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동에 사는 김명선(48) 씨는 1998년 서울 평창동의 모 갤러리를 방문했다가 극사실주의 작가 고영훈의 작품 ‘스톤 북(106×72cm)’을 1500만 원에 구입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미술 시장이 침체돼 있던 터라 그림을 구입하는데 상당히 고민했었다. 그러나 평소 극사실주의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그는 큰맘 먹고 그림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품은 지난 2월 열린 서울옥션 100회 경매에서 당초 추정가 4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어 8800만 원에 팔렸다. 8년 동안 이 그림을 간직하고 있었던 김 씨는 5배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그는 요즘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미술 투자 성공담을 주변 사람에게 소개한다. 또 시간만 나면 신사동, 인사동, 평창동의 갤러리들을 방문해 투자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알아보고 있다.미술품 투자 열기가 뜨겁다. 일부에서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미술품 시장은 크게 1차시장과 2차시장으로 구분된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갤러리나 아트페어 등이 1차시장이라면 미술품 경매 등은 2차시장으로 분류된다. 갤러리에서 산 작품을 시간이 지나 미술품 경매에서 거래하는 구조다. 그리고 이 시장은 일반 투자 상품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1990년대 중반과 지금처럼 미술 시장이 활황세를 보일 때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고 이런 시장 구도가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반대로 공급에 비해 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미술품 시장은 언제든지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설 수 있다.미술품 투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희소성이다. 해당 작가의 작품이 현재 몇 점이나 남아 있느냐가 가격을 결정짓는 중대한 변수다.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이 블루칩으로 대접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이미 작고한 작가라 더 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 서울옥션에서 실시된 미술품 경매에서 박수근 화백(1914~65)이 1950년대 후반에 그린 37×72cm 크기(20호)의 유화 ‘빨래터’는 45억2000만 원에 팔려나가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근현대 미술품 경매 최고가 10점 중 ‘빨래터’, ‘시장의 사람들(25억 원)’, ‘농악(20억 원)’, ‘앉아 있는 아낙과 항아리(14억6000만 원)’, ‘한가한 날(12억4000만 원)’, ‘휴식(10억5000만 원)’ 등 6점이 박 화백이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 경매가 실시된 지난 1998년 이후 박 화백의 작품은 총 110여 점이 출품돼 82점이 낙찰됐다. 거래 총액 257억3000만 원, 작품당 평균 낙찰가는 3억 원 꼴이다. 특히 올 들어서는 출품된 작품 12점 모두가 팔리는 기염을 통했다. 이러다 보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미술품 투자가 재미있는 것은 100% 희소성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미국 작가인 앤디 워홀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 점이 거래되고 있다. 그는 생시에 판화 작품을 수도 없이 찍어냈다. 그 스스로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라고 부른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수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앤디 워홀의 작품이 아직도 인기 있는 이유는 그만의 독창성에 있다. 작품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해당 작가가 차지하는 미술사적 위치가 확고하다면 블루칩 작가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미술품 투자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술품 투자는 투자 수익 외에도 완상(玩賞)의 맛을 더해 준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주판알을 굴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마음에 든 작품을 구입해 벽에 걸어두고 몇 년간 감상하다 경매나 사거래 시장을 통해 매매하면 그만이다. 게다가 미술품은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따라서 양도나 상속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미술품으로 사람들을 몰리게 하는 이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술품 거래 시장은 주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층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지난 4월 2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린 ‘작은 그림·큰 마음 전(展)’에서는 전시 작품 300여 점이 개관 이틀 만에 모두 팔렸다. 중견 작가 작품을 점당 100만 원대에 살 수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직장인, 주부 등이 작품을 대거 매입한 것이다. 또 미술품 경매회사 회원도 지난해 3000명에서 지금은 2만 여명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아트페어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6대 아트페어(한국국제아트페어, 화랑미술제, 한국현대미술제, 서울국제판화미술 페스티벌,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에는 1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아트페어 관람객이 10만 명을 넘어선 것을 지난해가 처음이다.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미술품에 투자해 수익을 거두는 이른바 ‘아트 펀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트 펀드는 투자 자금을 모집해 국내외 미술품을 구입한 후 임대와 시세 차익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작년 9월 표화랑과 굿모닝신한증권이 국내 최초의 아트 펀드인 서울명품아트펀드(75억 원)를 출시했다. 이어 올 1월에는 박여숙화랑, 박영덕화랑, 인사갤러리 등 5개 화랑과 자산운용사 골든브릿지가 손잡고 골든브릿지스타아트펀드를 선보였다. 이들 아트 펀드는 사모 방식으로 판매됐으며 현재 10~20% 정도의 수익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6월에는 한국투자증권과 박여숙화랑이 손잡고 서울아트사모특별자산펀드를 출시했다. 80억 원을 모금한 이 펀드는 투자 기간이 3년이며 매년 8%의 배당 수익을 지급한다. 또 아라리오갤러리는 하반기 중 200억~3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며 세계 최대 아트 펀드인 영국의 파인아트펀드는 중국 미술품에 투자하는 차이나아트펀드(250억 원)중 25억 원을 한국 투자자들에게 배정했다. 독일 유명 화랑 마이클 슐츠 갤러리와 갤러리 현대, 선화랑, 노화랑, 이화익갤러리, 아트파크 등도 금융권과 함께 100억~200억 원 규모로 아트 펀드를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미술품 경매를 취급하는 회사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서울옥션과 K옥션이 양분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전북 전주의 A옥션(Ace Art Auction)이 7월 첫 경매를 실시했고 대구MBC는 8월 중 경매 회사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박영덕화랑, 박여숙화랑, 조연화랑, 인사갤러리, 갤러리 신라 등 5개 화랑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한국미술투자도 아시아 미술 작품을 취급하는 아시아경매회사(가칭)를 연내 출범시킨다. 로또복권 판매회사 코리아로터리서비스, 건설 업체 힐코리아, 가구 수입 업체 엠포리아, 한국고미술협회 등도 미술품 경매 회사 설립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미술품 시장의 열기는 비단 국내만의 일이 아니다. 미 뉴욕대 스턴스쿨의 메이-모스(Mei-Mos)지수에 따르면 세계 미술품 시장의 지난 1955년부터 2004년까지 50년 간 수익률은 평균 10.5%였으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최근 5년 간 수익률은 7.3%였다. 그러나 지난 2004년에는 13%로 뛰어올라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따라서 세계 미술 시장은 2004년을 기점으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대별로는 ‘1950년 이전 미국 회화작품’이 25.2%로 가장 상승률이 높았고 ‘인상주의 근대회화’ 작품이 14.3%로 그 뒤를 이었다.파인아트펀드가 조사한 자료에 다르면 지난해 세계 미술 경매 시장의 낙찰 총액은 총 10조 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경매 시장의 활황세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모습으로 지난해 소더비의 낙찰 총액은 4조722억 원, 크리스티는 3조4689억 원을 기록했다. 이들 대형 미술품 경매 회사로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는 모습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으며 미술계에서는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 거래 총액이 1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경매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거래 시장의 열기도 뜨겁다. 파인아트펀드가 주요 작가 작품을 기준으로 지난해 세계 미술품 값 평균 상승률을 산정한 결과 25.4%나 값이 뛴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미국 다우존스 공업 평균주가지수 상승률 14.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지난해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의 ‘넘버51948’은 사상 최고가인 1억4000만 달러에 매각됐다.미술품은 투자 방법 등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맹점이다. 기본적으로 고수익 고위험 구조다. 따라서 초심자는 미술 관련 공부를 병행하면서 심미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나 경험자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실패를 줄이는 한 방법이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는 “일반인들이 미술 시장에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술 작품의 가격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소규모로 시작하고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밖에도 업계에서는 초보자들의 경우 판화나 사진 등 멀티플 아트 상품부터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이들 상품은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크지 않다. 큰 수익을 기대하기보다는 미술 시장의 변화를 경험하는 차원에서 시작하기에 적합하다.그렇다면 지금의 호황은 과연 얼마나 계속될까.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6월 초 상업화랑 대표, 아트펀드 매니저, 미술평론가, 경매 회사 대표 등 10명을 대상으로 ‘미술 시장 현황과 전망’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 자중 8명이 2~10년 정도 계속된다고 봤고 나머지 2명만 ‘거품 붕괴를 경계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설문 조사에서 이현숙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미술 시장이 과열이라고 하면서도 모두 유망 작가들의 작품을 찾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미술 시장은 지금부터 ‘랠리’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