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배터리로 작동하는 시계) 위기’를 이겨낸 스위스 시계 업체들은 1990년대 들어 디지털시계를 일제히 버리기 시작했다. 한때 첨단 기술의 상징이던 디지털시계가 너무 일반적 기술이 되자 소비자들로부터 아무 매력도 없는 물건으로 취급되며 외면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도 ‘글래머 시계’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없었다. 글래머 시계에 처음 눈을 돌린 게 스와치였다. 태엽을 감아 작동하는 전통적인 시계를 만들려는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쿼츠 무브먼트와 패션 개념, 부담없는 가격대를 채택해 소비자를 공략한 것. 이 같은 트렌드는 1990년대 말 더욱 뚜렷해졌다. 패션 브랜드인 구찌가 시계 산업에 진출, 50만∼100만 원대의 시계를 냈으며 디올, 켈빈 클라인, 베르사체 등도 잇따라 미끼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엄청난 컴플리케이션 시계는 당신(시계 전문 제조업체)들이 만들고 우리는 트렌디한 시계만 만들면 된다’는 식. 디올의 ‘크리스47’, 구찌의 ‘G’ 등은 적당한 가격과 기존 패션 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엄청난 판매액을 기록했다.디올, 구찌의 성공은 전통 시계 제조 업체들의 철학도 흔들었다. 오드마 피게는 남성적인 모델의 상징이던 ‘로얄 오크’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베젤을 넣어 여성을 위한 변형판을 만들었다. 이는 ‘유니 섹스’라는 시대 조류에 순응한 사례. ‘글래머 시계(Glamour watch)’란 무언가. 외국의 여성지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딱 잘라 이렇다고 정의하는 글은 많지 않다. 글래머 시계란 변천하는 시대 조류와 패션을 반영한 시계를 말한다. 많은 시계 마니아들은 시계를 만드는 방법은 영구불변하고 그것이 시계만의 남다른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데코’가 당시 모든 문화와 사상에 영향을 미쳤고 최근에는 ‘그런지 룩(grunge look)’, ‘포르노 시크(porno chic)’, ‘블링 블링(bling bling)’ 등 굵직굵직한 트렌드가 그런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정신을 투영해 전과는 다른 독특한 모양 또는 재질로 탄생했을 때 우리는 글래머 시계라고 통칭하는 것이다.보메 메르시에 | 리베에라 XXL 매그넘리비에라의 특징인 12각형 모양에 43mm 지름의 티타늄 베젤, 4개의 블랙 스크루를 더해 모던한 감각을 살렸다. 작은 로듐 메탈 링에 둘러싸인 두 개의 크로노그래프는 블랙 다이얼과 대비를 극대화해 가독성을 높였다. 오토매틱 무브먼트에 200m 방수. 400만 원대.까르띠에 | 롱드 폴르까르띠에의 감미로운 개성을 살린 다이아몬드 파베(빽빽이 박힌) 장식이 특징. 둥근 다이얼 바탕에 물결치는 모양의 다이아몬드로 수놓인 격자 틀을 놓았다. 총 3.8캐럿의 367개 라운드 다이아몬드가 18캐럿 화이트 골드 케이스와 버클에 세팅됐다.반클리프 아펠 | 레이디 아펠 페리2005년 탄생한 주얼리 컬렉션인 ‘한여름 밤의 꿈’의 요정 브로치가 시계로 재탄생했다. 날개와 몸은 라운드 다이아몬드로, 얼굴은 페어 셰이프 다이아몬드로 세팅돼 있다. 요정의 마술 스틱은 시간을, 날개는 분을 각각 표시한다. 38mm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 2.82캐럿의 다이아몬드. 9000만 원대.블랑팡 | 우먼 타임존컴플리케이션 기능이 대폭 강화된 여성용 시계.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덮여 있으며 지름 34mm의 스틸 케이스 안에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와 100시간 파워 리저브 기능이 있는 칼리버 5L60이 달렸다. 12시 방향에 듀얼 타임 존(세계 시계), 9시 방향에 낮밤을 나타내는 기능, 6시와 3시 쪽에 각각 초침과 날짜를 나타내는 부분이 있다.크로노스위스 | 크로노스코프 블랙앤화이트 다이얼크로노스코프는 창업자인 게르트 랑 대표가 그리스 고서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컬렉션. 종이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려 번지는 정도를 보고 시간을 측정한 어원에 따라 ‘크로노그래프(graphier:기록하다)’가 아니라 ‘크로노스코프(skopeein:보다)’라고 명명됐다. 지름 38mm. 스테인리스 스틸 740만 원대.브레게 | 레인 드 네이플 로만 다이얼기존 컬렉션에서 보여준 우아한 외양은 유지한 채 숫자 모양 등 디테일에서 변화를 줬다. 달걀 모양의 케이스에 맞춘 대형 로마 숫자가 들어갔다. 요란한 아라비아 숫자로 잘 알려진 ‘크레이지 다이얼’에 비해 많이 얌전해진 느낌. 18캐럿 옐로 골드 케이스와 내추럴 화이트 색의 머더오브펄(자개) 다이얼. 베젤(케이스 윗부분)과 플랜지 등에 139개의 다이아몬드가 세팅돼 있다. 6000만 원대.펜디 | B 펜디 주카B 펜디는 이탈리아 기업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시계. 독특한 버클 디자인은 펜디 B컬렉션 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올해는 스테인리스 스틸 뱅글 스타일과 부드러운 가죽 밴드, FF 로고가 들어간 제품을 출시했다. 다이얼은 블랙 에나멜이나 머더오브펄(자개) 중 선택할 수 있다.에르메스 | 파스-파스대중적인 히트 상품인 ‘H-아워’를 제작한 필립 무케가 디자인해 처음 선보이는 컬렉션. 스트랩이 다이얼 사이를 관통해 시계 두께가 두꺼운 것이 특징. 스트랩 교체가 용이하며 구입 때 여분의 스트랩을 하나 더 준다. 다이얼에 에르메스 로고가 장식돼 있다. 200만 원대.라도 | 세라미카 크로노그래프스트랩과 케이스가 구별되지 않고 선과 면만으로 이뤄져 하나의 긴 검은 팔찌처럼 보이는 게 특징. 크기가 각각 다른 세 개의 크로노그래프가 다이얼 위 퍼져나가는 원처럼 표현됐다. 크로노그래프를 조정하는 크라운도 돌출돼 있지 않아 케이스와 조화를 이룬다. 세라믹의 무광택과 크리스털의 반짝이는 검은 표면의 대조도 디자인적으로 배려한 부분이다. 300만 원대.디올 | 크리스탈 샤론 스톤 스페셜 에디션미국 영화배우 샤론 스톤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시계. 블랙 배경의 다이얼 중앙 3곳에 195개의 다이아몬드가 파베 형태로 세팅돼 있다. 또 스틸 베젤에 76개의 다이아몬드와 14개의 블랙 사파이어 크리스털이, 브레이슬렛에 216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3.82캐럿 다이아몬드가 총 488개 들어간 셈.