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가파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원화 강세 기조가 계속될 것이란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원·달러 환율 1000원 시대의 재테크 전략을 알아봤다.
[FOCUS] 원·달러 환율 1000원 시대 다시 짜는 재테크 전략
“요즘 부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환율입니다. 환율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이럴 땐 자산관리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물어보는 전화가 하루에도 여러 통씩 걸려 옵니다.”(김인응 우리은행 압구정현대지점장)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가파르다. 2011년 10월 달러당 1200원을 넘던 환율이 지금은 1000원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낮아졌다.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면서 달러 유입이 늘고 있는 데다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원화 강세 기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쪽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다.

자산관리 시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환율이 떨어지면서 내국인들의 해외 간접상품 투자에 속도가 붙을 수 있어서다. 환율이 추가 하락할 때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외화예금에 뭉칫돈 넣는 자산가들
환율이 달러당 1000원 언저리까지 떨어지자 발 빠른 자산가들은 외화예금에 뭉칫돈을 넣고 있다. 환율이 충분히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추후 환율이 다시 상승하면 환차익을 얻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은행권의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지난 4월 말 기준 584억2000만 달러로 한 달간 14.2%(73억2000만 달러) 늘어났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는 법인이나 6개월 이상 머물고 있는 내·외국인을 의미한다. 국내 은행에 예치된 외화예금이 403억8000만 달러로 한 달 전보다 42억3000만 달러 증가했다. 외국 은행 국내 지점의 외화예금은 180억4000만 달러로 30억9000만 달러 많아졌다.

외화 중에선 미국 달러가 가장 많이 늘었다. 4월 기준 달러예금은 424억7000만 달러로 한 달간 47억8000만 달러(12.7%)가 불었다. 외화 거래가 가장 많은 외환은행의 4월 말 기준 달러 잔액은 116억8200만 달러로 전 달보다 8억5400만 달러 확대됐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충분히 떨어졌다고 보고 저가 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이 많은 것 같다”며 “달러를 매수하겠다는 주문 전화가 평소보다 2~3배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외화 매수가 가장 활발한 곳은 시중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다. 유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 사람과 해외여행이 잦은 사람뿐만 아니라 순수한 투자 목적으로 외화를 사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신한은행 PB센터 관계자는 “외화에 투자한 뒤 환차익이 아무리 많이 생기더라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며 “환율이 주기적으로 변동하는 만큼 환율이 많이 낮아진 지금을 투자 적기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자산가들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은행권에 달러를 예치하고 있다. 수출업체는 환율이 단기간 급격히 떨어진 만큼 긴급 자금을 제외하고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예금에 묶어 놓는 경우가 많다. 환차손을 우려해서다. 일부 수입업체도 결제 자금으로 쓸 목적으로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 정진우 한국은행 국제국 과장은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자 환전을 미룬 채 달러예금을 늘리는 기업이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런 물량이 외환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지면 환율의 추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는 달러 대신 중국 위안화예금을 선호하고 있다.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트렌드다. 국내 위안화예금 잔액은 3월 말 78억9000만 달러에서 4월 말 99억1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위안화예금은 기본 약정 금리에다 원·위안 선도환 거래 과정에서 추가 수익을 확보해 연 3~4%대 이익을 내는 방식이다.


달러형 ETF·DLB 등 간접 상품도 유망
변화는 되돌아보면 항상 기회였다는 게 시장이 주는 교훈이다. 환율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 일부 투자자에겐 수익을 낼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 변동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나 파생결합사채(DLB)다. 추후 원·달러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ETF를 통해 원화 강세 쪽에 베팅할 수 있다. ‘인버스(inverse)’ 방식의 달러선물 ETF를 활용하는 식이다. 인버스는 ‘거꾸로’란 뜻으로 지수가 반대로 움직일 때 같은 폭만큼 수익을 내는 구조다. 국내 증시에는 우리자산운용의 ‘코세프 미국 달러선물 인버스 ETF’가 상장돼 있다. 일반 주식과 달리 오로지 환율 변동에 의해서만 주가가 등락한다. 달러 약세가 심화하면 이 ETF 주가가 상승하는 식이다. 미국 달러선물 지수는 2007년 1월 2일을 1000(기준점)으로 보고, 달러선물 가격의 등락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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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면 이와 반대되는 구조의 ETF에 투자하면 된다. ‘미국 달러선물 ETF’다. 다만 달러선물 ETF의 경우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금액만큼 매도하지 못할 수도 있다. ETF는 달러 선물이나 코스피200처럼 특정 지수의 움직임을 추종하는 지수연계형 펀드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일반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수수료 등 거래 비용이 매우 저렴한 게 특징이다.

원·달러 환율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사채(DLB)에도 투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론 원금보장형이다. 환율이 일정 수준 이내에서만 움직이면 1년짜리 예금 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일부 환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은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다. 연 3%대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구조다.

국내 증권사들은 위안화예금을 기초로 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특정금전신탁 상품에 편입해 판매하고 있다. 만기는 3~9개월이며, 연 3.2~3.4% 정도의 수익을 지급한다. 최소 가입액이 1인당 10억 원 수준으로 높은 게 단점이다. 달러 등 통화선물거래를 통해 환율 변동에 직접 투자할 수도 있다. 통화선물거래는 특정 통화를 미래 시점에 약정한 가격으로 매매하는 방식이다. 개인투자자라면 외환(FX) 마진거래를 통해 달러 등 외국 통화를 직접 사고팔 수도 있다. 외환 마진거래는 일종의 장외 소매 외환거래 시스템이다. 증권사나 선물사에 증거금을 맡기고 계좌를 트면 된다. 인터넷으로 24시간 거래할 수 있다. 원화와 달러화 등 두 나라 통화를 동시에 교환하는 방식이다. 다만 환율 예측을 잘못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만큼 유의해야 한다.

환율이 단기간 급하게 떨어질 때 수혜를 볼 수 있는 주식에 직접투자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원화 강세 시대엔 수출주보다는 수입주나 내수 관련 종목이 유리하다. 대표적인 종목은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철강주와 금속주, 음식료주, 항공주, 전기가스주 등이다. ‘환율 하락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원화 표시 수입 단가가 낮아지고 생산비용이 감소하면서 채산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철강금속과 전기가스, 음식료주는 원·달러 환율이 주요 지지선을 하향 돌파했을 때마다 실적이 두드러지게 개선됐던 업종”이라며 “과거 주가 추이를 분석해 보면 철강 업종이 경기민감주 내에서 이익 개선 흐름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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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환율 하락이 수출주엔 부정적이다. 자동차와 반도체 종목이 대표적이다. 결제 화폐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없거나 해외 공장이 없는 중소 수출업체엔 더욱 치명적이다. 김성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보기술(IT)주나 자동차주는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환율 하락이 곧바로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 생산기지가 잘 구축된 기업들은 환위험을 적절히 통제하고 있어 원화 강세가 수출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HMC투자증권이 최근 분석한 자료도 참고할 만하다. 이 회사는 달러당 평균 1062원이던 환율이 평균 1036원으로 떨어질 때 기존 추정치 대비 올해 순이익이 어떻게 바뀔지 추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운송(23%), 철강(5.7%), 상사(4.7%), 유통(2.2%), 유틸리티(1.5%), 통신(0.5%) 등의 순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디스플레이(-8.1%), 자동차·부품(-4.2%), 반도체(-2.7%), 음식료(-0.8%), 정유·화학(-0.3%) 등의 순이익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김정호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외화 부채가 많은 항공과 상사, 유통 업종에선 영업이익보다 순이익 증가 폭이 훨씬 클 것으로 계산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 증시에선 환율보다 ‘실적(펀더멘털)'이 주가 향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환율 민감도가 그만큼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종목이 SK하이닉스다. 대형 수출주인 SK하이닉스는 완화 강세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지만, 환율 하락이 계속되던 5월 중순에도 연일 신고가 기록을 썼다. 특히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이 종목을 사들였다. 반면 대표적인 내수주인 여행주나 유통주는 맥을 못 췄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수출이 꾸준히 늘면서 원화 가치가 상승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환율 하락 속도가 지나치지만 않다면 수출 물량이 채산성 악화의 충격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환 전문가들 사이에선 향후 원·달러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섣불리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원화 강세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란 점에 대해선 공감하는 분위기다. “해외에 자녀를 두고 있어 정기적으로 달러를 송금해야 한다면, 달러를 조금씩 나눠 매입하거나 송금을 가급적 뒤로 미루라”는 조언이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꺼번에 환전하지 말고 현지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게 유리하다. 해외에서 카드로 결제하면 청구대금이 확정될 때까지 보통 한 달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결제 시점을 뒤로 미루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공격적인 투자자가 아니라면 해외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 ‘환헤지형’을 고르는 게 낫다. 환헤지는 환율 변화에 따른 손실 위험을 낮추기 위해 파생상품 거래로 환율을 일정 시점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다만 일부 헤지 비용은 내야 한다. 환율 하락으로 해외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세금을 꼭 감안해야 한다. 국내 주식에 투자할 때와 달리 비과세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선 22%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개인투자자는 매년 5월 자진신고를 통해 이 세금을 납부해야 ‘불성실 가산세’란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해외 주식형·채권형 펀드에 가입한 사람은 양도세보다는 낮은 배당소득세 15.4%를 내면 된다. 이 세금은 원천징수 되는 만큼 최종 수익률에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간접투자 상품에 돈을 넣는 게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라면 조금 다르게 계산해야 한다.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할 때 붙는 양도세에 대해선 분리과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면 최고 38%에 달하는 종합과세율을 피할 수 있다. ‘환테크’를 잘 하려면 세테크도 잘 알아야 한다.


조재길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