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주식 얘기뿐이었다. 이들의 말을 좀 더 신경 써서 듣다 보면 앞으로의 주가에 대해서는 낙관하면서도 언젠가는 떨어질지 모른다는 이른바 ‘블랙 먼데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함께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불행히도 이런 우려는 지난달 이후 가시화됐다. 무엇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대한 우려가 재연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처음 불거진 올 2월 말에는 인플레 우려가 낮아 유동성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여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인플레 압력이 높아져 정책 당국이 유동성을 쉽게 공급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못돼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해 채워야 하는 점이 달랐다.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 엔 캐리 자금의 청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엔화 가치가 강세를 보일 경우 피셔 이론에 따라 엔 캐리 자금이 청산될 유인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중국의 긴축 정책도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올 초만 하더라도 성장률이 10%대가 넘어도 소비자물가는 안정돼 있었으나 최근에는 4%대로 높아져 경기 과열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004년 4월 이후 중국 정부가 취한 일련의 긴축 정책 수단을 감안하면 이제는 금리 인상과 위안화 평가 절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일본의 엔 캐리 자금 청산 우려, 중국의 긴축 정책 등 글로벌 3대 악재는 모두가 자금 회수와 연결돼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런 사태가 최근처럼 각국의 정책 금리가 인상되는 시기와 맞물리면 국제적으로 신용 경색(credit crunch) 현상이 일어나고 투자자들의 성향은 위험 자산 선호에서 안전 자산 선호로 급변한다.더욱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일부 헤지 펀드들의 수익률이 떨어짐에 따라 1998년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사태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헤지 펀드 위기설’이 다시 나돌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헤지 펀드 자문 업체인 헤네시 그룹에 따르면 올 6월 말까지 투자 원금 규모가 1조50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기승을 부리던 헤지 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라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일부 헤지 펀드는 투자 원금 손실로 증거금 부족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최근처럼 헤지 펀드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투자 원금이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하면 투자자로부터 마진 콜(margin call)을 당한다. 마진 콜이란 각종 펀드들이 수익률 하락으로 증거금에 일정 수준 이상 부족분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보전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말한다.헤지 펀드들은 자신의 고객인 투자자로부터의 신뢰 확보를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 특히 갈수록 기관투자가의 고객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헤지 펀드들이 마진 콜을 당할 때에는 응해야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다.마진 콜이 발생하면 디레버리지 현상으로 연결된다. 디레버리지란 헤지 펀드들이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마진 콜이 있을 경우 증거금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해 기존에 투자해 놓은 자산을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헤지 펀드들이 마진 콜을 당하면 먼저 신흥시장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 대상으로 택한다. 그 결과 신흥시장에서는 외국 자금 이탈에 따라 통화 가치와 주가가 동반 하락하게 된다. 헤지 펀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선진국 시장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가도 신흥시장에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헤지 펀드와 함께 BNP파리바 은행의 환매 중단 조치 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펀드 런’ 사태도 각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헤지 펀드와 비슷한 경로를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이 문제는 앞으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어떤 경로를 거칠 것인가가 핵심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우려가 재연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 증시에서 불과 보름 만에 20억 달러 이상의 주식을 처분했다. 이를 계기로 일부 비관론자들은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 나돌고 있는 헤지 펀드 위기설이 가시화될 경우 한국 증시에 본격적으로 전염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여러 판단 지표가 있으나 이 문제는 골드만삭스와 같은 투자은행이나 헤지 펀드들이 국가별 투자 판단 지표로 활용하고 있는 금융 스트레스 지수(FSI: Financial Stress Index)나 금융 상황 지수(FCI : Financial Condition Index)가 한국 증시 내에서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가를 산출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골드만삭스와 같은 방법을 한국 증시에 적용해 보면 그동안 주요 금융 사건의 발생 시기와 그 강도가 금융 스트레스 지수의 움직임과 매우 유사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들어 이 지수가 다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 통화당국은 8월에 열렸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과 달리 콜금리를 전격적으로 인상했다.곧이어 BNP파리바 은행의 환매 중단 조치 이후 확산되는 신용 경색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선 다른 통화 당국과는 분명히 대조가 되는 조치였다. 이 때문인지 국내 주가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시장의 예상과 달리 콜금리를 올린 데에는 통화 당국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지급 준비율과 콜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계속 늘어나는 유동성을 흡수할 필요가 있고 우리 경기가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을 견딜 만큼 회복되고 있다는 판단에서 내린 조치로 이해된다.하지만 시장에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라 대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굳이 콜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었느냐에 대해 통화 당국에 불만을 갖는 참여자들이 많다. 요즘처럼 규모 면에서 금융이 실물보다 약 3배나 많은 상황에서는 특정 정책 목표나 전통적인 중앙은행 목표인 인플레 안정보다는 금융시장 안정에 우선적인 무게를 둬야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인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안정을 기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앞으로 이런 정책이 지속될 경우 정책 당국과 국민들이 서로 따로 노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심화되고 우리 증시는 일부 시장 참여자들의 지적대로 우울증·무기력 증세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증시 참여자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 국민들을 현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액면 그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전형적인 ‘좀비 경제’의 조짐이다.요즘처럼 국제 신용 경색이 우려될 때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국가는 그 나라 증시가 좀비(zombie) 국면에 처해 있을 때다. ‘좀비 증시’라는 것은 정책과 시장이 겉돌아 정책 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낸다 하더라도 시장 참여자들이 반응을 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우울증이 좀 더 심화되면 비이성적인 행동이 나타난다. 증시에 있어서 비이성적인 행동은 아무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내가 하면 옳고 남이 하면 잘못됐다고 보는 ‘이분법 증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분법 증시는 최근처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적(敵)이다. 특히 그 어느 시장보다 자기 책임 원칙이 중시되는 증시가 ‘좀비 국면’, 혹은 ‘이분법 국면’에 걸리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 제도적인 틀이 흔들리기 때문에 그 위에서 활동하는 시장 참여자들이 혼돈하게 되고 혼돈된 시장 참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주가와 각종 통계는 믿을 수 없는 쓰레기(dummy)가 된다.사람은 우울증이 지속되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택한다. 증시에서 자살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증시를 살리고자 하는 심리, 증시 생명력을 꺾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통화 당국의 반시장적인 통화 정책,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 기업들의 조국을 등지는 행위 등을 들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현상들이 우리 경제 내에서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점이다.따라서 정책 당국도 갈수록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증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증시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경기에 부담을 주지 않게 ‘질서 있는 조정’을 유도해 나가야 한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전문·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