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는 나뭇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이곳의 모든 것은 아침까지 멈춰 있네.모스크바의 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대가 알 수 있다면…(중략)…아침 여명이 밝아오고 있네.그대여 잊지 마오. 모스크바의 여름밤을…” 러시아 대중가수 블라디미르 트로신은그의 명곡 ‘모스크바의 밤’에서 여름날의 모스크바를 이렇게 노래했다.러시아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털모자, 보드카, 두꺼운 외투, 눈 덮인 붉은 광장…. 왠지 러시아라고 하면 영하 수십 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동토의 땅’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번쯤 러시아의 여름날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한여름 밤의 크리스마스’처럼 오묘한 맛이 느껴지는 여름날의 모스크바는 그렇게 우릴 향해 손짓하고 있다.서울을 떠난 지 7시간쯤 지났을까. 잠시 창문을 열어보니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7월에 보는 눈이라. 기내 에어쇼 화면을 보니 비행기는 몽골 울란바토르와 시베리아를 지나 우랄산맥을 넘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기체가 약간씩 흔들렸다. 잠시 후 비행기는 모스크바국제공항인 쉐레메체보II 공항에 안착했다.모스크바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는 물론 유럽의 역사를 조금 살펴두는 것이 좋다. 원래 모스크바는 지금처럼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니었다. 모스크바가 역사에 등장한 것은 1147년 이 지역 영주였던 유리 돌고루키가 제정러시아의 키예프 공후에게 ‘형제여 모스크바에 있는 나에게 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데서부터 출발한다.다시 여름날의 모스크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여름날의 모스크바는 우리네 여름 날씨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여름 낮 기온이 영상 30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때문에 여름에 모스크바를 갈 때 선크림을 챙기지 않으면 나중에 동남아를 다녀온 것처럼 얼굴이 시커멓게 타 있을 것이다.모스크바는 중세의 중후함과 러시아 혁명 당시의 열정, 스탈린 시대의 음침함, 자본주의의 화려함이 뒤섞여 있는 도시다. 나이트클럽이나 카페에서 틀어주는 음악도 혁명가, 팝송, 로큰롤 등 온갖 장르가 뒤섞여 있다. 처음에는 이 같은 모습이 낯설어 보이지만 어찌 보면 이것이 바로 모스크바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모스크바는 시내 가운데로 모스크바 강이 흐르며 도시 곳곳에 드넓은 숲이 우거진 쾌적한 전원도시다. 그래서 공기가 깨끗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선입견일 뿐이다. 오일 달러로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모스크바는 도시 전체가 교통지옥이나 다름없다. 3년 전만 해도 40분이면 충분했던 공항~시내 구간이 이제는 2시간 이상 소요될 정도로 모스크바의 도로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도로를 활보하는 차량의 상당수가 구소련 시대에 제작된 것들이어서 매캐한 자동차 배기가스가 코를 찌른다.모스크바는 우리와 5시간 정도 시차가 난다. 그러나 단순 시차만 계산했다면 모스크바 여행의 초반 2~3일은 시차와의 전쟁을 겪을 것이다. 여름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밤 11시가 돼서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백야를 경험한다. 따라서 러시아 여행 중에는 해가 중천에 있더라도 커튼을 치고 잠을 청해야 다음날 일정을 소화하는 데 차질을 빚지 않는다.한때 크렘린은 모스크바는 물론 공산주의와 소비에트연방의 상징이었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크렘린은 서방 세계에 두려움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성벽’이란 뜻이다. 20개의 종탑으로 둘러싸인 크렘린은 지금도 화려했던 제정러시아 시대와 소비에트 시대를 그대로 보여준다. 유리 돌고루키가 지은 크렘린은 처음에는 흰 벽돌로 외벽을 지었으나 이반 3세가 비잔틴 황녀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오늘날과 같이 붉은 벽돌로 치장했다. 크렘린은 1812년 나폴레옹이 3일 만에 모스크바에서 퇴각하면서 화재로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지금도 크렘린에는 당시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청동 대포가 궁정 한쪽 바닥에 나란히 진열돼 있다.크렘린은 현재 러시아 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 집무실도 크렘린 내에 있다. 삼위일체 탑으로 불리는 트로츠카야 탑은 전쟁을 치르고 온 군대가 입성하던 곳으로 크렘린 궁에서 높이가 가장 높은 첨탑이다. 이 탑을 지나 궁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은 안전요원들이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한다. 관광객들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인민대궁전과 사원들이 위치한 오른쪽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구소련 당시 공산당 대회 등이 열렸던 4000여 석 규모의 인민대궁전이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지금은 발레나 뮤지컬 공연 등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인민대궁전을 사랑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하다.인민대궁전 코너를 돌면 거대한 대포가 보인다. ‘차르의 대포’로 불리는 이 대포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전시용으로 제작됐다. 무게만 40톤에 이르고 구경이 무려 89cm에 이르는 이 대포는 실전에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못했다.그 옆에는 높이 6m 무게 200톤인 세계 최대의 청동 종 ‘차르의 종’이 있다. 1732년 이반 미트린과 미하일 부자가 공동으로 만든 이 종은 제작 중 화재가 나 급하게 물을 부어 진화하다 한쪽이 깨졌다. 이 깨진 부위만 10톤이 넘으니 종의 크기가 얼마만한지 짐작이 간다.인민대궁전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3개의 러시아정교회 성당과 광장이 나온다.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촬영지로 유명한 이 성당의 광장은 제정러시아 시대 차르와 관련된 모든 행사가 진행되던 곳이었다. 황금 지붕으로 된 가장 규모가 큰 우스펜스키는 차르 대관식 등 국가적인 행사에 사용되던 사원으로 지금도 대통령, 총리, 모스크바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해 첫 미사가 거행된다. 맞은편 아르항겔스크는 황제와 귀족의 조상들을 기념하는 사원이고 나머지 블라고베센스키는 차르와 그의 가족들을 위한 교회로 사용됐다. 광장 입구에 있는 이반 4세의 종탑은 크렘린의 전망대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나폴레옹의 침공도 이곳에서 처음 관측됐다고 전해진다. 성당 안에는 얇은 자작나무 판 위에 성모마리아와 예수그리스도, 정교회 성자 등을 그린 이콘 벽화가 가득하다.트로츠카야 탑으로 나와 붉은 광장으로 향하다 보면 1941~45년 독일과 격전을 치를 당시 사망한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볼 수 있다. ‘대조국 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에서는 러시아인 2000만 명이 사망했다. 모스크바 시 중심부에 있는 승리공원에 가면 당시 참혹했던 모습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사람들은 흔히 붉은 광장의 바닥 색이 붉은 색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붉은 광장에 가보면 크렘린과 국립역사박물관 건물만 붉은 색일 뿐 바닥은 여느 광장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유인 즉 러시아말로 ‘붉은’이라는 단어는 예전에 ‘아름다운’이라는 단어와 혼용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광장은 ‘색이 붉은 광장’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구소련 당시 육해공군 퍼레이드와 영웅 환영식에 쓰인 이 광장은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따금 레닌, 스탈린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만이 구소련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붉은 광장 가운데는 레닌의 묘가 있다. 이 묘소에는 레닌 외에도 트로츠키, 스탈린, 안드로포프, 막심 고리키 등 러시아 영웅들이 안치돼 있어 러시아 국민들에겐 성지와 같은 곳이다. 레닌 묘 반대편에는 지상 3층 규모의 러시아 최대 굼(GUM)백화점이 있는데 구소련 당시 공산당 관계자만 이용할 수 있었던 이곳은 지금 세계 최고급 명품 쇼핑몰로 탈바꿈돼 있다. 이곳에 가보면 달라지고 있는 러시아 경제의 현주소가 한눈에 들어온다.화려한 외관의 바실리 성당은 그 바로 왼쪽에 있다. 240여 년간 격전을 치러 끝내 몽골 세력을 물리친 후 이를 기념해 이반 4세가 지은 성당으로 연간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8개의 탑은 몽골과의 치른 8번의 전투를 상징한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바르마와 포스닉이 지은 이 건물은 이반 4세에게 이들 건축가가 두 눈을 뽑힌 섬뜩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 이반 4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이 건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이들을 영국으로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에게 ‘다시 이와 같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건축가들은 ‘가능하다’고 대답했고 이반 4세는 그 자리에서 이들의 눈을 뽑아버렸다고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화려함 속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말하듯 바실리 성당은 붉은 광장의 한쪽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모스크바 강을 따라 가다보면 예전 크렘린의 외곽 성곽 역할을 했던 노보데비치 수도원이 나오고 바로 옆에 러시아 영웅들이 안장된 국립묘지가 있다. 그러나 이곳은 국립묘지라기보다는 화려한 조각상들의 전시장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흐루시초프, 일루신 등 국가 영웅의 묘역이 있는 곳으로 지난 4월 사망한 옐친 대통령도 이곳에서 평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체호프 등의 작가들과 최근 타계한 로스토포비치도 이곳에 묻혀 있는 것을 보면 문화, 예술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4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면 아랑겔스코예 셀로를 만난다. 유스포프 공작의 영지였던 이곳은 유럽풍의 건축과 정원이 펼쳐져 있어 모스크바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책 코스다.유가 상승에 힘입어 러시아 경제는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1998년 모라토리엄 선언 때와는 시민들의 표정부터가 다르다. 뭔가 자신감에 차 있다. 우리나라 대학로와 인사동을 합쳐놓은 듯한 모습의 아르바트 거리는 이런 러시아의 변화상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열 때마다 더 작은 인형이 나오는 러시아 전통 마트로시카 인형과 개, 고양이는 물론 담비, 뱀, 까마귀를 파는 반려동물(?) 거래상을 볼 수 있다. 푸슈킨이 살던 집과 고려인 출신 록가수 빅토르 최 추모 담벽 등도 아르바트 거리에 있다.러시아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돼 있다. 워낙 교통 정체가 심해 택시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자칫 러시아워 때 걸리면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트로’라고 불리는 지하철(12개 노선)을 이용해 다니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하루 300만 명이 이용하는 이 미트로는 전선이 바닥 레일에 있는 것이 특징으로 1933년 처음 개통됐다. 지하 100~150m를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우리나라보다 빠르다. 지하 150m에 있는 스몰레스크역에서 시간을 재보니 지상에서 플랫폼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정확히 3분 걸렸다.러시아 사람들에게 한국은 매우 친숙한 나라다. 붉은 광장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제정러시아 때부터 지금까지 러시아는 단 한 번도 한국을 적대시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이 친구는 냉전 체제 시절 소련과 북한과의 동맹 관계까지 역사적인 한·러 우호관계 속에 포함시켰다). 실제로 모스크바에선 현대, 대우자동차는 물론 한국 간판들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 군대가 입성하는 트로츠카야 탑 앞에는 삼성(SAMSUNG)의 거대한 간판이 자리하고 있으며 LG, SK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로고도 쉽게 눈에 띈다. 마치 러시아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승리해 트로츠카야를 통해 크렘린으로 입성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보게 하는 모스크바다.모스크바 정보모스크바 가는 길: 대한항공과 러시아 국영항공인 아예로플로트가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매주 월요일 목요일, 아예로플로트는 화, 금, 일요일에 출발한다. 소요 시간은 대한한공의 경우 9시간 30분, 러시아항공은 10시간이다.음식: 러시아는 음식 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곳이다. 그나마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전통 음식은 그루지야에서 유래된 샤슬릭(꼬치구이)이다.기타: 러시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 발급이 필수다. 또 현지에 체류하려면 러시아 정부에 거주 등록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