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계 거장 리치몬트·스와치 3인방 인터뷰

스타니슬라스 드 케를시즈 반클리프 아펠 대표▶ 우리에겐 ‘반클리프 아펠’의 이니셜 ‘VCA’는 ‘아주 창의적인 예술가(very creative artists)’를 의미한다. 주얼리와 시계에 대한 열정을 지닌 장인들의 ‘귀중한 손(golden hands)’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만이 우리 고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고객들에겐 가장 최고의 제품만을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반클리프 아펠만의 미묘한 개성을 보여주는 에나멜 라인을 앞으로도 계속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고정적으로 예술가들을 고용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콘셉트에 맞게 활용할 생각이다. 예술적으로 창조적인 작품은 전통적인 노사관계에선 나오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주얼리에서 시작된 브랜드인 만큼 이 특성도 계속 살려나갈 계획이다. 시계의 개념도 한마디로 ‘시간을 말해주는 주얼리’라고 우리는 정의한다. 시계 디자인 자체도 주얼리에서 시작되고 그 모습을 변형시켜 시계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주얼리에서 D∼F의 최상급 다이아몬드만 쓰듯이 시계에서 사용되는 다이아몬드도 아무리 작아도 F급 이상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물론 최근 투르비옹을 단 컴플리케이션 시계 등을 내놓은 것과 관련,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 시계 전문 제조회사로서 탈바꿈하는 게 아니냐는 궁금증을 갖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클리프 아펠의 정체성을 잘 안다. 보석을 만들 때 원석부터 만드는 회사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기초 공정이 끝난 최고의 제품을 사서 만든다. 시계에선 계열사인 예거 르꿀뜨르가 그런 부품을 제공하고 우린 최상의 완제품을 만드는 일만 하면 된다. 반클리프 아펠은 지난해 100주년을 맞아 해외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들어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프랑스 파리에 부티크를 낸 것을 비롯해 러시아 모스크바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도 세울 계획이다.한국의 경우 사람들에게 우리 브랜드를 더 많이 알리는 게 숙제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애비뉴엘에서 철수한 것은 한국 시장을 포기한 것이라기보다는 잠시 지켜보자는 측면이 강하다. 한국에선 시계가 큰 시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유통망 강화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공략해야 할 대상이다.후안 카를로스 토레스 바쉐론 콘스탄틴 대표▶ “되도록 더 잘하라. 그리고 그건 언제나 가능하다(Do better if possible. And it is always possible).” 창업자인 프랑수아 콘스탄틴의 모토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 같은 창업자의 정신을 살려 끊임없이 시계 업계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해 왔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25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마스크 컬렉션 역시 이러한 시도 중 하나다. 지난 2005년 250주년을 맞아 걸작품들을 선보인 이후 우리는 어떤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고민했다. 마침 제네바에 유서 깊은 원시예술 박물관인 바비 뮬러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SIHH 기간에 파트너들과 기자들이 많은 찬사를 보낸 것으로 안다.기존 컬렉션인 패트리모니 라인도 요즘 소비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변화를 줬다. 패트리모니 라인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전통과 기술, 우아함의 상징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그대로 이어가는 동시에 전통(Traditionelle)과 현대성(Contemporaine)이라는 두 가지 콘셉트에 맞춰 신제품들을 선보였다. 고급 시계 분야의 최고봉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몇 가지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제품들과 자동 무브먼트를 장착한 심플한 제품들 모두 바쉐론 콘스탄틴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새로운 무브먼트를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바쉐론 콘스탄틴은 연간 1만7000개의 시계를 생산, 최고급 시계 브랜드들 중 가장 소량을 생산하고 있다. 그만큼 제품 하나 하나에 쏟아 붓는 시간이 상상 이상이다. 부품 하나까지 모두 수공으로 제작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브먼트 내부까지 수공 장식을 한다. 최상의 디자인과 장인 기술을 인증하는 제네바 홀마크를 우리가 개발한 모든 무브먼트에 받고 있다는 점이 이런 사실을 입증한다. 비록 최근 전통 시계 제조업체가 아닌 기업들도 영역을 넘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우리 회사는 제조 공장, 연구 및 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한 뛰어난 전통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바쉐론 콘스탄틴은 선별적이고도 제한적인 판매망을 유지하고 있고 올해 역시 이러한 유통 정책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시계 시장이 부흥기를 맞은 만큼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 지역에 좀 더 적극적으로 유통망을 개척할 예정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제롬 램버트 예거 르꿀뜨르 대표▶ 매년 새로운 무브먼트를 선보여 온 예거 르꿀뜨르는 올해도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기술력을 보여줬다. 마스터 듀오미터 크로노그라프의 경우 두개의 배럴을 사용하는 기존 모델을 개선해 크로노그라프 기능의 동력을 기본 동력 시스템과 분리했다. 마스터 컴프레서 익스트림랩은 13개의 신소재를 사용해 윤활제가 필요 없고 극한의 온도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세계 최초로 물이 들어가지 않고 수압에 의해 수심을 측정할 수 있는 ‘다이빙 프로 지오그래픽’도 기술력의 발로다. 전시회에서 기자들과 시계 판매상들도 신상품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정 생산품은 판매상들이 치열한 주문 경쟁을 벌이는 등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뒀다. 예거 르꿀뜨르는 단지 시계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불어 넣는 작업을 한다고 자부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 제조 과정이 하나의 공장에서 이뤄지는 데다 작은 나사를 만들 때부터 장인 정신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무브먼트나 디자인뿐만 아니라 가장 기본이 되는 부품부터 직접 제조하기 때문에 그 정성에서 비교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고객에 대한 정성도 남다르다. 우리 회사는 6∼7명의 앤티크 시계만을 담당하는 기술자를 두고 있다. 또한 과거 모든 부품에 사용했던 금형들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따라서 앤티크 시계에 대한 수리 요구가 발생할 경우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서라도 찾아가 고쳐준다. 이는 고객의 시계에 대한 열정과 가치를 존중해 주는 중요한 일이다.우리 회사는 오는 10월 공장이 있는 르 상티에에 박물관인 ‘헤리티지 갤러리’를 세울 계획이다. 공장 가까이 있어 여태껏 개발한 1000여 개의 무브먼트 등 역사적인 제품들을 볼 수 있고 직접 무브먼트 제조에도 참여할 수 있다. 시계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진정한 시계 제조 현장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시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품질도 많이 알릴 방침이다.한국 시장은 진출한 지 3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걸음마 단계다. 따라서 지금은 한국 시장에 브랜드의 진정한 의미와 뛰어난 품질, 기술을 알리는 게 우선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도 점점 컴플리케이션 시계와 같은 진정한 시계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 보고 있다.스테판 우콰드 오메가 대표▶ 오메가는 단순히 시계 제품이 아니라 역사의 풍부함(richness of history)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안티쿼럼과 손을 잡고 ‘오메가 마니아’라는 행사를 벌인 것도 지구에 있는 모든 인종에게 이런 오메가의 철학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이번 경매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1953년산 프랜치 스타일인 ‘코즈믹’, 1970년대 초반 나온 ‘시마스터’ 제품들에 관심을 가졌다.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스타일이 아마도 나의 취향인 듯하다. 주최 측이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해야겠지만 시계에 관해선 개인적인 욕심은 어쩔 수 없다.사실 이런 나의 취향도 오메가에 오랫동안 몸담다 보니 생긴 특성인 듯하다. 예를 들어 나는 올해 오메가의 트렌드가 뭐냐는 질문을 하는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올해, 내년을 겨냥해 트렌드를 만들기보다는 10∼50년 앞을 내다보고 만드는 게 우리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제품이라도 언뜻 봐서 오메가처럼 보이냐가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마케팅에서도 이런 철학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려고 한다. 많은 시계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할리우드 연예인들을 모델로 삼고 있지만 우리는 오메가에 적합한 모델을 엄선하고 있다. 최근까지 홍보대사를 맡은 신디 크로포드나 지금 모델을 맡고 있는 니콜 키드먼, 조지 클루니 등은 이미지와 정치적 성향에서 검증받은 인물들이다. 아시아 시장과 관련해서는 오는 12월 중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골프대회에서부터 오메가가 공식 후원 업체로 활동하는 등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롤란드 스트로일레 라도 대표▶ 라도는 한국 시장에서 한때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터닝포인트(변곡점)를 지났다. 라도는 지난 30여년간 한국 업체에 부품 제조와 판매를 맡겼으나 2001년부터 직접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판매는 잘 됐지만 저가로 팔리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급속히 나빠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장 매출을 줄이더라도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야 했다.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동안 매출은 다소 침체됐으나 작년부터 매출이 늘어나는 등 좋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올해 신제품에선 두 가지 큰 변화를 줬다. 대표 상품인 ‘세라미카 크로노그래프’의 경우 겉 케이스는 각져 있지만 다이얼이 둥글게 돼 있는 등 둥근 디자인을 강조했다. 시계판 지름이 넓어진 것도 특징이다. 또한 인체에 친화적인 세라믹 소재는 그대로 가져갔지만 밴드 부분을 무광택 처리한 점도 달라진 부분이다.가끔 스와치그룹 내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이해가 가지만 내부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와치그룹 내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기막히게 이뤄졌는지 깨달을 것이다. 오메가, 론진, 라도 등 각 브랜드의 가격은 다소 겹칠 수 있지만 지향하는 스타일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부딪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라도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도소매상들이 더 활발히 판매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지원하고 올 하반기께 빈과 홍콩에 자체 부티크를 여는 등 유통 채널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로돌프 슐테스 브레게 부사장▶ 한국 시장은 사치성 품목에 대한 특별소비세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이었다. 이런 이유로 최고급 명품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대량 생산되는 중저가 명품 시계들이 시장에서 판을 쳐왔다.이런 한국 시장이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들이 기존 명품 제품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실로 시계다운 시계를 찾는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브레게는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지난해 롯데 애비뉴엘에 부티크를 열었다. 예상외로 한국 소비자들의 호응이 폭발적이라 상반기에는 블랑팡, 라슈떼 등 3개의 스와치그룹 브랜드 매장을 추가로 세울 계획이다. 브레게는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도 품질을 인정하는 제품이다. 스와치그룹 니콜라스 하이에크 회장이 유독 이 브랜드의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맡고 있는 것도 대내외적인 브레게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예다.브레게는 스와치그룹이 지난 1999년 인수한 뒤 매해 35∼4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딜러점을 확장해 판매를 늘리는 대신 공장 설비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남들과 확연히 다른 시계를 만들어 낸 덕분이다.지금의 브레게 컬렉션이 2001년 비교해 무려 75% 이상 달라진 것만 봐도 우리가 질적인 성장을 얼마나 고집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최고급 명품 시계 사업을 하지만 내 자신이 오만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프레스티지한 비즈니스를 한다고 우쭐해져 고객을 우습게 여기면 사업은 내리막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