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양성·상품 개발 능력 키워라

최근 저금리, 내수 불황, 증시 부진, 규제 비용 증가 등으로 국내 금융회사의 경영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은행은 저금리에 따른 순이자 마진 악화, 내수 불황에 따른 대출 증가율 둔화 등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보험사도 저금리에 따른 역마진 현상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증권사의 경우 증시 부진과 수수료율 경쟁에 따른 위탁매매 수수료 수입 감소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스위스·싱가포르 PB 시장을 가다] 갈 길 먼 한국 PB의 현실
현재 국내 금융회사들은 구조조정 노력과 별개로 신규 수익원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프라이빗뱅킹(PB)이다. 이는 국내 경제의 성장률 둔화에도 우리나라의 거액자산가(금융순자산 10억 원 이상 보유자) 수와 그들이 보유한 자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6만5000명에 불과했던 한국의 거액자산가 수는 2009년 10만8000명, 2012년 16만3000명으로 최근 급증했다. 그들이 보유한 금융 자산 합계도 2007년 182조 원에서 2012년 366조 원으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했다.


10억 이상 자산가 수 16만여 명
PB 부문의 육성은 금융상품의 판매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안정적인 고수익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됐으나 국내 금융회사의 PB 부문은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의 수익률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우선 경쟁 환경 측면에서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이 PB부문의 수익률 제고가 아닌 거액자산가 고객의 유치에 사활을 걸면서 양적인 성장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고객 유인을 위한 경쟁적 무료 서비스 제공 및 인테리어 투자, 예금 유치를 위한 경쟁적 고금리 제시, 금융상품 판매를 위한 경쟁적 수수료 인하, PB 인력 충원을 위한 영입 경쟁 등으로 인해 선진국 PB에 비해 비용 대비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아직 무형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식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프라이빗뱅커(PB)들은 투자 자문, 세무 상담, 상속·증여 컨설팅 등에 대해 수수료를 수취하지 못하고 있어 수익 기반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 제공을 위한 비용 부담이 매우 큰 게 현실이다.

셋째, 국내 금융회사가 PB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성이 부족한 점도 PB 관련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다. 가령 상품 개발 역량이 부족해 중개에 그치기 때문에 수수료 수취 기반이 취약하며, 투자 자문이나 상담 역량 부족으로 인해 수수료를 수취할 실력이 아직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 외에도 감독당국에서 PB 인력을 3년마다 순환근무 하도록 조치하면서 PB들의 전문성 배양에 한계가 있으며, 자회사 간 엄격한 방화벽(firewall) 규정으로 인해 금융지주회사로서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이렇듯 열악한 금융 환경 속에서 국내 PB들이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효율성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가령 PB부문의 비용 수익률 제고를 위해 골프 서비스, 문화 서비스 등 금융 서비스 제공과 무관한 비용을 대폭 축소하고 수익률이 낮은 PB 점포들을 통폐합하는 것이다.

나아가 PB부문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금융회사는 매각 등의 방식으로 PB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방안도 있다. 최근 PB부문에서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UBS와 BoA메릴린치는 해외의 PB 사업부를 줄이고 있으며, 모건스탠리도 유럽, 중동, 아프리카의 웰스매니지먼트(WM) 사업 일부를 처분한 사례가 있다.


감독당국의 역할 변화도 중요
그러나 PB부문에서의 경쟁력 제고가 정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금융회사에는 영업 전략의 수정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지금처럼 전문성 높은 PB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신규 고객 유치가 아닌 기존 고객의 지갑 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고객의 수가 증가할수록 PB가 담당해야 할 고객의 수가 증가하면서 서비스의 질이 훼손되며,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해 영업을 다니는 동안 기존 고객의 불만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각 금융회사가 신규 고객 유치에 집중할 경우에는 이자마진과 수수료율 등이 떨어지면서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PB들이 신규 고객 유치에 집중하는 이유는 성과 관리 체계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에 기인한 측면이 많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KPI의 수정을 통해 직원들의 유인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둘째, PB부문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품 개발 역량을 키워야 한다. 고객들과의 관계를 통해 파악한 고객의 금융 수요를 상품개발부서에 바로바로 전달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며, 이러한 금융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금융상품의 개발 역량이 육성돼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PB 상품의 개발보다 PB 상품의 판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중개보다 개발을 통한 마진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객의 입장에서 단순히 중개만 하는 PB는 큰 매력이 없기 때문에 고객 이탈을 줄이기 위해서도 전용 상품의 개발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거액자산가들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한데, 이들에게 예금과 같이 마진이 적은 상품만 권유하기보다는 중위험·중수익의 투자 상품도 다수 개발해 판매해야 고객과 금융회사의 수익률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셋째, 은행 PB의 경우 대출 영업도 강화해야 한다. 최근 UBS, 크레디트스위스(CS) 등은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거액자산가를 상대로 하는 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대출의 경우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출을 취급할 경우 고객의 자산과 부채 현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새로운 금융 수요를 발굴할 수도 있게 된다.

한편 국내 PB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감독당국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PB의 경우 전문성과 함께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가 매우 중요하므로 일반 부서와는 달리 순환근무제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비금융 서비스의 경쟁적 제공에 대해서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은 물론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도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PB는 아직 크게 발달하지 못했으나 향후 발전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거액자산가의 수와 그 재산이 급격히 증가하는 가운데 PB 관련 전문가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PB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감독당국과 금융회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며, 무형의 서비스에 대가를 지급하는 것에 대한 고객들의 인식도 전환돼야 할 것이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