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시장의 가장 큰 위험은 미술 작품의 가치(가격)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취미(taste) 변화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미술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이 취미 판단인 이상,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작품이 어느 순간 시장의 관심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모든 작품이 취미 변화에 따른 가치 변동 가능성에 같은 정도로 노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적으로 검증이 덜 된 작가들의 작품은 가치 변동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는 반면 이미 시장에서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친 작가들의 작품은 급격한 가치 변동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 미술 시장에서 이미 충분한 검증 과정을 통해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작가들은 누구인가.박수근(1914~65)을 먼저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박수근은 최근 한국 미술 시장의 동력이라 할 만하다. 물론 그가 없다고 국내 미술 시장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국내 미술 시장에서 이슈가 만들어지고 미술품이 보다 많은 이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는 분명 오늘날 미술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얼마 전 서울옥션에서 그의 1950년대 작품 ‘빨래터’가 45억2000만 원(이하 구매 수수료 제외)에 낙찰,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 경매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 10점 중 그의 작품이 4점이나 포함돼 있다는 것도 그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올해 상반기 동안 15점이 출품돼 모두 낙찰, 고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박수근은 어딜 봐도 천재 스타일이 아니다. 순간적인 번뜩임이나 통찰력을 그에게 갖다 붙이기에는 어색함이 많다. 해외 미술 시장에서의 인지도도 그렇게 큰 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박수근인가. 국내 미술 시장은 왜 박수근 작품에 그리 환호하는가. 박수근 작품의 특성은 무엇보다 소재와 기법에 있다. 박수근에게 아름다움이란 관능적인 육체의 구현이나 이지적 접근을 통한 우주 질서의 드러냄, 또는 격정적인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소년 박수근에게 깊은 감명을 줬던 밀레의 만종(晩鐘)이 그렇듯 그는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보여주고자 노력했고, 무엇보다 이것이 박수근 예술이 갖는 고유의 내면이자 차별성이다. 여기에 그의 독창적 기법이 더해지며 박수근 예술이 탄생하게 된다. 수직과 수평이 근간을 이루거나 수평으로 나열되는 경우, 그리고 좌우나 상하로 대칭되는 그의 단순한 구도는 그 어느 것이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으로 보여주고 있고, 바탕을 여러 겹 발라 일정한 층을 만드는 작품의 재질감(마티에르)은 화면의 깊이감을 더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네는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어느 한 여인이 아니라 한 시대의 여인상이고 우리의 어머니상이고, 이러한 매력에 많은 컬렉터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다음으로 거론돼야 할 인물은 수화 김환기(1913~74)다. 그의 작품 ‘꽃과 항아리(정물)’는 지난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30억5000만 원에 낙찰, 국내 경매사상 두 번째로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수화의 작품은 크게 1950년대 정물과 1960년대 초·중반의 산월 시리즈, 그리고 1963년 도미(渡美) 후 본격화된 점화 시리즈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들 작품 모두 시장에서 적극 수용되고 있다. 매화와 항아리, 산과 달 등 한국적 소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과감한 추상 형식의 화풍을 전개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그만큼 다양한 층의 컬렉터들을 확보하고 있다. 박수근에 비해 모던한 스타일의 그의 작품은 특히 최근 시장을 이끌고 있는 40~50대의 컬렉터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장욱진(1918~90)은 국내 미술 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가격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다. 가격 흐름이 안정적이란 것은 가치 변동 폭이 크지 않다는 의미로, 가격 상승 폭으로 따지면 다른 작가들에 비해 다소 저조해 보이기도 하지만 매년 꾸준한 상승 폭을 이어가는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이러한 움직임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일상적이고 친근한 소재를 파격적인 구도로 재배치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친근함과 동시에 심오함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그의 작품은 1950~60년대 구작과 1980년대 이후 신작으로 구분돼 가격이 형성돼 있으며 희소가치가 높은 구작의 가격이 신작에 비해 높게 형성돼 있다. 또 그는 유화뿐만 아니라 매직과 수묵으로도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어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에 그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다.한국적 인상주의의 지평을 연 오지호(1905~85) 역시 국내 미술 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가격 상승 폭이 두드러진 이후 최근 들어선 이전 상승 폭을 이어가고 있지는 못하지만 시장에서 인기는 여전한 작가다.그의 작품은 설경(雪景)과 해경(海景)으로 구분되며, 인상주의 특성을 보다 잘 살리고 있는 해경 작품이 상대적으로 더 인기가 많다. 다만, 그의 작품은 작품별로 인상주의적 특성을 살린 정도가 다르다는 점에 컬렉터들은 주의해야 한다. 같은 해경 작품이라도 인상주의 특성이 표현된 정도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난다. 지금까지 거래된 작품 가운데 최고가는 지난 7월 서울옥션에서 거래됐던 20호 크기의 향원정으로, 낙찰가는 1억5000만 원이었다.도상봉(1902~77)은 국내 미술 시장에서 정물화(still life)의 매력을 일깨우고 있는 작가다. 안정된 구도를 통해 절제와 질서를 보여주고 있는 그의 정물화는 라일락과 백국, 작약 등 만개한 꽃그림과 과일 등의 일반 정물로 구분되며, 시장에선 꽃그림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이다. 올해 서울옥션에서 그의 10호 꽃그림은 3억 원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다.이대원(1921~2005)은 최근 미술 시장에서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다. 화사한 색채를 통해 생동하는 자연을 표현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최근까지 가파른 가격 상승 폭을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구작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이지만 1990년대 이후 작품 가운데서도 안정된 화면 구성과 세심한 필치가 살아 있는 작품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생존 작가 가운데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단연 이우환(1936~)이다. 국내 미술 시장의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5월 소더비의 뉴욕 경매에서 그의 작품은 해외 시장에서 거래된 국내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가인 18억 원에 낙찰됐었다.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 ‘점으로부터(From point, 2점 일괄)’가 지난 7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3억5000만 원에 낙찰되며 생존 작가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이우환은 서울대를 중퇴하고 일본 니혼대에서 철학을 전공, 자신의 작품에 확실한 논리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시기별로 ‘선으로부터(From line)’, ‘점으로부터’, ‘바람(With winds)’, ‘조응(Correspondence)’으로 구분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격 상승을 이끈 것은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였지만 올해 들어서는 ‘바람’과 ‘조응’ 시리즈도 가파른 가격 상승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그의 100호 크기 ‘조응’ 작품은 3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천경자(1924~)의 미인도도 시장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미인도 작품은 이국적 이미지와 원색이 더해지며 신비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지난 5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0호 크기의 미인도는 8억 원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천경자 작품 가운데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지난 5월 K옥션에서 12억 원에 낙찰된 작품 ‘초원’으로, 이를 통해 그녀는 이우환과 함께 생존 작가 가운데 10억 원 이상의 낙찰 가격을 기록한 작가로 기록되고 있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1929~)과 회색 톤의 여인상과 풍경 작품의 권옥연(1923~)도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들이다. 이들 작가들의 경우 한국 미술 시장은 든든히 받쳐 주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인지도만 보고 무조건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최근 국내 미술 시장이 점차 작품의 질적 특성을 중시 여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컬렉터들은 작가의 화풍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여부를 꼼꼼히 체크하고 작품을 구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