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산 최고급 와인 몬테 벨로
리포니아 몬테 벨로(Monte Bello)는 최고급 반열에 오른 와인이다. 작년에 있었던 30년 이상 숙성된 와인들의 품평회에서 1971년 빈티지가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와인의 매력이 장기 숙성에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숙성력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유서 깊은 보르도를 물리치고 캘리포니아산이 수상했다는 사실은 신기하기까지 한 일이다. 캘리포니아산이 어떤 와인인가. 거대한 자본으로 무장해 콜라 만들 듯 뚝딱 해치우는 대량 생산의 메카가 아니던가. 일상 와인 양산으로 이름난 업계에 이런 대단한 숙성력의 와인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조만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캘리포니아산만 같아라’란 말이 생길지도 모른다.몬테 벨로의 비밀은 포도밭과 와인 메이커의 양조 철학에 숨어 있다. 포도밭은 790m에 이르는 산의 경사면에 조성돼 있다. 꼭대기에서 아래를 보면 거미줄처럼 뻗은 실리콘 밸리의 도로망이 한눈에 보이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태평양이 펼쳐져 있다. 서늘한 산의 미세 기후와 시원한 태평양 바람이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등을 키워 낸다. 강렬한 햇볕에 탈 정도로 과도하게 익히는 주변의 양조장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서서히 포도를 익힐 수 있어 좋다. 서늘한 저녁에 포도가 천천히 식어가며 익기 때문에 당분과 함께 산미가 충분히 확보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후와 풍토를 가졌다 해도 이를 이용하지 못하면 소용없는 법. 와인 메이커 폴 드레이퍼는 땅의 특징을 잘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와인 양조를 신조로 삼은 사람이다.그는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양조한다. 그것은 바로 강한 숙성력의 와인이자 오랫동안 마실 수 있는 와인이다. 맛과 향은 토양을 그대로 재현하는 자연스러움을 유지해야 하고, 와인은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도록 튼튼한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는 그 소신을 줄기차게 밀어붙여 무명지였던 산타 크루스를 명산지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1962년 빈티지의 몬테 벨로를 맛보고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와인이라고 느꼈고, 1969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현재 양조장 지하 셀러에 고작 몇 병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는 오로지 그 빈티지를 벤치마크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한다.그는 서부를 개척하던 선조들처럼 와인 분야를 개척했다. 그가 리지 빈야드(Ridge Vineyards)에서 일하던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양조장들은 여러 곳의 포도를 혼합해 와인을 만들었다. 포도가 좋다고 하면 그것이 나파 밸리든지 소노마 밸리든지 아니면 남부 해안가든지 가리지 않고 모조리 구입해 혼합했다. 그저 완숙된 포도를 골라서 흠결 없이 양조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던 것이다. 여러 곳의 포도 알을 섞다 보니 포도밭의 특성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그는 단일 포도밭에 힘썼다. 산타 크루스의 테르와(terroir: 토양, 기후 등 포도밭에 미치는 일체의 상호작용)를 잘 표현하려고 애썼다. 다른 곳의 포도가 아무리 좋아도 달려가지 않았다. 오직 몬테 벨로 구역 내의 포도만을 가지고 씨름했다. 그는 능선의 입구, 중턱, 정상 부근의 토양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각각의 특성대로 시기를 달리해 수확한다.그는 오크 통을 고를 때도 남다르다. 주변의 양조장은 보통 프랑스산을 쓰거나 거친 미국산을 쓴다. 하지만 그가 미국 와인을 만드니 당연히 오크 통도 미국산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오크 통의 제작 공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미국산 오크의 구조는 프랑스산과는 다르다. 표면이 더 거칠고, 수액도 더 많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통 속에서 와인을 숙성하면 그 성분들이 와인의 특징들을 가리기 때문에 수액을 공기로 말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리지 빈야드에서는 오크 통 건조에 힘쓴다.세간에는 몬테 벨로의 비법이 보르도의 최고 와인 샤토 라투르에서 연수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질문해 보았으나 대답은 의외였다. “사실 전 라투르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여행 중 단순 방문해 양조장을 한번 살펴보기만 했을 뿐이죠. 내가 거기서 일을 했다느니, 혹은 어떤 도움을 받았다느니 하는 말은 다 소문일 뿐입니다. 그건 아마도 오래전 어느 미국 저널리스트가 몬테 벨로를 맛본 후 라투르를 연상하게 하는 좋은 와인이라고 평한 사실이 그 후로 잘못 전해진 탓일 겁니다.”아직도 가끔 언론에는 몬테 벨로와 라투르를 연결해 관련지으려고 하지만 아무런 연관이 없음이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다만 둘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래 묵을수록 맛과 향이 깊어지는 점일 것이다.몬테 벨로의 맛에는 나파 밸리의 일반적인 향, 즉 육감적인 바닐라 향이 많이 나지 않는다. 대신 포도 맛이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와인이 된다. 고급 와인 생산의 역사가 일천한 캘리포니아에도 이처럼 묵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와인이 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다. 와인의 세계는 정말 다양하고, 또한 와인 메이커의 양조 철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와인메이커 폴 드레이퍼몬테 벨로 시음 후기1990년산디캔팅을 한 후 잔에 옮겨 따랐다. 코를 대니 묵은 시간의 향내가 올라온다. 먼지를 떠올린다. 전형적인 카베르네 소비뇽의 부케. 생나무의 향기도 있다. 삼키는 순간 타닌의 윤곽이 제대로 잡혀진다. 깔끔한 뒷맛이 좋고 균형감이 느껴진다. 라투르보다는 차라리 라피트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라투르 역시 균형이 돋보이나 라피트보다 규모가 더 큰 강도로 입안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부드러워졌지만 타닌이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와인은 익어갈 것이다.(10점 만점에 9점)1999년산간결하고도 차분한 질감과 부드러운 타닌이 인상적이며 입 안에서 제법 여운이 길다.(10점 만점에 8.5점)2000년산농익은 붉은 과일의 향기, 풍부한 질감과 뚜렷한 타닌의 감촉. 여운도 길며 아직 한참을 더 숙성할 수 있을 것 같다. (10점 만점에 9점)©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