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술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박수근 화백의 1950년대 후반 유화 작품 ‘빨래터(37×72cm)’가 경매시장에서 45억2000만 원에 낙찰됐는가 하면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에서는 김형근 구자승 이숙자 사석원 이왈종 홍경택 안성하 등 중견·신진 작가 작품 값이 최근 2년 사이에 30~100%나 뛰었다. 인사동 ‘터줏대감’ 선화랑의 김창실(72) 대표는 “지난 10여 년간 저평가된 작가들의 작품 값이 회복되면서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1995년과 같은 경착륙(hard landing)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편다.그는 미술 시장 전망에 대해 “아날로그 시대에는 금과 부동산이 유망 투자 대상이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그림 등 문화 상품에 대한 투자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최근의 미술 시장 분위기는 과열이라기보다는 장기 호황을 위한 ‘통과의례’이며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 최소한 3~4년간 더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다만 정치 경제적인 변수가 있기 때문에 예측하기 힘들지만 대부분 국내 금융 상품의 라이프사이클이 3~4년밖에 안 되는 만큼 돈의 흐름이 빠르게 바뀐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미술품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의 미술 시장은 이제 시작으로 봐야 합니다. 세계 500대 작가 가운데 중국은 35명, 일본이 6명이지만 한국인은 없어요. 이 같은 사실은 국내 미술 시장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예쁘고 보기에 편안한’ 구상 작품이 여전히 우세하지만 추상과 한국화에도 불이 붙을 가능성이 있어요.”올해로 화랑 경영 30년을 맞은 김 대표의 ‘예술 경영론’ 역시 유별나다. “예술 경영은 돈 버는 사업이라기보다 나라를 살찌우는 사업이죠. 화랑을 30년간 경영하면서 언제까지나 해외 작가들 작품을 들여와 이윤을 남기고 파는 장사꾼 역할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화랑은 작가가 있어야 하며 이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고 창작의 활로를 열어주면서 ‘윈-윈’해 나가야 하지요.”김 대표는 “진정한 농부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기름진 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화랑 역시 소비자, 작가들과 함께 기름진 땅을 일구는 데 ‘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술 경영은 우리 작가들이 세계 속에서 도약할 수 있도록 아스팔트를 깔아주고 여유 있는 날개를 달아 주는 작업의 하나”라며 “21세기는 문화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기 때문에 미술품을 구입하기보다는 문화를 산다는 의식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이화여대 약대를 나온 김 대표가 미술과 ‘조우’한 것은 30대 초. 약국을 운영하다 ‘그림에 빠져’ 우연히 인사동에 들렀는데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그곳 분위기와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코드’가 맞아떨어진 셈이다.그 느낌이 뒷날 그가 미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했다. 지난 1977년 인사동에 문을 연 선화랑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사동의 터줏대감이 됐다. “느티나무의 잎 자체는 쓸모없지만, 느티나무가 이루는 그늘은 동네 사람들을 편하게 쉬게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쉼터가 됩니다. 미술과 쉼터를 조화시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오늘의 인사동 선화랑이지요.” 가나아트개러리를 비롯해 국제, 예화랑 등 대형 화랑들이 속속 인사동을 떠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2003년에는 1123㎡ 규모의 4층 신축 건물도 세웠다. 그런 고집은 330회의 전시회로 이어졌고,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20주년에는 그동안 선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200여 명 작가의 1호 작품, 400여 점을 전시해 많은 미술 애호가들과 일반인들이 찾아와 인사동 일대에 대만원을 이루게 했고 그들에게 미술 작품을 좀 더 쉽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 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그리고 화랑으로서는 최초로 샤갈과 마리노 마리니와 같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우리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는 등 남다른 전시 기획력을 보여 왔다.또한 1984년에는 젊은(35~45세) 작가들을 발굴해 시상하는 ‘선미술상’을 제정, 올해로 20회 수상자를 배출했고 그 기념전을 개최해 왔다. 그 작가들은 현재 한국 미술을 이끌어가는 주춧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형근를 비롯해 김흥수 권옥연 남관 김종학 장리석 황유엽 곽훈 이숙자 김병종 김춘옥 등 300여 명의 탄탄한 작가군은 선화랑과 함께한 작가들이다. 이러한 좋은 작가들의 전시를 통해 선화랑에서 거래되는 작품들은 보증수표와 같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 그외 미술 잡지의 불모지였던 1970년대 말 일반인들의 미술 인구 저변확대라는 목적으로 계간지 ‘선(選)미술’을 창간해 13년간 발간한 것에서도 미술에 대한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이렇듯 선화랑을 현대미술의 요람으로 키워낸 김 대표는 요즘도 한국 미술이 발전하기 위해선 작가를 비롯해 화상, 미술 애호가, 전시 공간(화랑)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음악·무용·연극 등 공연예술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틈만 나면 공연장을 찾아가 예술계를 돕는 일에도 솔선수범이다. 세종문화회관 후원회 부회장을 비롯해 국립발레단 후원회 부회장, 예술의전당후원회 이사, 성남아트센터 후원회 이사 등 예술계를 돕는 일에 언제나 열심이다. 지난 1996년에는 미술 에세이집 ‘달도 따고 해도 따리라(김영사)’를 펴내 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김창실 대표이화여대 약대 졸업·1977년 선화랑 개관한국화랑협회 회장 2회 역임·수원대 대학원 초빙교수세종문화회관 후원회 부회장·예술의전당 후원회 이사성남아트센터 후원회 이사·국립발레단 후원회 부회장인사미술제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