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술 시장이 호황을 구가하면서 새롭게 문을 여는 화랑이 잇따르고 일부 인기 작가들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밤새워 그림을 그려야 할 지경’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같은 활황의 중심에는 미술품 경매가 자리 잡고 있다.불과 2~3년 전만 해도 미미한 수준에 머물던 미술품 경매를 본궤도에 올린 김순응 K옥션 사장은 이런 의미에서 개척자로 불린다. 그는 은행원 시절 월급과 보너스를 모아 100여 점의 작품을 사 모으고 1000권에 이르는 관련 서적을 탐독한 그림 마니아였다.2001년 23년간 근무하던 직장(하나은행)을 나와 서울옥션의 최고경영자(CEO)로 변신, 국내 미술품 시장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에는 당시 김승유 하나은행장의 제안으로 하나은행 갤러리현대 학고재와 함께 ‘제2의 경매회사’인 K옥션을 설립해 미술품 경매시장을 경쟁 구도로 만들었다. 지난 3월에는 자신이 직접 경매사로 나서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을 25억 원에 낙찰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시장 활황의 일등 공신인 그는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거품론’을 어떻게 바라볼까. 단호하게 “근거가 부족한 너무 조급한 견해”라고 잘라 말했다. “거품이요? 국내 미술품 시장이 성숙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거품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지요.”그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와 미술품이 차지하는 의미 등을 종합해 볼 때 국내 미술품 시장의 성장세는 무궁무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술품 가격은 경제 현상이며 문화 현상입니다. 한 나라의 미술품 가격은 부의 척도이고 경제 수준입니다.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지난해 겨우 60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선진국 사례를 살펴봐도 세계 11위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성장하려면 국내 미술품 시장 규모는 지금보다 규모가 8배 정도 성장한 4000억~5000억 원은 돼야 합니다. 특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 문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어서 향후 전망은 무척 밝습니다.”김 사장은 세계 경제 관점에서도 ‘거품론’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쉽게 요즘 재테크의 화두가 되고 있는 주식시장과 미술 시장을 비교하면 유사한 점도 많다는 설명이다. 먼저 세계 증시가 연동화되듯 미술품 시장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품 시장의 급성장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2~3년 전부터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신흥 부자들이 미술품 투자를 시작해 세계적인 붐이 일고 있어요. 국내 미술 시장은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자금이 몰리면서 상승 속도가 가파르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1990년 초 최고 호황기 때의 가격을 회복한 작가를 꼽아보면 아직도 불과 10명 이내입니다. 지난 10년간의 경제 규모, 소득 수준, 부동산 가격 등의 상승을 고려해 볼 때 과열이라고 하긴 어렵죠. 예전에 비해 수요 기반도 훨씬 탄탄합니다. 국내 컬렉터의 수준도 높아졌고 문화 욕구가 높은 젊은 층들이 투자 수단으로 미술품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술품 투자가 예전처럼 한때의 ‘광풍’으로 그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다만 미술품 수집이 소수 부유층의 취미에서 점차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과열 현상들이 생소하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그는 북핵 변수 등 여러 가지 요인들로 우리 증시가 ‘저평가’된 것처럼 국내 미술품 시장도 이와 흡사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국내 작가들이 해외 경매시장에서 고가에 팔리면서 국내 작품들이 가치에 비해 싸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 5월 국내에서 100호(130×166cm) 기준으로 800만 원에도 팔기 어려웠던 김동유 작가의 작품이 홍콩 경매에서 3억2000만 원에 팔렸지요.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상당수는 국내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더 유명한 경우가 흔합니다. 한국 작가들의 우수한 역량을 감안하면 현재 가격 수준이 비싼 것만은 아닙니다.”김 사장은 본격적인 성장 단계에 접어든 미술품 시장이 좀 더 안정된 기조에서 발전하려면 경매시장이 좀 더 활기를 띠어야 한다고 말했다.“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매의 기능과 위상이 더욱 강화돼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화랑이 경매 회사를 겸하고 있어 시장 독점의 폐해가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것입니다. 과거부터 대형 화랑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왔고 작품 거래도 주로 인간관계를 통해 이뤄졌죠. 거대 화랑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국내 미술 시장의 특수성이자 역사입니다. 경매 제도는 가장 선진화된 유통 제도입니다. 국내 미술품 시장도 화랑의 신인 발굴, 경매 회사의 유통이란 두 기능이 좀 더 분화되는 추세여서 시스템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셈입니다.”김 사장은 경매시장 활성화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미술 시장의 ‘위상 찾기’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문화 및 경제 수준에 맞는 질적인 성장과 이에 따른 국내외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 스포츠 스타들이 한국을 크게 알리고 있듯이 제대로 평가받는 화가들을 길러내 ‘한국=문화강국’이란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세리 최경주 박찬호 선수가 골프와 야구에서 얼마나 많이 국위를 선양했습니까. 미술계 스타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경매란 메커니즘을 통해 화가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림을 그려서 부와 명성을 쌓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인재가 몰리고 미술계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유망한 작가들도 계속 배출됩니다.”미술계가 발전하면 단순히 문화의 발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김 사장의 지론이다. 현대 미술은 모든 산업의 근간이기 때문에 미술이 발전하지 않고는 선진국 진입이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색감과 미감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서구 미술의 축을 이루고 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들이 패션과 디자인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젠 패션과 디자인은 모든 산업의 기초입니다. 그림을 사 주어야 미술계가 발전하고 인재도 길러집니다. 앞으로 경매시장의 투명성을 더욱 제고해 미술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을 생각입니다.”“경매의 메커니즘을 통해 화가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림을 그려서 부와 명성을 쌓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인재가 몰리고 미술계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김순응 K옥션 사장성균관대 경제학과남가주대(USC)MBA하나은행 종합기획부장하나은행 자금본부장서울옥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