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국 미술은 내용과 형식 모두 매우 빠른 속도로 다변화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가시화하기 시작한 이러한 징후들은 미술 영역의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왔으며 미술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줬다. 이러한 뜨거운 기운이 판화 시장에도 적용되는 것일까.현재 한국의 판화 시장은 하락에서 상승 곡선으로 이어져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중국 판화 시장은 중국 미술 시장의 갑작스러운 확장과 세계의 중국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거대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판화계는 동판, 석판이 상대적으로 약해 한국 판화에 도움을 청함으로써 한국 판화 시장이 활기를 꾀하고 있다. 많은 중국 판화 공방들이 한국의 기계를 도입하고 있으며 한국 공방들이 중국으로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그러면 왜 한국 판화 시장은 오랜 침체시기를 보내왔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판화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없었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판화(영어로는 Print 또는 Printmaking, 프랑스어로는 Gravure 또는 Estampe)의 종류는 동판·석판·목판·실크스크린으로 나누며 근래에는 디지털 프린트도 판화로 정의된다. 판화를 독자적인 한 예술 분야로 정의할 수 있는 특징은 그림을 찍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표면에서 또 다른 표면으로 옮긴다는 개념으로, 모든 판화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판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회화나 조각이 작가의 행위에 따르는 직접성의 예술이라고 한다면, 판화는 판에 의한 간접성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원판을 여러 장 찍어낼 수 있다는 판화만의 고유한 기능 때문에 복제예술이라고도 한다. 판화가 복제예술로서 대중 속에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자 ‘예술작품의 일회성’이라는 과거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완성된 판은 한정 없이 찍어낼 수 있으며 그것을 모두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지와 비록 제한된 숫자로 프린트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쇄의 힘을 빌려 찍혀 나왔다고 했을 때 과연 그것을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점 등이 거론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소한도의 기본적인 제한 조건을 판화가들 스스로가 지킴으로써 자신의 작품이 남발되는 것을 사전에 막고 판화 작품 개개의 가치를 보증할 수 있는 어떤 약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판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작가가 직접 제작하거나 제작에 참여한 판화로 한정판(에디션), 오리지널 판화라고 부른다. 오리지널 판화는 찍어내는 작품 수가 비교적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2점에서 시작해 200점 정도까지 찍을 수 있게 돼 있으며 일반적으로 75점 이상인 경우는 드물다. 석판화나 실크 스크린 같은 작업은 첫 판과 마지막 판 사이에 차이점이 별로 없으므로 작품에 붙는 일련번호는 중요하지 않다. 이 일련번호는 프린팅의 순서나 프린팅 상태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작품에 이름을 붙인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리지널 판화는 여러 장을 찍어 그만큼 작품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몇 장의 매수를 찍어 희소가치라는 점에서 귀중하게 여겨진다.또 다른 하나로는 재생산 작품(Reproduction)으로서, 작품 제작에 작가가 참여하지 않고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원화를 오프셋(offset) 인쇄 기법에 의해 한정 매수에 제한 없이 대량 생산한 것이다. 보통 사후 판화를 말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인기가 많았으나 요즘은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추세다. 판화는 투자 가치가 있는 미술품일까. 물론 그렇다. 요즘 한국 미술 시장은 호황이라고 말한다. 축하할 일임엔 틀림없으나, 초보 컬렉터들에게 좋은 작품은 여전히 고가다. 그러므로 회화보다는 판화와 같은 저렴한 복수 작품에 투자할 것을 권한다. 이우환 박서보 김창열 등 유명 화가의 판화에 눈을 돌려보자. 또한 기법만 판화의 방식을 택하고 에디션이 없는 모노프린트(monoprint)를 추구하는 김준 강애란 주지롱 등 젊은 작가들의 판화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판화와 함께 최근 새로이 조명 받고 있는 사진 시장을 살펴보자. 최근의 사진 시장 호황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진 발명은 인간의 시각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개념을 구축했다. 과거에는 시각 개념을 관념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표현 미디어로의 뉴비전 개념을 구축하게 한 모더니즘 전반의 형식은 사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우리 시대 미술 즉, 21세기적 시대 개념을 드러낼 수 있는 미디어로서의 사진은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으로 한정하기보다는 미술 매체로서의 사진, 디지털 개념, 소통이라는 문제 모두가 21세기적인 개념이다. 레디메이드로서의 이미지, 더 이상 창조는 없다는 개념도 사진 미디어의 효율성에서 얻어낸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진이 미술 시장에서 주역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라 본다.에디션이 있다는 점에서 판화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것이 사진의 매력이다. 사진에서의 에디션은 보통 많아야 10장 정도다(모더니즘적 사진은 약 20점인 경우를 빼고). 보통 7장, 6장, 5장, 3장이 보통이다. 에디션이 적기 때문에 사진에서는 판매 기록을 적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기록이 확실해야 사진 작업의 미학적 배경을 읽을 수 있으므로 사진을 구매할 때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사진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와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 장비를 비롯해 최고임을 자부하고 있는 일본 사진은 점점 더 많은 컬렉터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동양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유럽 한복판의 박물관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될 것이라는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 작품을 구매할 때에는 자신의 눈을 믿어보자. 물론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것도 잊지 말자. 첫눈에 반한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여전히 그 작품이 좋다면 주저하지 말고 내 것으로 만들 것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