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자신을 발견했던 곳이 바로 발리 내륙에 위치한 ‘우붓(Ubud)’이다. 지금이야 여행자들에게 발리 여행에선 으레 들러야 하는 관광지가 돼 버렸지만 아직까지는 발리의 토속적인 정취와 울창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발리의 삶과 예술을 만나다
우붓은 예술과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16세기 힌두교 왕족과 함께 예술인들이 발리로 건너왔을 때 이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 우붓이었다. 그리고 19세기 독일 화가 월터 슐츠 등 유럽인들이 모여들면서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
우붓 거리를 걷다 보면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500여 m 정도 거리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줄지어 서 있다. 이름난 미술관도 예닐곱 곳 있고 모퉁이마다 작은 갤러리들도 자리하고 있다. 조금만 걷다 보면 우붓을 왜 ‘발리의 몽마르트르’라고 부르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들 갤러리들은 저마다 독특한 그림을 내걸고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세심히 둘러보면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 현지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외국 예술가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물론 한국인도 있다. 작은 공방과 화방도 많다. 나무 조각품, 가구를 만드는 공방,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림을 걸어놓은 화랑 등이 늘어서 있다. 정교한 목각과 세공품으로 가득한 상점들의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인사동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몰려들면서 분위기가 다소 소란스러워졌지만 조용한 뒷골목 등은 여전히 다정하고 매력적이다.
우붓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은 네카 미술관이다. 우붓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이다. 회화 수집가인 네카가 설립했다. 발리의 화가, 인도네시아의 화가, 발리에서 활동한 외국인 화가들의 그림들이 시기별로 7개의 전시관에 걸려 있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회화와 발리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흑백사진도 전시돼 있다. 네카 미술관 외에도 스페인 출신의 화가가 만든 블랑코 미술관, 우붓에서 ‘서양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아궁 라이나가 지은 아르마 미술관 등도 돌아볼 만하다.
화랑과 공방을 지나다 보면 걸음은 자연스레 재래시장에 닿는다. 코코아나무로 만든 식기며 대나무로 짠 가방, 울긋불긋한 열대과일 등이 발목을 붙잡는다. 가격도 착하다. 여느 관광지의 시장이 그렇듯 부르는 게 값이지만 두 눈 딱 감고 흥정에 돌입하면 4분의 1 정도의 가격에도 물건을 살 수 있다. 걷다 지치면 2층짜리 카페에 자리를 잡고 발리산 커피와 함께 거리의 풍취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다. 중심가에 자리한 사라 스와티 사원은 사원 앞의 연못이 아름다운 사원이다. 사원에 있는 탑 상층부에 불교를 상징하는 만(卍)자가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원 옆에는 스타벅스와 ‘카페 로터스’라는 카페가 있어 다리를 쉬기 좋다. 발리의 신을 만나다
발리는 ‘신들의 섬’으로 불린다. 자그마치 2만여 개의 힌두사원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원래 인도네시아는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발리에서만은 유일하게 힌두교를 신봉하고 있다.
발리를 걷다 보면 발길 닿는 곳마다 신을 만난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하게 생긴 바롱신도 있고, 독수리처럼 생긴 가루다신 조형물도 볼 수 있다. 어떤 조형물은 성인 키의 몇 배는 될 만큼 커다랗고 어떤 조형물은 아기 주먹보다도 작다.
인도네시아가 이슬람화한 것은 15세기다. 동부 자바 지역의 힌두왕조인 마자파힛 왕조가 몰락하면서 힌두교를 믿던 왕족과 승려, 예술가들이 발리로 피신했다. 힌두 이주민이 발리 섬의 정치, 경제, 종교의 주도권을 잡고 힌두교를 전파했는데 지금은 93%에 달하는 인구가 힌두교를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자바 섬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발리 거리를 걷다 보면 집이나 가게 앞, 사당 등에 야자수와 과일, 꽃으로 치장한 바구니가 놓인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짜낭’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짜낭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발리인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수많은 사원들 가운데 꼭 가봐야 할 사원이 발리 시내에서 우붓으로 가는 길, 바투안 마을에 자리한 ‘푸세’라는 힌두사원이다. 1022년에 건립됐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허리에 둘러 입는 옷인 ‘사롱’을 입어야 한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기부함에 약간의 돈을 넣으면 된다. 사원 입구에는 두 개의 석문 기둥이 칼로 자른 듯 우람하게 서 있다. 좌우로 뾰족하게 대칭인데 ‘찬디 븐타르’라고 부른다. 찬디 븐타르의 오른쪽은 삶과 광명, 왼쪽은 죽음과 어둠을 상징한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좌우가 반대가 되므로 선과 악이 바뀐다. 이는 선과 악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힌두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원 안엔 조각이 화려한 석탑 파두락사, 수미산을 표현한 메루 등 볼거리가 많다. 조각이 문외한인 여행자들에게도 아름답다.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정교한 조각 솜씨에 탄성이 나온다. 아름다운 해변은 발리를 찾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은 쿠타다. 남부 발리의 최대 번화가로 꼽히는 이곳에는 초승달 모양의 해변을 따라서 각종 편의시설이 모여 있어 늘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사실 쿠타는 바닷물이 투명하고 깨끗한 곳은 아니다. 타히티나 오키나와의 투명한 바닷물을 상상했다가는 이내 실망한다. 그렇다고 순백의 모래가 끝없이 펼쳐지는 절경의 해안도 아니다. 그런 해안을 꿈꿨다면 오히려 필리핀 보라카이가 더 낫다.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이 해변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거침없이 몰아치는 파도 때문이다. 호주와 유럽 출신의 서퍼들이 쿠타의 파도에 반해서 하나 둘 몰려들었고 마침내 쿠타는 세계 최고의 서핑 포인트가 됐다. 쿠타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친 파도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한적한 해변을 원한다면 누사두아 비치가 좋다. 고급 리조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방해받지 않고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짐바란 비치 역시 아름다운 일몰을 배경으로 로맨틱 시푸드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발리에서 보낸 며칠 동안 사누르(Sanur) 비치에 자리한 리조트에 머물렀다. 사누르 비치는 발리 남부에 자리한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으로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다. 리조트에서 나와 100m만 가면 만나는 해변에서 하루 종일 뒹굴며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해변을 걸었고 책을 읽었고 차가운 맥주를 마셨고 현지인들과 미소를 담은 눈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며칠이 갔다. 서울에서의 번잡한 일상은 깨끗이 잊은 시간이었다. 햇볕에 데워진 해변을 맨발로 걸으며, 서울로 돌아가 어느 날 문득 ‘나는 도대체 누구지’, ‘난 왜 이렇게 살고 있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면 글쎄, 당장 막아야 할 카드 값 따위는 만들어 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Plus Info.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이 인천~발리 직항노선을 매일 1편씩 주 7회 왕복 운항한다. 이민국 직원들이 항공기에 탑승해 기내에서 입국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착륙과 하선 전에 입국 심사를 완료할 수 있다. 비행기 탑승 전 ‘도착 비자 서비스’ 카운터에서 미화 25달러를 내고 미리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www.garuda-indonesia.co.kr).
발리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인도네시아의 화폐는 루피아(Rupiah·IDR)다. 1만 루피아는 약 897원이다. ‘리젠트 발리’는 2014년 3월 개장한, 발리 동부 해안 사누르 지역에 있는 6성급 럭셔리 호텔이다. 신혼부부를 위한 풀빌라 등 120개의 객실만을 운영한다. 수영장과 스파 시설을 갖추고 있다. 두 개의 레스토랑에서는 바닷가재와 굴 등 그릴 요리, 육류, 전통 인도네시아 및 아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요리사가 직접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조리를 시현하고 투숙객이 직접 만들어 보는 ‘쿠킹 클래스’도 진행한다. 1일 기준 디럭스 스위트룸은 약 29만 원부터, 풀빌라는 약 56만 원부터다.
http://www.regenthotels.com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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