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들은 흔히 현대미술을 두고 “어렵다” “난해하다”라고 한다. 고흐, 모네, 르누아르의 작품과 같이 쉽게 다가가 감상할 수 있는 회화들과 달리 오늘날의 회화는 ‘무엇을 그린 걸까’ 내지 ‘왜 그렸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러한 미술 경향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어떠한 물질로서의 미술작품이 아니라 생각(개념) 자체가 미술이 될 수 있다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이념을 근간으로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현대 회화는 재현을 위한 단순한 손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서 벗어난 정신-개념을 담고 있다. 따라서 현대 회화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려진 화면 위의 형상, 색감, 질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그 안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림과 작가, 그리고 미술사 전반에 관한 더 많은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오늘날의 ‘개념 미술’이라는 범주는 매우 광범위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퍼포먼스나 미디어 아트와 같이 비물질적 예술 활동 외에도, 흔히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대 회화 작품들 또한 모두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6월, 런던에서 열린 소더비 현대 미술 경매에 출품된 프란시스 베이컨, 데미안 허스트, 게하르트 리히터,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현대 미술계를 이끄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은 시대적·미학적 가치에 근거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이번 경매에서 선보인 ‘의자’는 리히터의 1965년 사진 작업 ‘의자’를 1985년 다시 회화로 표현한 것인데 그의 작품 생애의 전반적 주제인 추상과 구상 두 양식 간의 구분 초월, 사진과 회화라는 대립적 매체의 경계 파괴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날 리히터의 ‘의자’는 이와 같은 미학적 평가와 가치를 바탕으로 214만8000파운드(약 40억 원)에 낙찰됐다.또한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대중적인 요소, 일상적인 요소를 미술작품 속에 사용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팝적인 요소들은 국내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도 많이 수용되고 있다.지난 5월 열린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컨템퍼러리 경매에서는 홍경택의 ‘연필Ⅰ’이 추정가의 10배 이상인 648만 홍콩 달러(약 7억7000만 원)에 낙찰되면서 국내 작품의 홍콩 크리스티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홍경택의 ‘연필Ⅰ’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3년여에 걸쳐 그린 ‘펜과 연필’ 시리즈 중 하나로 커다란 화면 위에 연필과 펜들을 기하학적으로 구성하고 있다.화려한 색감들의 거대한 연필 더미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경쾌하면서도 때로는 낯설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연필’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소재이면서도,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현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홍경택의 작품은 연필과 펜이 가득 찬 화면을 통해 물질문명의 포화된 모습을 반영함과 동시에, 전체적인 화면에서는 질서 있는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오늘날의 물질문명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최소영의 ‘항구’ 또한 216만 홍콩달러(2억5600여만 원)에 거래되면서 국내 작품들의 억대 거래가 행진을 이어갔다. 최소영의 작품은 청바지라는 소재를 사용해 우리의 일상 풍경을 표현함으로써 주목받고 있다. 마치 청바지를 입은 제임스 딘이 젊음을 상징하는 만인의 히어로인 것처럼 청바지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있는 소재다. 최소영의 작품은 이러한 청바지가 가진 본래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특유의 친근하면서도 모던한 감각을 나타낸다.현대 회화에 있어 개념 표현은 작가의 내면 세계를 포함해 새로운 리얼리티의 추구, 현대 사회상의 반영 등 다양한 범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개념 미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남다른 시선으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그림 속에 내포된 개념을 알아갈수록 현대 회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심오한 감상을 할 수 있다. 보다 넓은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 회화를 대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더욱 깊은 눈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