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슬프도록 찬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그림 한 점이 끼치는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존재감 충만한 작가의 이름 앞에 발길이 멈춰 서는 경우가 있다면, 누구의 것인지 몰라도 작품이 주는 그 기운에 끌려 눈을 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그 강렬함이란 개개인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르겠지만,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행복한 감성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터. 지겹도록 들었겠지만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는 수식어만큼 그를 잘 표현할 길이 없으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수동 작가의 행복론을 다시 새겨들을 시간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고 며칠 후, 이수동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골목길의 갤러리를 찾았다. 화사한 색감과 따사로운 분위기, 심각하진 않지만 일상 속 사유를 권하며 보는 이에게 작은 울림을 전하는 그의 그림들은 분명 그 자체로 행복한 기운이 넘쳐났지만, 모두가 슬픔에 갇혀 버린 그때 이 작가의 그림은 ‘토닥토닥’ 위로의 언어로 다가왔다. 이토록 행복한 그림 앞에서 한바탕 폭풍 같은 슬픔이 지나간 후 찾아온 고요와 평정은 어쩌면 치료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애도의 마음을 담은 노란 리본, ‘미안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애도의 마음을 담은 노란 리본, ‘미안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궁극의 메시지는 바로 ‘사랑’이다. 기쁨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때론 슬픔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결국엔 모든 것을 감싸안아 주는 위대한 사랑. 사랑을 경험해 봤던 이들, 꿈꾸어 봤던 이들, 혹은 현재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과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들, 비단 연인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부부와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혹은 연민까지를 담아내며, 그렇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가 결코 뻔하지 않은 건 표현 방식 때문이다. 화폭 가득 풍경이 펼쳐진 가운데, 그 안에서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심지어 표정조차 디테일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되고 공감되는 감성이라니. 사랑을 말하되 직접적이지 않고, 문학적으로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그의 방식은 그래서 더 설레고 웃음이 나고 아련하고 절박하다. 그리 복잡할 것 없는, 이 간단한 화폭 안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얘기와 상상이 펼쳐지다니, 사랑에 관한 그의 내공은 도대체 어디까지인 걸까.


격렬한 고백보다 속삭이는 사랑의 강렬함
50대 중반인 이 작가는 그림이 주는 느낌 그대로 따뜻함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내 기분이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그는 분명 사랑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행복’, ‘힐링’ 등과 함께 따라다니는 또 다른 수식어인 ‘솔드 아웃 작가’답게 2년 만에 열린 이번 전시 또한 초반 며칠에 걸쳐 신작이 대부분 팔려 나가며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가 파급되는 중이었다.


이번 전시엔 신작이 30여 점이나 걸렸는데요, 작업량이 만만치 않았겠습니다.
“지난 2년간 즐겁거나 그림 그리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요.(웃음) 사람이 ‘노는 대로 생겨진다’고 사람들이 하도 ‘행복’이니 ‘힐링’이니 하니까 제가 그 말에 동화가 돼요. 좀 더 즐거운 말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이 또 손으로 옮겨 가 작품으로 나오는 거죠.”


그 수식어들이 외려 강박처럼 혹 부담되진 않나요.
“사실 전에는 그런 시선 때문에 행복하려고 꾹 참다가 폭발한 적도 있어요. 남들과 생각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체질도 변하는 건지, 경지에 이른 건지 지금은 그렇게 특별히 불행할 일이 없어요.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가 아니라 ‘행복하거나 가만히 있거나’가 제 삶이 돌아가는 방식이 됐죠.”


이 작가님 작품은 동화 같은 데가 있어요. 보기에 따라 관객 반응이 엇갈릴 것도 같아요.
“그림이란 일종의 감정 전달 방식인데 웅변처럼 하는 방법이 있다면 속삭이는 것으로 상대를 움직이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늘 하는 말이, 예술을 어떤 틀에 가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빨간 걸 보면 파란 걸 찾고, 파란 걸 보면 빨간 걸 이야기하곤 해요. 특히 평론가들은 습관적으로 그런 경우가 있죠. ‘좀머씨 이야기’로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중 ‘깊이에의 강요’란 게 있는데, 거기 그런 내용이 나와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한 마디 툭 하는 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화가도 이런 화가, 저런 화가가 있고, 보는 이들이 선택해서 보면 되는 거예요. ‘나는 이런 화가다. 그러니 고뇌를 찾으려면 다른 작가에게 가서 찾아라.’ 이게 제 입장이죠.”
‘구름 편지 100통’, 53.0×40.9㎝, acrylic on canvas, 2013년
‘구름 편지 100통’, 53.0×40.9㎝, acrylic on canvas, 2013년
특별히 행복이나 사랑의 감정에 주력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랑, 행복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 없지 않나요.(웃음) 제가 추구하는 그림이란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에요. 개인사를 살짝 담으면,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리고 가족에 대한 느낌이 남다르다 보니 특히 가족이나 집에 대해 행복하게 그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제 그림을 컬렉션하는 분들을 보면 보관용이 아니라 직접 걸어 두고 보려고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는 제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돼 있고 어쩌다 한 번씩 가서 보는 고귀한 그림이 되기보다 친근하게 늘 고개만 돌리면 옆에 있는 그림이면 좋겠어요. 저는 그림을 딸이라고 표현하는데, 딸이 시집가서 그 집안을 따뜻하고 화목하게 만든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림은 나를 위해 그리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는 거니까요.”


단순히 감상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도 은근히 강렬한데요. 사유의 세계가 대단히 깊은 것 같아요.
“활자 읽는 걸 좋아해요. 특히 시집을 엄청 많이 읽죠. 시인 친구들도 많고요. 시에서 자극을 받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제가 이미 경험했던 것들을 녹여 내는 거예요. 류시화 시인의 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처럼 내가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게 그림 안에 담겨 있는 겁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 그리고 사랑에 관한 것 말입니다. 우리들 누구나 젊은 시절 아파도 보고 사랑도 해 봤잖아요. 저는 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청춘들이 보면 자신들의 이야기인 거죠. 가끔 사람들이 물어요. 어떻게 젊은이들의 감성을 그렇게 잘 아느냐고. 이미 다 해 본 건데 말이죠.(웃음)”
‘그대는 꽃, 나는 나무’, 89.3×130.3㎝, acrylic on canvas, 2014년
‘그대는 꽃, 나는 나무’, 89.3×130.3㎝, acrylic on canvas, 2014년
‘가을동화’ 그 후 14년, ‘솔드 아웃’ 작가로 산다는 건
이 작가에게 그림은 그야말로 평생에 걸친 ‘일’이자 ‘삶’이고 때론 ‘분출’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닐 정도로 일찌감치 출중한 실력을 드러냈던 그는 그림에 관한 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초기엔 어떤 그림이었나요.
“지금과는 굉장히 달랐죠. 그 시절 그림을 보면 지금의 저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요. 강하고 무겁고 시커먼 그림을 그려 놓고 사람들이 몰라주면 ‘이런 무식한 놈’ 했던 시절이에요.(웃음)”
‘잘 자란 꿈나무’, 53.0×40.9㎝, acrylic on canvas, 2014년
‘잘 자란 꿈나무’, 53.0×40.9㎝, acrylic on canvas, 2014년
그런데 어떻게 해서 확 반전이 된 건가요.
“당시에 친구들이 괜찮게 사는 편이라 그림을 많이 사 주곤 했어요. 그중 한 친구가 집에 제 그림을 걸어 뒀는데, 아이가 제 그림을 보고 무섭다고 울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저 같아도 집에 걸어 두고 싶지 않겠더라고요. 아이들 마음이 가장 순수한 건데 그 아이들을 울리는 그림이라면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작정하고 화풍을 바꾸는 작업을 했죠. 지금은 오히려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게 참 고마워요. 그 덕분에 성량은 강하되 속삭이는 법을 알게 됐으니까요.”
[ARTIST] 행복을 그리는 화가, 이수동
결코 쉽진 않았을 텐데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걸 스님이 도 닦는 심정으로 참고 또 참았죠. 공격적인 성향을 제거하는 동시에 사람을 줄이고 줄이는 과정을 겪다 보니 한 2년은 이상한 그림이던 시절도 있었어요. 결국 2~3년 걸려 또 다른 내 그림의 방식을 찾아내고 전시를 했더니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배경이 커지고 사람이 작아진 건 의도적인 변화였군요.
“자연의 스케일이 커지고 그 안에서의 이야기들이 많아졌는데, 인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내 그림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시작을 인물로 해서 그런 거겠죠. 금강에 물고기 없으면 죽은 강인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그저 풍경으로만 끝났더라면 스틸이었을 텐데, 사람이 들어감으로 해서 하나의 이야기, 스토리로 완성이 되는 거죠. 제 작품 속 사람은 무대 위 배우예요. 배우이긴 배우인데, 일단 스타를 세워 놓고 스토리나 배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스토리에 맞는 배우를 세우는 식이죠.”
[ARTIST] 행복을 그리는 화가, 이수동
스타 이야길 하시니 자연스레 ‘가을동화’의 배우 송승헌이 생각나는데요. 당시 TV 드라마 속에서 송승헌이 그리던 그림이 이 작가님 작품이었죠.
“벌써 14년 전인데, 당시 제가 드라마 제목 손 글씨나 스틸 작업 등을 해 주고 있었어요. 그땐 방송국이 ‘슈퍼 갑’이라 지방에 있는 제가 서울까지 먼 길을 오르내리며 무료로 해 주고 있었을 때죠. 그러던 어느 날, 급히 올라오란 연락을 받고 가보니 ‘가을동화’ 글씨와 드라마 속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더군요. 드라마가 뜨면서 제 작품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는데, 그땐 그걸 이용할 줄도 몰랐어요. 드라마 판권이 팔리고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홍콩에서 전시를 하자는 제의도 많았는데 ‘화가는 저런 데 편승하면 안 돼’ 하면서 다 거절했어요. 지금 같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웃음)”


그 이후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솔드 아웃’ 작가가 되셨잖아요.
“그것도 참 무서운 일이에요. 그림 자체가 제게도 행복이 돼야 한다는 생각인데 그게 짐이 되면 안 되잖아요. 사실 수입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림 에세이도 있고 컬래버레이션 작업하는 것도 있어서 전적으로 그림 판매에만 의존하는 시절도 아니거든요.”


행복한 고민이시네요.(웃음)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화풍은 쭉 유지되는 건가요.
“1990년대 초반 의도적인 변화 이후 한 번도 노력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10년 전 그림을 보면 지금과는 분명 다르죠.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제가 달라지고 있고 세월이 하루하루 더해지고 있으니 달라지는 게 당연한 거죠. 어떨 땐 참 신기해요. 저는 늘 똑같이 그리는데 어떻게 그리 다를까 하고 말이죠. 20년 전 사진을 보면 촌스러운 것과 같은 거 아닐까요. 나중에 제가 어떤 옷을 입게 될지 저도 궁금하긴 한데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맡겨둘 뿐이에요. 10년 뒤 오늘의 이 작품들을 봤을 땐 또 다른 느낌이겠죠.”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것 하나 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즐겁거나, 그림 그리거나’ 그때도 여전히 그러리란 사실 말이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