 세계
스포츠에서도 펀더멘털과 센티멘털의 문제가 많이 생긴다. 특히, 아마추어는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데 급급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센티멘털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어마어마한 돈과 명예가 걸려 있다.

우리나라 골프가 세계적 수준임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특히, 여자 골프는 세계 1등을 한 선수가 수도 없이 많다. 골프는 체력 소모가 적기는 하지만 그것도 운동이기에 서양 선수와 비교해서 펀더멘털상으로는 분명 열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강한 것은 센티멘털적인 측면이라고 본다. 외환위기 때 박세리의 맨발 투혼 우승, 최근 세월호 침몰 사고 때 노승렬의 우승, 코리안 탱크 최경주, 바람의 아들 양용은, 어머니의 교통사고 이후 기도로 우승한 신지애, 돌부처로 불리는 박인비의 공통점은 멘털이 강하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멘털의 문제다. 로리 맥길로이나 타이거 우즈의 부진은 여자 문제에 있었다. 나상욱 선수는 어드레스 동작에서 플레이를 지연해 벌타와 여론의 질타로 한때 볼을 칠 수 없는 지경까지 왔었다고 한다. 잘 맞던 드라이버도 짓궂은 동반자가 “숨을 들이쉬면서 치는 거야 내쉬면서 치는 거야?”라는 이 한마디에 무너지는 것이 골프다. 주식시장만큼이나 골프도 심리의 나약함과 취약성이 잘 나타난다.

그런데 볼이 안 맞는 이유를 지나치게 멘털적인 부분에서 찾다 보면 골프 실력이 늘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뭐든 했다 하면 죽기 살기로 하니까 연습량은 외국에 비해서는 일단 많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연습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연습장 가서 몇 시간씩 드라이버만 질러대는 연습보다는 원리를 이해하면서 이미지로 연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전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퍼터와 웨지에 대한 연습량도 늘려야 한다. 드라이버에서 웨지에 이르기까지 볼의 위치나 스윙의 궤도는 어떻게, 왜 달라져야 하는지 알고 느껴야 한다. 벙커와 러프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실제 필드는 연습장과 달라서 높낮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볼의 위치에 따라서 반드시 조정을 해 줘야 하는데 조정은 하지 않고 탓만 하다 보면 골프가 늘지 않고 재미도 없어지는 것이다. 책도 보고 연구도 하고 필요하면 레슨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펀더멘털이 어느 정도는 돼야 비로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재 한국투자증권 상무·WPGA 티칭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