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권수 하나은행 여의도 골드클럽 PB센터장

그는 좀처럼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늦은 저녁 이뤄진 인터뷰. 63빌딩 밖으로 펼쳐지는 야경을 기다리느라 한참 시간을 보내고서도 부슬비에 실내에서 본격적인 사진촬영이 시작되기까지 한두 시간이 더 지체됐지만, 그는 느긋한 모습으로 오히려 불안해하는 취재진을 다독였다.
현권수(53) 하나은행 여의도 골드클럽 PB센터장을 만나 ‘느긋한 만큼 신중한’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Dinner with PB­­­] 강북 부촌 평창동에서 5년간 와인파티 연 사연
상대와 눈을 맞추고 차분차분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말을 건네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태도는 아마도 고객들에게 배운 것”이라고 겸손하게 답한다. 그는 지난 1월 여의도 골드클럽 PB센터장으로 발령을 받기 전 오랫동안 평창동 골드클럽 센터장을 지낸 바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 부촌’으로 일컬어지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프라이빗뱅커(PB)로 경력을 이어나가는 데도 큰 자산이 됐다는 얘기다.


흔히들 강남은 ‘신흥 부촌’, 평창동과 여의도 같은 강북은 ‘전통 부촌’이라고 말을 합니다. 실제로 고객들의 성향 역시 얼마나 다를지 궁금합니다.
“제가 PB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평창동이지만, 사실 PB로 처음 발령을 받은 곳은 잠실 아시아선수촌입니다. 어쩌다 보니 강남과 강북의 대표적인 부촌들을 두루 거칠 수 있었던 셈이죠. 평창동은 지리적으로도 그 입지적 특색이 강한 곳입니다. 국가행정 중심인 광화문, 쇼핑 중심인 을지로에서 20분 내외 거리에 있으면서도 북한산이라는 명산을 끼고 있잖습니까. 도시 문명의 혜택과 자연환경의 혜택을 동시에, 그것도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입니다. 그래서인지 한 지역에 30, 40년 가까이 살고 계신 분들이 많고, 실제로 몇 대째 부를 물려받은 가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학식이 깊고 예의와 겸손한 태도가 몸에 밴 분들인 건 당연하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아마도 ‘네트워크’가 아닐까 해요. 제가 PB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진짜 자산가들은 ‘그저 돈이 많은’ 이들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갖춘’ 이들이라는 겁니다. 흔히들 ‘부자는 망해도 3대를 간다’고 하잖아요. 그건 단순히 ‘돈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돈 한 푼 없이 쫄딱 망하더라도,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다시 재기를 도모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거죠.”


실제로 현 센터장님은 단순히 자산관리뿐 아니라 고객들과 함께 와인파티 같은 문화행사를 자주 연다고 들었습니다. 이 또한 고객들의 ‘네트워크 관리’를 위한 것인가요.
“사실 그분들은 이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제가 도와드리고 말고 할 게 없지요. 다만 그분들과 ‘돈 냄새 빼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습니다. 평창동 골드클럽에서는 5년 동안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 와인파티를 열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고객들이 시간 날 때 편하게 와서 ‘와인 한 잔’ 마시고 즐기면 그만인 자리입니다. 실제로 이곳을 찾은 고객들에게 그런 얘기를 꺼낸 적도 없고요. 그 덕분에 지금도 가끔 그때 와인파티가 생각난다는 고객들이 적지 않고요. 요즘 여의도 골드클럽에서는 직원들을 붙잡고 커피 공부를 하자며 성가시게 굴고 있습니다.”


5년 동안 와인파티를 열었다면 와인에 대한 조예가 상당히 깊을 것 같아요.
“전문가처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와인을 즐기는 편이긴 합니다. 처음에는 고객들의 입맛에 맞는 비싼 와인을 준비해야 하는 건가 고민했던 게 사실입니다. ‘값싸고 맛있는 와인’을 찾아 정성껏 대접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느낀 게 있다면, 중요한 건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값싼 와인이라고 정성이 부족한 건 아니잖습니까. 가격을 떠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고, 기분 좋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저는 지금도 PB 업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평소에도 고객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인간적인 유대감’을 많이 강조하는 편인 듯합니다. 이런 유대감이 실제로 PB로서 고객들의 자산관리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나요.
“고객들 중에는 저를 ‘대장님’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PB로 일을 하고 있는 덕분에 제가 그분들의 자산관리를 맡고 있지만, 제가 그분들보다 세상물정을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대장’ 역할을 맡는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그분들은 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관련 지식도 훨씬 많습니다. 쉽게 말해 볼게요. 저는 어떤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그 기업의 재무제표를 비롯한 각종 데이터와 그래프를 바탕으로 판단을 하겠죠. 그런데 고객의 경우는 저와는 다릅니다. 앞서 네트워크를 말씀드렸잖아요. 그들의 지인 중 한 분은 어김없이 그 기업의 임원을 지내거나 관계자일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스레 해당 기업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물론 내부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분들이죠. 다만 저는 그분들과 논의를 할 때 투자자의 입장에서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최대한 솔직하게 얘기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비교적 늦게 PB 일을 시작했지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다 고객과의 유대감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단순히 고객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것뿐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예방하는 효과도 큽니다. 간혹 고객들이 평소의 투자 성향에 맞지 않는 상품에 관심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을 도와드릴 수 있으니까요.”


말씀 중에 잠깐 언급하셨지만,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대 중반 처음으로 PB를 시작했습니다. 늦깎이 PB였던 만큼 어려운 점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제가 평소에도 성격이 좀 느긋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PB를 시작한 것 역시 우연히 저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뿐입니다. 어느 날 ‘실제 고객의 자산관리 상담’ 내용이라며 시험지 비슷한 게 책상에 왔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적어 낸 답안은 그야말로 모범답안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주일 만에 PB로 첫 발령이 났으니까요. 자의반 타의반 시작한 PB였지만, 고객들의 자산관리를 도맡다 보니 책임감이 막중했습니다. 보통 PB들은 아침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출근을 하는데, 저는 늘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지점에 도착했어요. 출근길에 경제 전문 방송을 시청하고, 경제신문을 읽고, 미국 주식시장의 그래프를 읽어가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 고객들의 자산에 손실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한시도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늦깎이 PB이기 때문에 하는 고생이라기보다 모든 PB들이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 아닌가 싶어요.”


지금도 아침마다 미국 주식시장을 확인하고 경제 리포트를 찾아가며 연구하시나요.
“물론 예전처럼 시간을 정해 놓고 보거나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번은 그런 적이 있습니다. 2011년 1월 말쯤이었을 거예요. 아침에 분명히 확인하기로는 미국 증시가 오르고 이런저런 지표들이 다 좋았어요. 절대로 우리나라 주가가 떨어지면 안 되는 날이었는데 떨어진 겁니다. 그다음 날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요. 지표가 워낙 좋으니 여기저기서는 투자 움직임이 활발한데, 저는 도저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고객들에게 급하게 전화해서 투자금을 빼길 권유했어요. 얼마 후 바로 주가가 폭락하더군요. 그때부터 제가 고객들에게 강조하는 투자 원칙이 바로 이겁니다. ‘제가 아는 체를 막 하면 그땐 믿고 따라와 주시고, 만약 모르겠다고 말하면 가장 위험한 때’라고요.”


아까 말씀하셨던 내용 중에 처음 PB로 발탁됐을 때 고객의 상담 요청에 ‘모범답안’을 적어 내셨다고 했잖아요. 그 내용이 궁금한데요.
“그때 상담 내용은 나이 40대 중반에 월수입 300만 원 정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이나 모아 놓은 자산은 없는데 보험은 하나 들어 있고….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고령화나 은퇴 설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잘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 답변 중에 고령화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었어요. 요즘 들어 특히 은퇴 설계가 강조되면서 PB 업무에서도 그 부분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고령화는 어딜 가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고요. 그런데 평창동이나 여의도 고객들의 경우는 이미 현명하게 은퇴 준비를 다 마쳐 놓은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농담 삼아 가끔 말하는 게 ‘안타깝게도 제가 은퇴 설계를 적극적으로 해드릴 필요가 없는 분들이 많네요’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최근 고객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역시 세무 관련이에요. 특히 오는 7월 말 시행하는 해외금융계좌납세협력법(FATCA)과 관련한 질문이 늘고 있죠. FATCA 적용 대상 고객 가운데는 이미 미국 세무당국에 이전부터 금융 자산과 금융 소득을 신고하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국내에서 성실히 납세의무를 지켜 왔던 분들로 미국 세무당국에 중복해서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몰랐던 분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국내에 거주하면서 정기적으로 미국을 방문해 영주권을 유지해 왔던 고객들이 상당수입니다. 그중에는 이참에 영주권을 정리한 분도 있습니다. 영주권 유지비용이 너무 커진 거죠. FATCA 내용이 언론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이후 국내 자산이 대부분인 경우 주로 금융기관별로 분산해서 예치하는 방법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면 미국에서 활동이 많은 분들 중에는 현지 회계사를 통해 그간 미신고에 대한 불이익을 최소화하면서 국내 금융 자산을 원칙대로 신고하려는 움직임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투자처는 어디에 가장 관심이 많은가요.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대체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들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대체투자’나 ‘대안펀드’라는 말을 들으면 ‘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그동안 여러 투자 상품을 경험해 봤지만 요즘 같은 시장 상황에서 만족할 만큼의 답이 안 나오니까 ‘급하게’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거죠. 그 뒤에는 결국 ‘고수익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는 거고요. 그런데 대안펀드라는 게 결국 새로운, 낯선 영역이고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잖아요. 그만큼 대체투자를 권하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거죠. 저는 오히려 국내 배당주를 눈여겨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중요한 건, 매출이 큰 기업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생존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라면 고배당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같은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연구·개발(R&D)과 같은 분야에 여전히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니까요. 즉 ‘고배당’이 가능하다는 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을 거쳐 이미 ‘안정적인 마켓’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시장 예측이 쉽고, 기업이 흔들릴 수 있는 위기가 적으며, 주가 변동성이 작다는 겁니다.”



63빌딩 레스토랑 ‘워킹 온 더 클라우드’에서 즐기는 올리비아 코스
[Dinner with PB­­­] 강북 부촌 평창동에서 5년간 와인파티 연 사연
63빌딩의 ‘워킹 온 더 클라우드’는 59층, 240m 높이로 한강과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유럽 정원풍 분위기의 가든 레스토랑과 와인,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바로 구성된 로맨틱 다이닝 & 바다. 특히 화려한 불빛이 출렁이는 도심의 야경이 유명하다. 품격 있는 비즈니스 모임 장소로 정평이 나 있어 정관계 인사들이 즐겨 찾고 있다. 프라이빗한 별실에서 소규모 모임부터 50여 명의 단체 조찬도 가능하며 양식, 중식, 일식, 한식 등 기호에 따라 메뉴 선택이 가능하다. 최대 1500병까지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초대형 와인 셀러 또한 이곳의 자랑거리다. 이곳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올리비아 코스는 망고살사를 곁들인 키조개 관자와 오늘의 크림스프, 눈다랑어 숯불구이와 브랑다드, 국내산 한우 등심 숯불구이 등으로 구성돼 있다.
[Dinner with PB­­­] 강북 부촌 평창동에서 5년간 와인파티 연 사연
매칭 와인 오랜 시간 이어온 전통 양조 노하우의 산물, 샤토 르 퓌 ‘에밀리앙’
샤토 르 퓌(Chateau Le Pey)는 가문의 전통 농작법을 고집해 400년 동안 포도밭에 농약을 단 한 번도 뿌리지 않았다. 25헥타르의 작은 규모로 무엇보다도 땅의 기운을 중요하게 여긴다. 샤토 르 퓌의 와인들은 2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친 후 배럴 테이스팅을 통해 출시일을 개별적으로 선정한 후 병입을 진행한다. 거의 한 그루의 나무에서 한 병의 와인을 생산할 만큼 소량만을 생산하고 있다. 오래도록 최적의 상태에서 와인이 보관될 수 있도록 모든 와인을 밀랍을 사용해 수작업을 통해 병입이 이루어진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요리 및 와인 협찬 63빌딩 레스토랑 워킹 온 더 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