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옥 이야기 2 은퇴 후 이천에 한옥 지은 신동준·장혜순 씨 부부

[SPECIAL REPORT] 사계를 들인 마당, 집이 곧 힐링 공간
경기도 이천 톨게이트를 지나 5분여 달렸을까. 가산초등학교 건너편, 고즈넉한 시골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나온다. 이천 토박이 신동준(56), 장혜순(54) 씨 부부가 2011년부터 3년여에 걸쳐 지은 한옥으로 이 동네 명물로 통한다. 1년째 한옥살이를 하고 있는 신 씨 부부는 입구에 ‘희원(喜院)’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돌을 문패 대신 세웠다. 꽃과 나무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부부의 바람이 담겨 있다.
[SPECIAL REPORT] 사계를 들인 마당, 집이 곧 힐링 공간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신 씨와 이천에서 제법 유명한 한정식당을 운영해 온 장 씨는 선친에게 물려받은 5만2892.5㎡의 땅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끝에 노후에 살 집을 짓기로 했다. 그러던 중 아내 장 씨가 3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면서 몸이 급격히 나빠졌고 건강을 위해 흙집인 한옥에 살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부부는 한옥을 두 채로 나누어 지었다. 132.2㎡의 한옥 한 동에서는 가족들이 생활하고, 그 옆에 165.2㎡의 나머지 한옥은 노후의 수입원으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기로 했다. 커피전문점으로 사용될 한옥은 현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커피전문점을 오픈하지도 않았건만 수려한 외관을 뽐내는 이 한옥은 벌써부터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구경꾼들로 북적였다. 신 씨는 “이왕 짓는 거 제대로 한번 지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옥을 짓기 위해 안동부터 전주까지 전국에 유명한 한옥마을은 다 돌았습니다. 유명산 근처 한 멋스러운 한옥 별장에 반해 한옥 전문 건축가 이재균 씨에게 의뢰했죠. 짓다 보니 욕심이 생겨 전체 설계는 건축가에게 맡기되 서까래나 기와, 나무 등 재료는 저희가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보고 공수했어요. 완공까지 딱 3년 걸렸는데 하다 보니 반 한옥 전문가가 다 됐습니다.”(신동준)
[SPECIAL REPORT] 사계를 들인 마당, 집이 곧 힐링 공간
특히 기와 아래 산돌을 두른 담장과 마당 조경은 부부의 손길이 100% 들어갔다. 집만 지어 놓으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 손재주 좋은 장 씨가 직접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한옥과 어울리는 자연 그대로의 소나무를 양양에서 직접 사 왔고 진달래, 산달나무, 할미꽃, 각종 야생화도 발화시켜 500개 정도 심었다. 바닥의 잔디와 디딤돌도 직접 다 깔았다.

장 씨는 “일일이 알아보는 게 번거로웠지만 이렇게 하면 완성도가 훨씬 높아질 뿐 아니라 비용도 줄어들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집을 꾸밀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한옥 짓는 데 얼마 정도 들었을까. 애초 10억 원을 예상하고 시작했지만 갈수록 돈 들어갈 곳이 많아 결국 예산을 오버해 13억 원가량 썼다.
[SPECIAL REPORT] 사계를 들인 마당, 집이 곧 힐링 공간
“한옥이 실은 돈 먹는 하마예요. 아무리 멋지게 지어도 지붕 하나, 서까래 하나에 한옥 맛이 떨어질 수 있죠. 시멘트 기와를 쓰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지만 전체 균형을 맞추려 토기와를 쓰다 보니 기왓장 값만 1억20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이곳이 주거지역이 아니라서 수로와 전기를 집 쪽으로 끌어오는 데도 돈이 들었고요. 그래서 한옥을 짓고자 한다면 처음에 예산을 조금 넉넉하게 잡고 시작할 것을 권합니다.”(장혜순)


돈 먹는 하마…그럼에도 “짓길 정말 잘 했죠”
부부는 그럼에도 완공된 후엔 ‘한옥 짓길 잘했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고 했다. 올해로 89세인 어머니와 도예를 전공하는 딸, 직장인 아들 모두 예전 살던 집에 비해 훨씬 만족하며 지내고 무엇보다 행복해한다.

“지난겨울엔 쪽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눈 오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기와에 내려앉은 눈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군요. 힐링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봄에 꽃피고 여름엔 바람 맞고 가을엔 낙엽 지는 것도 여기에 앉아 볼 수 있으니 사계절을 온전히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 덕분에 건강도 많이 회복됐고요.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한옥은 노년에 살기에 아주 적합한 주거공간인 듯합니다.”(장혜순)

옆에 있던 신 씨도 “실내를 현대식으로 개조해 사는 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며 “예전엔 집 밖으로 자주 나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웬만하면 안 나간다”고 거들었다.

부부는 담장 밑에 심어 놓은 야생화가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만간 연못을 만들어 연꽃을 심을 것이라는 장혜순 씨는 “많은 사람이 와 보고 싶어 하는 정원으로 꾸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옥 수명이 길다는데 이렇게 멋지게 지어 놓고 억울해서 어떻게 죽느냐고 주민들이 농담합니다.(웃음) 우리 손으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한옥에 대대손손 살면서 나중엔 증손주가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 준 집이라고 뿌듯해한다면 더없는 보람 아닐까요.”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