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옥 이야기 1 고려대 법대 김기창 교수·김솔하 씨 부부

[SPECIAL REPORT] 진짜 사람 사는 맛, 한옥살이 예찬
“자동차로는 못 찾아오실 겁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고려대 법대 김기창(52) 교수의 한옥을 찾아가는 길. 방향을 잃고 헤매는 차량 내비게이션을 원망하던 찰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차를 가지고는 집을 찾지 못 할 거라고. 차에서 내려 정직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언덕을 올랐다. 동양화 화폭에 담김직한 멋스러운 소나무와 굽이굽이 골목을 지나니 모퉁이 끝에 목적지가 나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끝내주는 전망’에 아내 김솔하(41) 씨의 설명처럼 ‘귀여운’ 한옥이었다.
[SPECIAL REPORT] 진짜 사람 사는 맛, 한옥살이 예찬
김 교수는 2002년까지 영국 캠브리지대 법대에서 노턴로즈 기금 교수로 재직하다 2003년 귀국해 현재까지 고려대 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웹브라우저 선택권을 주자는 시민운동 ‘오픈웹’을 이끌어 주목받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 들어와 고려대 근처 원룸에 살다가 7년 전 계동에 정착했다. 처음으로 가져 본 ‘내 집’이었다. 그는 “요즘은 여기가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당시에는 비싸지도 않았다”며 “그 덕분에 나도 이런 데 이사 올 수 있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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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생각했을 때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있었다. 먼저 ‘수용소’ 같은 기분이 드는 아파트는 제외했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아파트는 ‘행복한 우리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호실을 찾아 일하러 가는 느낌을 들게 했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니 주차장도 필요 없었다. 원소동 부근에 빌라를 찾아 발품을 팔다 계동까지 들어오게 됐다. 창덕궁 정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현재 집의 전망을 보고 30초 만에 ‘오케이(OK)’했다. 처음부터 한옥에 살 생각이 아니었기에 우려가 되긴 했으나 불안감은 곧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김 교수는 “한옥살이가 대단히 만족스럽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무엇보다 조용해요. 차가 다니는 길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소음이 없죠. 책을 읽거나 연구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에요. 커다란 대문을 밀고 들어가는 그 기분도 참 좋습니다.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는 아파트에 반해 바깥과 안의 경계가 불분명한 한옥은 집에서도 한결 여유가 느껴져요. 트럭에 채소 파는 아저씨, 복실이(강아지) 키우는 앞집 할머니 같은 이웃들과 교류하면서 사는 것도 재밌고요. 진짜 사람 사는 맛이 나죠.”
[SPECIAL REPORT] 진짜 사람 사는 맛, 한옥살이 예찬
자연과 교감하는 건강한 삶…“새로 한옥 지어 옮겨 갈 것”
몇 년 전 아내 김솔하 씨를 만날 무렵에도 그는 이곳에 살고 있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던 김솔하 씨는 한국 문화를 존중했고 기꺼이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김 교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김 씨가 “처음 이 한옥에 왔을 때 얼마든지 (남편과) 함께 살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하자 김 교수는 “이 사람은, 나보다 한옥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며 맞받아쳤다.

하나일 때보다 둘이 된 후 한옥은 더 아기자기한 공간이 됐다. 서재 겸 주방, 안방, 거실, 문간방과 화장실이 있지만 미닫이문을 모두 열면 원룸이 된다. 툇마루는 차를 마시는 테라스이자 책을 읽는 도서관이요, 마당은 지인들을 초청해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연회장이자 여름밤 이불을 깔고 잠을 자는 캠핑장으로 변신한다. 이처럼 한옥은 부부의 삶에 생각지 못했던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 주는 존재가 됐다.
[SPECIAL REPORT] 진짜 사람 사는 맛, 한옥살이 예찬
애초에 자동차 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차로의 접근이 다소 어려운 이 동네가 불편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외국 생활을 오래했던 두 사람에게 한옥으로 다다르는 계동의 좁다란 골목은 유럽의 고풍스러운 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한옥은 주거 공간 자체로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만, 그곳으로 가는 과정 역시 매력적이라는 이야기였다.

“지인들은 한옥에 대한 로망이 있어도 막상 살진 못하겠다고 해요. 그런데 살아 보니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아요. 필요한 건 식료품 트럭에서 조금씩 사 먹고요. 오래 걸어야 하니 햇볕도 많이 쬐게 되고 맑은 공기도 마음껏 마시지요. 단열이 잘 안 되는 게 흠인데, 좀 춥게 지내는 게 사람 몸에 좋잖아요.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건 분명합니다.”(김솔하)

김 교수 부부는 계동에 한옥을 지어 옮겨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을 초청해 한옥의 품격을 제대로 전파하겠다는 각오다. 더 먼 미래에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해 보고 싶단다. 이사를 가더라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절대로 팔지 않을 생각이다. 한옥의 매력에 처음 눈 뜨게 해 준 소중한 공간이므로.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