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 도허티 슈퍼잼 CEO

프레이저 도허티는 열네 살에 할머니의 잼 제조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슈퍼잼’을 개발해 스무 살에 백만장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올해로 스물여섯,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 청년 최고경영자(CEO)는 집도 차도 없이 여권 하나 달랑 들고 전 세계를 누비는 ‘신인류’이기도 하다.

지난 3월 31일 방한한 그를 서울 홍대의 한 갤러리에서 만났다.
[GLOBAL LEADER] 집도 차도 없는 백만장자 잼보이 “인생, 왜 남들처럼 살아야 되죠?”
오후 5시에 진행된 인터뷰. 불과 1시간 전에 한국에 도착했다는 프레이저 도허티 슈퍼잼 CEO는 약속 장소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전 세계를 집이자 사무실 삼아 유목민의 삶을 사는 그에게 시차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지난해 방한 당시 홍대에서 샀다는 꽃무늬 티셔츠와 데님을 입고 ‘샤방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는 딱 스물여섯 청년의 모습이었다.

여느 또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열다섯 살 때 단돈 2파운드로 시작한 슈퍼잼 사업으로 스무 살에 무려 백만장자가 됐다는 것. 거슬러 올라가 여덟 살 때부터 스스로 만든 쿠키를 이웃에게 팔았다고 하니 사업가로서의 수완이 대단한 듯했다. “당신의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지만 대답은 시시했다. 고수의 비법은 타고난 유전자나 성공을 위한 야심이 아니라 ‘인생 즐기는 방법을 아주 일찍 깨우친 것’이었다.
[GLOBAL LEADER] 집도 차도 없는 백만장자 잼보이 “인생, 왜 남들처럼 살아야 되죠?”
두 번째 방한이지요.
“지난해 10월에 이어 주한 영국대사관의 그레이트 위크(Great Week)에 초청돼 방한하게 됐습니다. 한국이란 나라는 여전히 흥미로워요. 영국은 모든 게 느릿느릿한 데 반해 한국 사람들은 무척이나 빨라요. 불과 6개월 만인데도 트렌드가 많이 바뀐 것 같고 사람들은 여전히 열정적이에요.(웃음)”


지난해 7월 한국에도 슈퍼잼이 들어왔다고요.
“슈퍼잼 한국 법인이 설립돼 현재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한 프리미엄 식품관에서 선을 보이고 있어요. 예상보다 반응이 아주 좋아요. 한국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에 흥미가 많고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요. 건강에 관심이 많으니 설탕을 넣지 않고 과일로만 만든 슈퍼잼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할머니의 레시피를 사업화했다니 흥미로워요. 슈퍼잼의 매력은 뭔가요.
“어린 시절 할머니의 과일 잼은 최고였어요. 이걸 만들어 팔면 어떨까 생각해 열네 살에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처음 할머니가 만든 잼은 설탕이 들어갔었는데, 저는 수백 번 연구해 보면서 100% 과일로만 만든 슈퍼잼을 개발했어요. 청포도, 배, 사과, 파인애플 등 과일즙을 혼합해 단맛을 조절하고 오렌지 껍질에서 추출한 팩틴으로 점성을 만들죠.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맛이 깔끔하고 건강에도 좋아요. 현재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전시돼 있을 정도로 유명하죠.”


그렇게 슈퍼잼 레시피를 다 공개해도 되나요.
“물론이에요. 저는 아무도 만들지 못하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그저 남들이 하지 않은 생각을 먼저 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슈퍼잼에 열광하는 건 맛과 건강함뿐만 아니라 슈퍼잼을 만든 제 스토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보면서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이지요.”


당신이 말하는 그 ‘스토리’를 좀 들려주세요.
“저는 남들보다 튀거나 뛰어나지도 않았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잼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할머니가 만든 잼이 너무 맛있어 직접 가르쳐 달라고 졸랐고, 만들고 나서는 이걸 직접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그전에 아르바이트로 베이컨과 소시지를 만들어 방문판매를 해 본 경험이 있어 잼도 똑같이 팔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돌아오자마자 슈퍼마켓에 가서 2파운드를 주고 오렌지 몇 개와 설탕 한 봉지를 샀어요. 그리고 그날 오후 처음으로 혼자 마멀레이드 몇 병을 만들고 그것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어 방문판매를 하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채 식지도 않은 잼을 병에 담아 포장했지요. 그걸로 4파운드를 벌었어요. 일주일 뒤 고객들은 모두 내 잼이 마음에 든다며 추가로 주문했죠. 나는 더 많은 레시피를 개발해야 해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도 그렇고.
“저는 부모님께 일상에서 행복과 충만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배웠어요.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은 제 뜻을 따라주셨고요.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하루도 쉬지 않고 눈만 뜨면 부엌에 들어가 잼을 만들었어요. 매주 1000병씩 스코틀랜드 전역의 파머스 마켓과 작은 상점에서 판매하고 2007년에 영국 대형 마트 웨이트로즈에 입점한 최연소 사장이 됐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영국 내 2000여 곳의 슈퍼마켓에 슈퍼잼이 당당히 자리하게 됐고 호주, 러시아, 북유럽 등 세계 시장에도 진출했죠.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일도 엄청났지요.
“정식으로 경영을 배운 적도, 집안에 사업 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재정적인 도움을 얻을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특히 슈퍼잼의 유통 라인이었던 웨이트로즈로부터 두 번이나 입점을 거절당했을 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거기서 포기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자신의 마음임을 알았지요. 아직 어리다 보니 많은 결정의 순간에 어떤 선택이 옳은지 몰라 힘들었습니다. 그럴 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요.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발로 뛰어 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슈퍼잼은 현재 얼마나 팔리고 있습니까.
“전 세계에 2000개 매장이 있고 1년 매출이 100만 병 정도 됩니다. 대략 200만 파운드(35억 원) 정도 매출을 올린다고 할 수 있죠.”


말 그대로 스무 살의 백만장자네요. 그 비결은 뭔가요.
“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좋아서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최상의 성과물을 낸다는 확신을 얻었지요. 사실 백만장자란 타이틀도 조금 부끄러워요. 집도 차도 없이 여권 하나 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내니까요.”


차는 그렇다 쳐도 집이 없다…. 그럼 어디에 사세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노 홈, 노 오피스(No home, No office)’ 원칙을 세웠습니다. 저는 모험심이 강하고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 세계인들에게 제 도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도 흥미롭고요. 지금은 슈퍼잼도 안정돼 제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지 않아도 공장이 잘 가동될 수 있는 여건이 됐고, 또 내가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나보다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많으니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떤 곳엔 2주도 머물고 어떨 땐 하루도 있어요. 그래서 제 주머니에는 늘 여권이 들어 있죠. 얼마 전까진 독일에 머물렀어요. 그전엔 덴마크와 네덜란드에 묵었고요.”


정말 독특한 삶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노(No).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잖아요. 고등학교를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어요. 누군가와의 삶을 비교하는 데 힘을 쏟고 싶지 않아요. 각자 자신이 원하는 길이 다르니 그 길을 즐겁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더 많은 비즈니스를 배우기 위해 올 11월 경영학 석사 학위(MBA) 과정을 밟을 예정이에요. 순서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죠.”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에요. 앞으로 인생은 어떻게 설계하고 있나요.
“계획은 세우지 않아요. 매일 매일 오늘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뭘 하면 알차고 재미있을지 생각하고 실천합니다. 그런데 티파티(tea party)는 조금 더 애착을 갖고 열심히 하고 싶어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한 자선 행사인데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음악과 춤과 따뜻한 차가 있는 낭만적인 시간을 만들어 드리는 거예요. 2007년부터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스에서 연 100회 이상의 파티를 진행했어요. 앞으로는 전 세계 노인요양보호소를 돌며 티파티를 열고 싶어요.”


프레이저 도허티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슈퍼잼 스토리를 들려준다. 10대에 멋모르고 사업에 뛰어든 그는 “성공하기 위해 혹은 부자가 되고 싶어 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더욱 많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활용할 수 있음을 정말 큰 기쁨으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회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영혼 없는 기업인들에게 20대 청년 CEO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묵직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