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4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자산가들의 마음 읽기’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자산가들의 주치의로 통한다. 굴지의 기업 ‘회장님’들은 모두 그에게 정신 상담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포럼에서 ‘자산가들의 마음읽기’ 강연자로 나선 윤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자산가들과 에너지를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에 에너지가 충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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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정신과 의사가 됐다. 개인적으로 사람의 기본 욕구를 세 가지로 요약해 보면 사랑, 자유, 힘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을 부부에게 물어보면 아내는 사랑, 남편은 자유라고 대답해 부부싸움이 나기도 한다. 나는 자유, 사랑, 힘 순이 아닌가 싶다.

프라이빗(private)의 어원은 ‘박탈당하다’이다. 돈을? 아니다. 과거 봉건시대 영주가 자유를 뺏는다는 것이다. 그냥 놀고 쉰다는 뜻 아닐까 생각했던 바캉스의 라틴어 어원은 ‘자유를 찾는다’라고 한다.

자유의 아이러니가 있다. 자유와 힘은 사랑할 때 나온다. 누군가 나에게 자본주의를 정의하라고 하면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 하지만 표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 환자가 찾아왔다. 불면증을 치료해 드렸더니 “내 진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사랑하고 싶다”고 한다. 75세. 자산가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외로움 때문이다. 이렇게 돈을 많이 벌어놨는데 너무 외롭다는 것이다. 사랑하고 싶다는 말의 다른 말은 외로움이다. 노년의 변화가 소유와 합쳐지면 외로움을 더 느끼게 돼 있다.

자산가들과 사랑하고 싶은가? 공감하고 싶은가? 공감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내 에너지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외로움을 채워 주는 사람에겐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 마음에 충분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만났던 대부분들의 자산가들은 억만금이 있을지언정 모두 외로워했다.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처럼 나날이 고성능화돼 가고 있지만 그만큼 심한 소진에 시달린다. 이를 ‘번아웃 신드롬’ 즉 소진증후군이라고 한다. 의욕이 없어지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자꾸 깜빡깜빡 하는 건망증이 주요 증상이다. 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벗어나려는 심리적 회피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 조용한 곳으로 간다고 해도 힐링은 되지 않고 머리만 복잡해질 때 사람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니까. 이걸 회피하려고만 하면 더 괴로워진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스트레스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뇌의 연민 시스템을 작동토록 해야 한다. 요즘 미국 실리콘밸리의 최고경영자(CEO)들도 최근엔 이 컴패션(compassion) 활성화를 위해 주말에 도를 닦는다고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 이게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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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맥’으로는 어려운 스트레스 관리…“하루 10분 산책으로 소진증후군 해소했죠”
여기 있는 분들에게 여쭈어 보겠다. 올봄을 제대로 즐겨 본 적이 있는가. (PB들 몇 명만이 손을 들어 올리자) 올봄은 작년보다 더 좋았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즐겼던 기억이 없다면 내 몸의 연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나 역시 몇 년 전 심한 번아웃증후군에 걸린 적이 있다. ‘환자들은 왜 나를 찾아와 힘들다는 소리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니까 당연한 건데.(웃음) 너무 답답해 ‘소맥(소주+맥주)’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해결이 안 되는 거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하루 10분 사색을 했다. 차를 타고 가는데 가을 하늘과 나뭇잎이 너무 예쁘더라. 차를 멈추니 햇살이 나를 향해 비추는 거다. 세상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면서 충전이 됐다. 그리곤 내 삶이 마법처럼 변했다.

뇌 과학에 따르면 우리 뇌는 하나의 팀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업무를 할 때 주로 활용하는 신경망이 조정 신경망, 즉 ‘컨트롤 네트워크(control network)’다. 조정 신경망에 대칭되는 신경망으로 디폴트 신경망(default network)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기본 신경망,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기본적으로 활성화되는 ‘태스크 네거티브 네트워크(task-negative network)’다. 소위 ‘멍’ 때릴 때 작동하는 뇌 안의 신경망이라 할 수 있다. 이 한심해 보이는 멍 때릴 때 작동하는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될 때 창조적 아이디어 창출이 잘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회의 시간에 골몰할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잠시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 이를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된 결과로 본다.

연민 시스템을 활성화시키는 세 가지가 사랑, 자연, 그리고 문화다. 내 마음을 잘 연민하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대도 넓어지고 크리에이티브한 삶까지 거머쥘 수 있다.

사람이 힘든 이유는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자연을 제대로 즐길 줄 알면 ‘인생이란 게 원래 이런 이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 너그러워진다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하늘, 날씨, 사람에 집중하며 산책한다. ‘저 사람 얼굴이 보인다’, ‘날씨가 따뜻해졌네’ 이렇게 한가한 자극을 주며 걷다 보면 뇌가 이완되고 새로운 에너지로 온 몸이 채워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