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재산관리의 개념

세계적인 부자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스위스은행이 자신들의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베이에 따르면 첫째가 부의 보존이다. 부자들은 부를 늘리는 것보다는 이제까지 쌓은 부를 지키는 데 더 관심이 많다. 둘째는 자녀들의 미래다. 그들은 행여 돈 때문에 자녀들이 나빠지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리고 셋째는 부의 성공적인 세대 이전이다. 즉 자신의 세대에 축적된 부를 다음 자녀세대에 잘 물려주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바람은 얼마나 가능한가.
[FAMILY BUSINESS CONSULTING] 부자들의 3대 상속 성공의 법칙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속담이 아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세계 모든 언어권에 같은 의미의 속담이 존재한다. 중국에는 ‘논마지기도 3대를 못 간다’는 속담이 있다. 미국에는 ‘셔츠 바람으로 시작해서 3대 만에 셔츠 바람으로(Shirtsleeves to shirtsleeves in three generations)’라는 속담이 있다. 1세대는 외투조차 못 입을 만큼 가난한 형편에서 시작해 혼신의 노력으로 부를 이루지만 결국 3대에 가면 부를 잃고 다시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독일에는 ‘아버지는 재산을 모으고, 아들은 탕진하고, 손자는 파산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 또한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의미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부가 3대까지 유지되는 비율은 고작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니 이러한 속담들이 단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장수기업 연구의 대가인 제임스 휴즈(James Hug hes Jr.)는 부자가 3대를 못 가는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공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힘든 일만 하면서 검소하게 살았던 첫째 세대가 고생 고생해서 마침내 큰 재산을 모았다. 둘째 세대는 대학을 나와 유행하는 비싼 옷을 입고 도시 아파트에 살면서 시골 부동산에 투자도 해 마침내 상류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나 셋째 세대는 어릴 때부터 사치스럽게 자라서는 일도 거의 하지 않고 돈만 물 쓰듯 하다가 마침내 물려받은 재산을 날려 버리고 만다. 그 결과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이것이 이 속담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3단계 공식이다. 즉 1단계는 재산 형성기이고 2단계는 안정 또는 현상 유지기, 3단계는 탕진기라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3세대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뉴욕 맨해튼에는 다이아몬드 도매상이 밀집한 거리가 있다.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다이아몬드의 절반가량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이 지역에는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전통의상을 입은 유대인들이다. 이곳의 다이아몬드 유통은 유대인들이 거의 다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대부분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함께 유대교 회당에 다니고, 유대인들 간 결혼을 통해 가족관계로 맺어져 서로 가깝고 특히 종교적 결속이 강하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신뢰’다. 다이아몬드가 도매로 거래되려면 딜러들이 구매 전에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가서 품질을 확인한다. 그런데 엄청나게 고가의 다이아몬드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계약서나 보험도 없이 단지 신용으로 오간다. 그들에게는 신용이 보험인 셈이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는 거래가 빠르고 쉽게 일어난다. 만일 신뢰가 없다면 다이아몬드가 오갈 때마다 문서를 작성하거나 보험에 들어야 하므로 시간도 많이 걸리고 거래비용도 늘어난다. 유대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이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신뢰 관계에 있다.


보이지 않는 자본에 투자하라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콜먼(James Colmen)은 신뢰를 자본의 한 형태로 보고 이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했다. 연구에 따르면 신뢰가 높은 사회는 거래가 안정되므로 상업이 발달한다. 또한 신뢰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즉 신뢰는 국가나 사회, 기업, 그리고 가족이나 개인 등 모든 차원에서 자원으로 큰 영향력을 갖는다.

이러한 개념은 부자가 3대를 못 가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산 보존 여부를 평가할 때 금융 자산이나 부동산 같은 경제적 자본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산관리나 상속 플랜에 있어 수익률이나 절세 방법 등에 치중한다. 가족 재산 이외에도 인적 자본이나 사회적 자본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에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제적 자본 가족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 자산, 부동산, 가족기업 등의 물리적 자산이다.

인적 자본(human capital) 가족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스킬, 능력, 꿈, 열정 등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성품이나 가치관, 도덕성, 윤리의식 등도 포함된다. 아무리 지식이나 능력이 월등하더라도 도덕성이나 윤리의식이 낮다면 궁극적으로는 인적 자본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가족 간의 신뢰 및 좋은 관계 등 가족들이 화합하고 서로 협조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지역 사회에 기여해 얻은 평판, 명성 등도 가족의 사회적 자본이다. 이는 쉽게 사고 팔거나 거래할 수 있는 자본과는 구별되며,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 세 가지 자본은 서로 연결돼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재산 관리나 세대 간 재산 이전 문제는 이 세 가지 자본의 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실 금융자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금융자본은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으로부터 창출되기 때문이다. 금융 자산을 형성하고 확대하는 것은 빙산의 수면 밑부분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달렸다. 즉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커질수록 금융자본이 커질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커지지 않아도 가족의 재산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인적·사회적 자본의 확충 없이 가족 재산이 수대에 걸쳐 오랫동안 보존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가족 간에 신뢰가 깨진다면 가족 재산은 파괴되기 마련이다.


가족재산관리의 변화된 개념
미국의 윌리엄 그룹은 1975년에서 2001년 사이 상속을 통해 유산을 보유한 1000가구를 관찰했다. 관찰 결과 전체 가구의 70%인 700가구가 상속에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 실패 요인의 60%는 가족 내의 신뢰와 대화 단절에 기인한다. 25%는 상속인들에게 각자의 책임감을 준비시키는 데 실패했다. 세금이나 법적인 문제 등 다른 원인으로 실패한 경우는 단지 15%에 불과했다. 결국 재산 상속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가족공동체 내의 신뢰와 대화 단절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본은 부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본인 셈이다.

만일 이들 자본이 취약한 상태에서 큰 재산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복권을 타서 일시에 엄청난 부를 얻었음에도 몇 년 만에 돈을 탕진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불행해진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종종 접한다. 왜 그들은 엄청난 부를 얻었음에도 그것을 다 잃고 오히려 더 불행해졌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만일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할 계획이 있는 부모라면 ‘자녀에게 부를 물려주면 행복하게 부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이에 관해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가족재산관리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상속 플랜이나 자산관리라고 하면 부동산이나 금융자본 같은 물리적 자본을 대상으로 투자 수익이나 절세 측면을 강조했지만, 그것만으로 대를 이어 부를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금융 자산이나 부동산과 같은 물리적 자본의 차원을 넘어 자녀들의 교육과 가족 관계 즉, 인적 자본이나 사회적 자본으로 가족 재산의 관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